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 왕궁의 레공 바롱 댄스 공연

셋째 날, 저녁

by 어제만난사람

우붓왕궁 공연 100,000 rp /1인


몽키 포레스트를 둘러보는 동안에 몸이 다시 땀으로 끈적거린다. 망고망고라는 가게에서 망고 빙수를 한 그릇 먹었는데, 직원들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물어보더니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기뻐하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습관처럼 다 먹은 빙수 그릇을 반납하니 더 좋아하네.

이 나라는 먹고 그냥 두고 가면 되는 걸 아는데도 한국에서 하던 습관이 인이 배였어.


여행 내내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물어보거나, 니하오 소리도 몇 번 들었다. 머리 크고 다리 짧고, 우린 누가 봐도 한국인인데? 하지만 그런 특성을 제외하면 폭탄 맞은 머리를 한 나나, 비키니(심지어 발리 와서 산 것)를 당당히 입고 해변에서 태닝을 즐기는 차차, 둘 다 한국인 같지는 않았을지도.


몽키 포레스트에서 우붓 왕궁까지는 30여분 걸어야 한다. 가는 길엔 아기자기한 가게가 정말 많다.

더워서, 혹은 차차가 원하는 터키석 보석이 있는가 싶어 곧잘 보석 가게를 들렀다. 터키석으로 된 목걸이는 한국에선 꽤 비싸다고 여기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하나 사려는 가보다. 돌의 가격에 대해 무지한 나는 어색하게 따라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눈치껏 쐴 뿐.


가는 길에 이런 대형 구조물이 있는 도로를 지났다. 화려한 애벌레 같기도 하고, 강아지풀이나 벼가 익은 모습 같기도 한 이 기둥의 이름은 Penjor 뻬뇨르라고 발음하는 것 같다.

어린 코코넛 잎(야누르), 벼, 과일, 떡 등 풍성한 농작물과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긴 대나무 기둥인 뻬뇨르는, 모 끝이 휘어져 있으며, 명절이나 종교 행사 때 설치된다 한다.



근처에 있는 문구를 찍어서 번역기를 돌려 보니, BNI에서 의식이 잘 진행되길 바란다며 후원을 하고 있다.

우붓에 머무는 나흘 동안 몇 차례 이곳을 지나갔지만 막상 행사를 하는 광경은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행사는 모두 끝이 난 줄 알았는데, 일정표를 보니 우리가 머물던 동안에도 행사가 있었다. (일정표 :https://padangtegalubud.org/events/?utm_source=chatgpt.com )



이 행사는 1975년, 2000년에 열렸고 25년 후인 올해 열린 것인가 보다. (https://padangtegalubud.org/blog/ngusaba-desa-ngusaba-nini/?utm_source=chatgpt.com) 25년 만의 행사라니, 놓친 게 아쉽네.


우붓 왕궁 앞은 상습 악성 정체 구간이다. 거의 무단횡단을 해야 하는 발리에서도, 여기는 특히나 더 위험하다. 코너링을 하는 차들 사이에서 오토바이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보행자를 칠 뻔 한 적도 자주 있었다.

안 막히는 걸 본 적이 없는 도로.

왕궁 건너편엔 각종 잡화들을 판매하는 마켓이 있다. 여기에서 나는 라탄 두루마리 휴지 케이스와 작은 드림캐쳐 장식을 하나 샀다. 이때만 해도 절반 정도 깎아서 사면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우린 거의 그들이 부른 가격의 1/3 가격까지도 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탄케이스 180,000 Rp, 드림캐쳐 30,000 Rp 기념품 같은 소모품은 개인 비용으로 지출.

라탄제품은 질이 괜찮은 것이 많았지만 다른 건 솔직히 사고 싶은 게 없었다. 우쿨렐레도 발리가 괜찮은지 우쿨렐레 파는 곳이 좀 있었고, 사롱이나 티셔츠, 가방 종류도 많았는데, 이런 그림들은 과연 팔리는 걸까?

필리핀에 비해 훨씬 양호한 발리의 개들. 살도 더 쪘고, 벼룩이나 빈대도 적다. 하지만 발리는 광견병이 발생하는 지역이라 만지거나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표를 끊은 시각이 5시 반 경이었는데 왕궁을 좀 둘러볼까 했더니, 대부분 출입 금지라 사실상 관람할 곳이 없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우붓 왕궁에는 아직 왕족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사실상 공연장을 빼면 거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Tjokorda 쵸코르따, 남성 왕족들은 이렇게 부르며, 정치적 권력은 없지만 문화적·종교적 권위를 지닌 존재로 존중받는다고 한다. 우붓의 예술을 지원한 것도 우붓 왕족이라고...

왕이 살고 있는 왕궁이라니, 근데 매일 저녁마다 집 마당에서 공연을...;;


마켓 쇼핑을 하고 와도 6시라서 공연을 기다리며 앉아 있기로 했다. 내 왼쪽 자리엔 누군가 수건으로 자리를 2개 맡아두고 사람이 없었다.

6시 반쯤 되자 좌석은 거의 만석이 되었는데도 수건의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고, 어떤 젊은 외국인 커플이 옆에 자리가 있는지 우리 말고 빈자리 옆에 앉은 다른 서양인에게 물어본다. 우리도 그 자리가 누구 자리인지 몰라서 옆에 앉은 그들이 수건의 주인인가 싶긴 했는데, 그들도 자기들이 둔 게 아니라고 하네. 그러자 그 커플은 수건을 뒷줄에 비어있는 한 자리로 치우고 앉았다.


