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 윤고은
쇼핑부터 주거까지 회사 내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그러나 인간미라고는 전혀 없는 회사 '정글'에서 장기근속하며 과장 자리까지 올라간 주인공 고요나.
정글은 재난 여행지를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재난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구 곳곳에 일어나는 재난이 누군가에게 돈벌이가 되며, 타인의 불행도 자본주의적 가치로 환산되는 오늘날의 단면을 보여준다.
기계 부품처럼 매뉴얼대로만 고객을 응대하던 그녀는, 휴가를 계기로 다소 누그러지지만 여전히 여유 없고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정글은 그만두고 싶지 않는 회사지만 그녀의 자리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 직원 복지를 지닌 탄탄한 회사로 규모를 키울 만큼 재난 여행 상품 모객이 가능한가 의문이 들었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재난 지역에 흥미를 가질 법도 하지만, 그것이 지속적으로 상품이 되려면 끊임없이 그런 사건을 보고 싶어 하는 구매자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법적인 문제나 안전 문제도 보통 여행상품과는 다르게 복잡할 게 분명하다.
망해가는 상품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요나가 본 자사의 재난 여행 상품은 조작된 이벤트들과 연기하는 원주민들의 쇼로 포장되어 있었다. 오래 묵어버린 재난은 관광객을 끌어들이지 못했고, 지역민들은 서로 원한 관계이던 두 부족이 싸우고, 한 부족을 참살하는 광경을 기꺼이 연기한다. 가해자 부족이 피해자를 연기하더라도 관광객은 알 방도가 없다.
관광객을 위해 머리 잘린 부족민을 연기해야 하는 것이 실제 피해자나, 그들의 유가족이었다면 재난 상품은 그 자체로 도덕적 비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과연 반짝 이벤트도 아닌 지속 가능한 판매 상품이 될까?
또한, 파괴는 오늘날의 기술로 훨씬 조작이 쉽다는 점에서, 재난 지역 상품이 고객에게 얼마나 매력적일까 하는 의문도 곧이어 들었다. 만약 어떤 재난 여행지가 대규모 모객에 성공해서 가난한 시골마을의 지역 경제가 살아날 정도라면, 후진국일수록 일부러라도 유사한 재난을 초빙하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읽다 보니 이 의문이 바로 이 소설의 중심을 관통하는 스토리였다.
몰락해가는 관광지인 '무이'는 재난을 꾸며서 일으킨다. 일개 독자인 나도 상상할 수 있는 문제를 주요 스토리로 다룬다면, 이제 이야기는 인물이나 사건, 심리묘사 등으로 풀어가는 능력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요나는 귀국길에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일행과 떨어지게 되고, 다시 여행지의 숙소 벨에포크로 돌아가는데, 그곳에서 일행이었던 프리랜서 작가 황을 만난다. 그리고 적자에 허덕이는 벨에포크가, 아니 그 리조트와 일대를 매입한 기업 '폴'이, 황의 시나리오대로 재난을 기획해서 일으키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건에는 시체를 사용한다고 했지만, 이들이 재난에 필요한 시체를 적극적으로 제작하고 있음을 요나는 목격해서 알고 있다. 공사차량인 노란 트럭이 주민들을 들이받은 다음,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몇 차례 전진 후진을 반복한다는걸. 게다가 '악어'로 표현된 수상가옥의 원주민들의 대규모 희생도 그 계획에 포함된다는 것도 후에 알게 된다.
마을 사람들, 그리고 폴의 직원들, 벨에포크의 직원들이 모두 공모해서 꾸미는 계획이 과연 비밀 엄수가 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뒤로 접어 두자. 그리고 계획에 투입된 노동자들이 파편으로서 업무를 맡아 전체를 모른다는 것도 인정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일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날조된 재난 그 자체가 사기라는 걸 모르진 않는데, 누구 하나 반대하는 이가 없다. 가난한 무이의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요나의 태도는 상식적이지 않다.
