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게 살기보다 존엄을 지키며 죽을 권리가 필요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by 어제만난사람


이반 일리치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과정과 그를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시선은, 우리 곁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언젠가 다가올 나의 죽음을 직면하게 한다. 죽음 앞에서 회한 없는 삶이란 게 과연 있을까. 자기반성을 할 줄 모르거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인간을 제외하면 말이다.


톨스토이는 이야기꾼일 뿐 아니라 주제를 작품 속에 명확하게 녹여내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의도대로 책을 읽는다면 남들이 욕망하는 성취란 부질없고 저급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진실된 삶을 산다는 것은 부와 명예와는 큰 상관이 없다. 타인을 위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 측은지심,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노동의 가치를 알고, 도움이 필요한 자를 외면하지 않으며, 그리고 비겁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양심을 지키는 용기를 내는 것.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엄격하더라도 공정함을 잃지 않으며, 정의와 정직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것. 가끔 실수하고 이기적으로 굴더라도 스스로 반성하고 어제보단 조금 더 선의로 마음을 채워가는 것. 그것이 톨스토이가 말하는 삶의 본질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이반 일리치가 경험한 죽음의 관문 앞에서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여전 남아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수반된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죽기를 많은 이가 원하지만, 피하기는 어렵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외엔 내 앞의 삶에 놓인 것이 없다면, 그런 삶을 지속해야만 할까? 과거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금기시하였을지 몰라도, 무지개가 '신의 약속'이 아니라 먼지와 물, 빛의 굴절과 반사에 의해 생겨남을 아는 현대의 우리는 달라야 한다. 말기 암 환자나 중증 치매로 무너져가는 환자가 스스로의 생의 매듭 결정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라고 재해석될 수 있다.


물론 안락사를 선택하는 심리 상태가 온전한 자유의지인지, 아니면 우울증이나 주변의 압박에 의한 것인지 구분이 어렵고, 원치 않으나 안락사로 내몰릴 노인 혹은 취약계층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이를 법제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변하는 한국이야말로 이런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 해법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온전한 현재의 정신 상태인 지금에도 치매에 걸리거나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해서 간신히 살아가기보다 평온한 마침표를 찍기를 원한다. 실제로 간병의 고통을 겪어본 가족들은 열이면 열, 자신은 그런 상황이 온다면 스위스에서라도 안락사를 선택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쓰기의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