30분쯤 지나서 사람들이 나무 등걸이나 땅바닥에까지 가득 찰 무렵, 웬 금발머리의 덩치 좋은 할머니가 간이 플라스틱 의자로 만든 공연 좌석의 열 사이로 들어와서는 러시아나 프랑스식 악센트로 그 자리에 자기가 수건을 두고 갔다며 들어온다.

청년은 뒷좌석에 수건이 있다고 가리켰지만, 좌석이 하나뿐이라 그랬는지 할머니는 매우 느리게 No, it's ours, it's ours 라며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차랑 나는 안 보는 척하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할머니가 자리를 뺏으려고 한 건지 여자 친구 쪽을 건드렸고, 연인인 남자가 곧 그 할머니를 살짝 밀었다. 그 여자가 뒤로 휘청하며 내 앞줄을 건드리자마자, (나는 2열에 앉아 있었고, 내 앞줄에는 5~6세 정도 되는 귀여운 여자아이 가족이 있었다) 앞열의 아이 아버지가 깜짝 놀랄 정도로 순식간에 벌떡 일어나더니 미친 듯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 애!!! 우리 애를 쳤어! 당신이 넘어지면서 내 애가 다칠 뻔했다고!! 뭐야, 이 여자! 미친 여자 아냐? 당신, 제정신이야?! "


음, 그렇다. 이때만큼은 귀에 쏙쏙 박히며 영어가 들리더군. 불구경 쌈 구경이 젤 재미있다는 말은 국적을 넘나드는 거였어.

아저씨가 심하게 화를 내면서 곧 주먹이라도 휘두를 포즈를 취하자, 할머니는 완전 쭈그러든 목소리로 미안하다며, 그런데 자기는 안 미쳤다고 중얼거리며 나갔다.


내가 바로 앞에서 목격했지만, 할머니가 휘청이며 의자를 건들긴 했어도 아이랑 부딪힐 수는 없었다. 그들이 앉아있는 첫 번째 열은 등받이 없는 벤치였고, 꼬마는 덩치 좋은 부모 사이에서 거의 엉덩이만 걸치다시피 앉아 있었거든.


하지만 번호표를 주는 것도 아니고, 선착순으로 앉는 자리에다 수건만 던져놓고 몇 시간이나 지나 돌아와서는 자리 타령을 하는 여자가 등 뒤에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게 아니라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이 여자는 중국 여자인가, 목욕탕 자리 맡는 한국 할머니의 환생인가' 했을걸. 그 아저씨도 쫒아낼 요량으로 일부러 더 화를 세게 낸 거겠지. 1시간 반이나 일찍 와서 기다리며 모기에 뜯기며 지킨 자리인데, 수건만 냅다 두고 앉으려고 하다니, 쌤통

할머니가 나가자 옆자리 아가씨는 고맙다는 듯 그들 가족에게 다들 괜찮으냐 물었고, 임무를 완수한 표정으로 그 부부 모두가 쿨하게 괜찮다고 하며 조용히 공연을 기다렸다.


차차는 "서양인도 저런 진상이 있네." 하고 놀라워하면서, 자기가 영어를 좀만 잘했다면 먼저 한소리를 했을 거라고 했다. 모국어가 영어인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해외 나올 때마다 느껴지긴 나도 마찬가지다.



공연은 7시 반부터 9시까지 이어졌다. 남자들로만 구성된 악사들 수 십명이 먼저 들어와서 연주를 시작했는데, 어제 식당에서 들었던 경쾌하지만 묘한 불협화음의 음악이 바로 이것이었다.

가믈란.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악으로 타악기 중심의 연주인데, 국악처럼 5음계나 7음계만을 사용하며 일부러 화음을 깨는 즉흥적인 소리들이 들어가도록 연주하곤 한다. 공연 중 우리의 '창'과 비슷한 노래를 부르거나 북을 치는 몇몇 악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 악기를 다루는 듯 보인다.

맑은 종을 치는 것 같은 깨끗한 음색의 합주 속에서 한 번씩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이 튀어 오르며, 약간은 불길하고, 한편으로는 몽환적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희들의 레공 댄스도 같은 느낌이다. 섬뜩한 아름다움, 혹은 그로테스크함의 미학이라는 게 이런 걸까.

사람을 홀리는 듯한 매력이 있지만, 무희의 커다란 눈동자나 절도 있는 손동작에는 날카롭고 잔혹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모순되는 두 가지가 공존하는 음악과 춤. 불쾌하면서도 끌리는 감각, 상승과 하강이 동시에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레공 안에 있었다.


사자춤 바롱댄스나 이후의 무용극은 그 춤에 비하면 상당히 단순했다. SUNDA UPASUNDA 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마지막의 무용극은 4장으로 나뉘어 공연되었는데 순다와 유파순다라는 거인이 힘을 얻어 천상계를 장악하려 하자 신들은 아름다운 여신을 내려보내 그들이 여신을 두고 서로 다투다 자멸하게 만들고 천상계는 다시 평화를 찾는다는 줄거리다.


우붓 왕궁의 공연은 매일 7시 반에 열리며 일정표는 아래와 같다.


앞쪽의 매표소에서 예매하면 표만 주는데, 안쪽에 들어가서 예매하면 프로그램 북이 포함된 티켓을 준다. 그 티켓에는 요렇게 일정도 다 적혀있고, 줄거리도 간단히 영어로 요약되어 있으니 안에서 표를 끊는 게 더 좋다. 가격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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