우리에게 없는 밤 -위수정
문체가 아름답다거나, 힘을 가진다는 건 뭘까?
어떤 비평가가, 이 작가의 문체가 주는 힘을 칭찬하면서 심사를 했다는 글을 보고 곧바로 빌려와서 읽었다. 각 단편의 느낌은 비슷했고, 문장은 선선한 밤의 슬픔에 대해, 살아가지만 살아가지 않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에게 없는 밤』 에서 지수는 돈만 주면 여자건 남자건 아무렇지 않게 몸을 내주고, 그녀의 친구인지 애인인지 모호한 은선은 고양이를 위해 자기 삶을 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나머지 단편에서도 인물들은 일그러진 욕망에 잠식 당한 삶을 살고 있다. 불륜, 도박, 돈, 권태, 외로움.... 그들은 모두 외롭다. 그리고 자기의 삶을 사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인간을 연기한다. 마치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처럼.
물론 우린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 만큼 병들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저마다의 힘겨움을 짊어진 일상이 매일매일 이어진다는 것은 비슷하다. 회사의 골치아픈 문제가 해결이 되면 부모님이 말썽이거나, 집안이 겨우 좀 잠잠해지나 싶었더니 연인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걸 알게 되고, 투자처를 확보했다고 좋아했으나 직원들이 한꺼번에 이직을 해 버린다. 하나의 고민이 끝난다고 해피엔딩만 남은 인생따윈 없기 때문에, 나와 같지 않은 인물들이 나와 비슷한 욕망과 괴로움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각자의 괴로움을 대입하여 씁쓸해질 수 있다.
작가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저 인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그 담백한 촌철살인의 문구들은 신선하면서 깔끔하게 베어낸 슬픔을 아름답게 드러냈다.
하지만 이 방식이 여러 편의 단편에서 반복되다 보면, 처음 느꼈던 담백함도 감탄도 점점 옅어진다. 삶의 비루함을 담는 데 그치는 문장력은 문체의 힘이 있더라도 지루함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본질, 즉 소설의 내용에 깊이가 반드시 담겨야 그 문장의 힘은 배가 된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에만 그쳤고,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기를 망설이게 되는 순간, 마지막 단편 『몸과 빛』을 만났다.
비현실적이라서인가, 그저 개인적인 취향인 건가 모르겠지만 앞 작품들보다 좋았다.
이 소설은 교통사고로 죽은 여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화자는 이미 죽은 상태이며, 자신을 죽인 운전사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간다. 피해자인 그녀가 가해자인 그를 동정하게 되는 관점의 역전이 일어나며, 죽은 자로서 바라보는 자신의의 삶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관찰과 감정 사이의 거리가 극대화되면서, 독자는 오히려 깊은 공허와 슬픔을 느끼게 된다. 판타지에 가까운 이 서사가 위수정의 방식과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는 인상도 준다.
문체는 분명 섬세하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고, 장면은 담백하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섬세한 문체가 곧 문학의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 본성 깊은 곳에 있는 그 묵직한 혼의 깊이와 연결되지 못하면, 아무리 조심스럽고 단정한 문장이라도 독자에게는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위수정은 그 경계에 서 있는 작가인 건 아닐까. 그녀의 고요함이 계속해서 감정의 저편까지 닿을 수 있을지, 그 다음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