수 십, 수 백의 인간이 죽어도 내 실적이 오른다면, 내가 잘리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잠시 눈 감고 못 본체 하자고 요나는 생각한다. 고객이 눈물로 사정해도,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억지라 느끼면서도, 회사의 이익을 적극 반영해서 AI처럼 차갑게 거절해왔던 요나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자기의 안위와 이익 외에는 관심이 없는 고요나라는 캐릭터라면.
그러나 요나는 그곳 현지인인 20대 남성 럭과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저곳 여행상품 개발을 위해 함께 다니는 며칠 사이에 사랑에 빠진다. 럭이 죽는 미래를 용납할 수 없게 되자, 그녀는 비로소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다. 즉, 럭이 시나리오의 희생자인 걸 몰랐을 때는 수상가옥 주민들이 몰살 당하는 것도 내 탓은 아닌걸 하고 생각해 왔다.
재난을 기획한 바로 그날, 예정된 시각보다 4시간 이른 새벽에 진짜 재난이 무이를 덮친다. 요나는 노란 트럭에 이미 죽음을 맞았지만, 그 재난에서는 황도, 매니저도,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재난 이후, 황이 쓴 시나리오가 만천하에 공개되었음에도 무이는 재난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폴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재난에 시나리오가 필요하다고 해도 굳이 럭이나 요나가 죽을 필요는 없다. 이미 수백 명의 삶이 희생될 예정이고, 살아남는 관계자들도 숱하게 많다. 게다가 요나는 공범이자 여행 상품 개발자로 죽으면 오히려 곤란하다. 공범이니 협박도 더 쉽지 않은가. 굳이 위험을 높이면서 현지인과 여행사 직원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를 끼워 넣는 대신, 그 이야기는 그저 시나리오에서 빠지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폴이라는 기업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과 같이 악 그 자체로 묘사되고, 가해자와 희생자 프레임이 명확하다. 럭의 죽음이 계획에 포함된 걸 알기 전까지는 요나도 명백한 가해자 쪽이다. 주민이 트럭에 치여 살해당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죄책감에 크게 시달리지도 않고 계획에 합류한 점에서, 그녀의 희생은 이타적인 게 아니라, 이기적인 사랑의 결과물이었을 수도 있다.
요나의 사랑부터 이야기는 중반 이후 짧고 급작스럽게 전개된다. 럭은 안개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작가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인물들은 헉헉대며 그 이야기에 끌려가고 있는 것처럼 버거웠고, 사람의 목숨도 그저 줄거리의 일부로만 기능하는 게 섬뜩했다.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작가는 개연성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목숨을 이렇게 가볍게 취급할 수 있는가, 그래도 되는가?
오늘날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부품처럼 기능하는 인간을 우화적으로 묘사했다고 보여지나, 소설의 개연성은 많이 아쉬웠다.
가독성이 좋아 2~3시간이면 완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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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하인리히 법칙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의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작고 작은 수백 가지 징조가 미리 보인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재난의 발생에 주목한 것일 뿐, 재난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규칙이 있을 리 없다. 재난은 그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황준모가 이 일을 업으로 삼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수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전에 작업한 지역이 어디인지는 끝내 말해 주지 않았지만, 그것이 인공적인 재해임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믿지는 말라고. 3퍼센트쯤은 가짜일 수 있다고.
"불안하지 않나요?"
" 예술가에게 불안은 신발 같은 거니까요. 어딜 가든 걸으려면 신발이 필요하죠."
김은 역정을 냈다.
"몇 번을 말해야 알겠나. 요즘 회사가 어지럽다니까. 파울 때문이야. 그러니 어서 돌아오라고. 쉬는 동안 정말 쉬기만 한 건 아니겠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야 할 거야."
(...) 그 통화 후, 요나는 전에 없던 속도로 일을 마무리했다. 요나는 이번 일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노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