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어려움.

가녀장의 시대 - 이슬아

by 어제만난사람

좋아서 하던 일이 괴롭고 싫은 것으로 변했다.


글을 쓰는 게 힘들고 불편하다고 느껴진 어느 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취미가 싫어질 수가 있나? 이렇게 갑자기?

권태는 결코 급작스레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쓴 글이 나에게 역겹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조금씩 모여서, 그리고 평가받는 자리에 제출한 글이 변변찮았던 순간들이 조금씩 모여서, 쓰고 나서 돌아보지 않은 글들이 쌓여서 이렇게 된 것이다.

나도 읽기 싫은 글을 왜 쓰고 있을까.


쓰는 나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자각은, 읽는 즐거움까지 잃어버리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그냥 숙제하듯이 꾸역꾸역 읽는 기분으로 하는 독서는 우리 아버지 표현을 빌리자면 '찐 맛'없다.


이슬아 작가는 글을 참 쉽게 쓴다. 아니 쉽게 쓰는 것처럼 느껴지게 쓴다. 문장이 짧고 어렵지 않은데, 뭔가 내가 하고 싶던 말을 은근히 대신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적당히 착하지만 적당히 이기적이기도 한 소시민의 모습을 다정한 시선으로 재치 있게 묘사한다.


시민도서관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신청하고 나서 이 책을 읽었다. 책은 금방 읽었는데, 글 속에서 보이는 작가의 강력한 자아에 거부감이 든 나는 갈까 말까 꽤 망설였다. 집안의 가부장인 할아버지로부터 한없는 예쁨을 받으며 자란 박완서의 글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거부감이었다.

글은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야, 라는 느낌.


당당하고 자신 만만하고 자기 얘기를 잘 꾸며내지만 사실 그녀들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재주 없는 자들은 자기의 이기심을 숨기기 급급한데, 이들은 이기적인 자기를 드러내고도 아름답다. 정말이지 어둡고 침침한 나같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모임의 언니 얼굴을 본다는 생각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생각보다 자그마한, 생각보다 평범하고 예의 바른 그녀는, 자기 글 속의 이슬아와는 사뭇 달랐다. 같은 사람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실제의 이슬아는 타인을 배려하고 의식하면서, 스마트한 사업가이자 편안함을 주는 재치 있는 사람이었다. 니체의 글이 그렇게 날카롭고 시니컬 해도, 사석에서의 그는 매우 재미있고 소탈한 사람이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여전히 나는 그런 타입의 사람들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멈췄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 볼 마음이 조금 생겼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써 내려가지만, 어떤 이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어떤 이의 글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뭐 어떠랴. 생명은 멈추지 않는 것으로 의미를 창조해 내는 존재인 걸. 어둠 속에서 태어나도 빛을 향해 피어나고 싶은 마음이 예술이라면, 시궁창에 처박혀 있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꼭 슬퍼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나는 나만의 길을 통해 나에게 닿아보고 싶어.






말은 우리를 '마치~인 듯' 살게 만든다. 언어란 질서이자 권위이기 때문이다. 권위를 잘 믿는 이들은 쉽게 속는 자들이기도 하다. 웬만해선 속지 않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속지 않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세계를 송두리째로 이상하게 여기고 만다. 9


자신도 복희처럼 보는 건 많고 쓰는 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집 바깥사람들의 이야기를 잔뜩 보고 들은 뒤 집안사람들에게만 공유하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언젠가 그런 시절이 슬아에게도 올지 모른다. 일단은 코앞에 닥친 원고를 쓴다. 30


슬아는 모부가 거쳐온 지난한 노동의 역사를 지켜보며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란 노동을 감당하는 이들이었다. 어떤 어른들은 많이 일하는데도 조금 벌었다. 복희와 웅이처럼 말이다. 39


강연은 정보 전달 이상의 기능을 해야 한다. 각자의 일로 분주했을 독자들이 집에서 발 뻗고 쉬는 대신 작가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교통체증도 감내하며 찾아온 자리다. 이 시공간은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경험이어야 할 것이다. 슬아는 강연자로서의 자신을 반쯤은 공연자로 인식하고 있다. 56


수락하는 일들은 다섯 가지의 주요 동기 중에서 최소 두 가지를 충족하는 일이다. 돈, 재미, 의미, 의무, 아름다움. 88


세상에 없는 다운의 엄마를 생각하며 읽고, 세상에 있는 복희를 생각하며 읽는다. 다운이 겪은 상실을 언젠가는 슬아 또한 겪게 될 것이다. 그럼 슬아는 다운에게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그동안 이 슬픔을 어떻게 참았느냐고.

그런 미래가 오리라는 것을 슬아는 자주 잊는다. 잊은 채로 어떤 슬픔도 없이 복희가 차린 밥을 먹는다. 그렇게 생긴 힘으로 예술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돈을 벌고 가녀장이 되고 잘난 척을 한다. 하지만 다운의 메시지를 읽은 날에는 잘난 척을 할 수가 없다. 148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자기 자신이랑 헤어질 수는 없잖아." 155


준비한 시간에 비해 식사는 언제나 휘리릭 끝나버리고 만다. 하루이틀만 지나도 오늘 차린 밥상 같은 건 슬아나 웅이나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복희 자신조차도 잊을 게 분명하다. 226


"밥은 책처럼 복사가 안 돼. 매번 다 차려야지. 아점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저녁 차릴 시간이야."

슬아는 그제야 복희를 돌아본다. 228


서로가 서로의 수호신임을 알지 못하는 채로 그들은 종교의 근처를 배회한다. 297


모두가 자기 삶을 책으로 쓰는 건 아니다. 작가들은 겪은 일을 총동원하여 글의 재료를 모으고 때로는 겪지 않은 것까지 끌어다 써가며 자신보다 커다란 이야기를 완성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와 품위도 있다. 웅이 삶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은 달리는 트럭 안에서 한 번쯤 말해진 뒤 기억 속으로 멀어진다. 웅이의 이야기는 언제나 경험보다 작다. 300


"아름다움은 중요한 가치야.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아. 그렇지만......"

아이가 슬아를 본다.

"무엇이 아름다운 건지는 우리가 직접 정할 수 있어. 너는 너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명하게 될 거야.

슬아와 아이는 글을 마저 읽는다. 가족의 유산 중 좋은 것만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들로부터 멀리 갈 수 있을까. 혹은 가까이 머물면서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에게 정중한 타인인 채로 말이다.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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