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우붓 오후.
* 테갈 사리 어코모데이션 2박 62300원 /1인
* 몽키 포레스트 입장료 104400 rp /1인
2박을 하고 우리는 테갈 사리로 숙소를 옮겼다. 테갈 사리에서도 이틀을 묵지만, 첫날은 3만 9천 원대 방, 둘째 날은 저렴한 방이 없어 기다리다가 취소로 나온 8만 원가량 하던 방을 예약했다.
각 룸이 거의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초록 속에 우리 방만 놓여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부지를 넓게 쓰고 있는 만큼 리셉션도 두 군데에 있다.
몽키 포레스트나 우붓 왕궁을 가려면 메인 리셉션 쪽이 더 가깝고, 짱구로 나가는 그랩을 타려면 백 리셉션이 둘러가지 않는다. 직원 말로는 가끔 테라스에 몽키 포레스트의 원숭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숙소가 전체적으로 길쭉하게 생겼는데 수영장은 가운데쯤 위치해 있다. 크기는 작은 편.
전체 길이가 15m도 채 되지 않아 보인다. 풀의 절반은 70~80cm , 절반은 140~180cm 깊이인데, 구분은 로프 하나뿐이라 아이들은 반드시 보호자가 지켜봐야 한다. 수영장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고 염소를 너무 많이 풀었는지 20분 정도 놀고 나서는 눈과 코가 따가워서 더 머물 수가 없었다.
루프탑 수영장은 더 작았고, 비슷한 수준의 수질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풀은 두 개 모두 딱히 좋다고 하긴 어렵다.
조식은 없지만 숙소 컨디션은 마하구나와 비교할 수가 없다.
기다리는 동안 웰컴티로 준 차는 생강맛이 진하고 달콤했으며, 4만 원도 안 하는 숙소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룸도 넓고 쾌적했다. 다음 날 묵은 방은 필리핀 수밀론 섬의 블루워터 리조트만큼이나 좋았다.
냉장고, 정수된 물 2병(근처에 정수기도 곳곳에 있어서 물은 안 사도 되지만, 물 맛이 썩 좋지는 않아 끓인 뒤 식혀 마셨다.), 외부용 모기향과 실내용 전자 모기향이 제공되었다.
욕실에는 욕조가 있다. 샴푸, 물비누, 바디워시는 있지만 치약 칫솔 같은 어메니티는 없다. 다만 낮 시간에는 온수는 잘 나오지 않았다. 저녁에는 화상입을 정도로 뜨거운 물도 콸콸 잘 나옴.
천장에 달린 모기장이 멋있어서 치고 잤는데 세탁 안 한 지 좀 된 거 같았다.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잠시 쉰 다음, 오후에는 몽키 포레스트를 방문했다.
키오스크를 이용했는데 수수료인지 세금인지 몰라도 오히려 비용이 조금 더 비싸졌다. 입장료가 인당 10만 루피아였던 걸로 봤는데...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여행객들이 원숭이를 만지거나 먹이를 주면서 사진을 찍는 구역이 있다. 직원이 원숭이에게 수시로 간식을 주고 다루는 솜씨가 능숙했지만, 발리는 광견병 주의 지역(적색구역)이기도 하니 굳이 사람들이 찍을까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커플과 가족이 사진을 찍으려고 긴 줄을 서 있었고, 나올 때는 줄이 더 길어져 있었다.
내가 십 대였을 때, 여행지에서 부모님이 여드름 투성이인 내 얼굴을 원숭이나 소나 양이랑 함께 찍어 주려하면, 나는 소심한 반항을 한답시고 졸려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곤 했다.
지나가면서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춘기가 온 아이들은, '내키지는 않지만 협조는 해 준다.'는 의미의 똥 씹은 미소를 짓더군.
원숭이들은 곳곳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으나, 간식을 받아먹는 영광을 누리는 것은 주로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성체들이었다. 특히 사진 찍는 자리는 끊임없이 간식을 받아먹을 수 있는 명당이다. 어린 원숭이들이 기웃대기라도 하면 큰 녀석은 재빠르게 새끼들을 위협해 쫓아냈다. 이를 드러내고 위협한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 무릎 위에 앉아 귀여운 척하며 간식을 받아먹었다.
새끼들이나 힘이 없는 성체들은 채소와 과일을 뿌려놓은 장소 근처에 있었다. 이곳에서도 힘없는 녀석들은 밀려났다. 중간 크기 정도의 원숭이 몇 마리가 팀으로 늙은 원숭이를 쫓아내고 자리를 차지했다. 이미 뿌린 지 시간이 좀 지나서 산화된 과일의 시큼한 냄새가 나고 파리들이 윙윙 거렸지만, 그래도 이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는 원숭이가 있는 거다.
생각보다 공원이 넓어서 1시간 이상 걸어 다녔다. 지도를 찍어서 입장하긴 했지만, 우린 지도를 보지 않고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다시 출구가 나오는 구조인데, 지금 지도를 살펴보니 북쪽과 서쪽 끝은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네.
원숭이들이 난폭하다는 글을 보고는 휴대폰에 손목 스트랩을 끼우고 다녔다. 하지만 폰이건 뭐건 다 뺏아간다는 울루와뚜 사원의 원숭이들과 달리, 몽키 포레스트의 원숭이들은 건들지 않으면 사납지 않았다.
입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자지러지는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는데, 차차였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근처에 있던 직원이 원숭이를 떼어 내고 있었다.
무슨 소동인지 영문을 몰라서 나는 긴장했다.
"갑자기 달려든 거가?"
그 장소를 벗어나면서 내가 물었더니, 차차는 싱긋 웃으며
"아니, 내 바로 앞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길래 내가 꼬리를 발로 슬쩍 밀었지. 얘 내가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나 봐, 정말 돌변해서 기어올라오더라."라고 했다.
아연실색한 나와 달리 차차는 금세 태연해져서 다른 장소에선 원숭이들이 따려고 하는 나무 열매를 떼서 건네주기도 했다. 몇 마리가 잽싸게 달려와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더니, 막상 냄새를 맡고는 던져 버렸다.
원숭이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다 보니, 인간에게 접근하는 녀석이 가끔 있었다. 어떤 외국인은 새끼 원숭이가 타고 올라오자, 어깨 위에 얹은 채 돌아다녔다. 녀석도 그 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한동안 내려가지 않았고, 그 사람은 한동안 원숭이보다 더 진기한 구경거리가 되어 그걸 즐기는 듯했다.
꽤 많은 원숭이들이 연합하거나 개별적으로 자주 다퉜고, 심심해서 돌을 굴리는 원숭이도 꽤 보았다. 그 돌을 뺏으려고 하는 원숭이도 있는데, 여러 개 돌을 차지한 어떤 녀석은 한 개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고는 돌을 그저 바닥에 굴릴 뿐인데, 양손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 그 돌들을 다 지켜서 뭐 한담.
"얘들 심심해 보여. 안 됐다."
차차 말처럼 심심해 보이긴 했지만, 단순하기는 해도 스스로 놀잇감을 만들고, 다 쓸 수 없는데도 나누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인간이 겹쳐 보였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상위의 사고를 하는 존재가 있다면, 우리야 말로 욕심 많고 불필요한 다툼으로 감정을 소모하는 영장류로 보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진화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과 원숭이 사이의 접점에서, 나는 문명이라는 세련된 포장지로 감춰진 짐승의 욕망을 보았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넉넉하고 부유한 삶을 원하며 다 쓰지도 못할 것들을 그러모으는 그 마음이,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를 쫓아내는 마음과 별 다르지 않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