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물성은 어디서 올까?

고요잔에서 시작한 커피의 물성에 대한 고찰

by 은빈 eunbean

안녕하세요, 은빈입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한 번씩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커피의 물성입니다. 정확히는 커피를 어떻게 입체화 시켜 카페 메뉴판이나 인스타그램 피드에 담을지 하는 이야기 말이죠.


디저트 음료가 메인인 카페라면 총천연색의 시럽과 기포가 톡톡 터지는 탄산, 과채가 담긴 밝고 트로피컬한 피드를 만들기 쉬울 겁니다. 하지만 제 주위에는 딸기, 수박쥬스를 마실 바에야 딸기맛 나는 에티오피아, 박과류 풍미가 있는 애너로빅 워시드를 선택하는 스페셜티 커피 덕후 사장님들이 더 많죠ㅎㅎ


요즘엔 로스팅 단계가 다양해지면서 일괄적인 ‘검은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검은색~밝은 갈색 사이의 이 칙칙한 액체를 사진이나 영상에 매력적이게 담아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액체여서 손에 쥘 수 있는 물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우리는 이 모노톤 액체를 손에 쥐기 위해 다양한 컵에 담습니다. 제가 브루잉 커피를 처음 마시러 다닐 무렵엔 카페에서 200ml 내외의 작은 노리다케, 아라비아 핀란드 같은 엔틱 커피잔을 주로 사용했는데요. 요즘엔 좀 더 편안한 머그잔이나 로우키, 카페 공명처럼 시그니처 커피잔을 만들어서 쓰는 곳도 많아졌어요.


그리고 약 2년 전부터 새롭게 나타난 커피잔이 있습니다. 바로 센서리잔(or 아로마컵)이예요. 입구를 모으거나 병목 부분을 곡선형태로 만들어 휘발성이 강한 커피의 아로마를 컵 안에 오래 담아두는 역할을 합니다. 덕분에 유려한 곡선이나 아름다운 6각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아 마치 천년 전에 유행하던 도자기를 작게 줄여 손에 쥔 것만 같죠.



이러한 센서리잔의 형태는 코가 잔에 담긴 상태로 커피를 삼키게 되어 일반컵 보다 아로마를 더 직관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능들을 살피다 보면 이 아름다운 컵이 커피의 날아가는 물성을 어떻게든 잡아내서 느끼기 위한 커피덕후들의 위대한 발명품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 GPU가 전세계 주가를 흔드는 최첨단 AI 시대에 물성이 없는 액체와 기체를 잡아두기 위한 천년 전 그릇의 재현이라니, 너무 로맨틱하지 않나요?





✨️사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운명적으로 만난 저의 새로운 커피의 물성 때문인데요ㅎㅎ 요즘 트렌드라는 달항아리도 부럽지 않을 고려청자의 빛깔과 쉐입을 담은 고요잔 운학문 에디션 입니다.


영롱한 녹색의 잔 안에서 밝은 갈색으로 빛나는 저의 스페셜티 커피를 보자면 이것이 커피가 물성을 가지고 가장 아릅답게 내 앞에 현현한 형태구나 하는 경이감이 듭니다. 너무 자의적인 표현이 아니냐고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이 관능의 영역이니까요ㅎㅎ


저는 커피가 생업이 아닌 브랜드 기획자지만 이 컵과 그 안에 담긴 커피를 보면서 오늘도 회사를 때려치우지 않을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커피 자체로도 참 좋은 취미지만 커피를 담기 위해 이런 뛰어난 분들이 나타난 것도 제 취미의 축복이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숨 막히는 일상을 버틸만해 지는 것입니다.


제가 늘 뒷북을 치며 맛있다고 자랑하는 다 팔린 원두들처럼 고요님도 당분간 공방을 닫는다고 합니다. 돌아오실 때까지 저의 아름다운 문화재를 열심히 써야겠지요.


새로운 고요공방에서 구워질 저의 두 번째 문화재를 상상하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오시는 모든 분들께 맛있는 커피와 행복이 함께 하시길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