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12년 동안 홈카페를 함께 지켜온 전동 그라인더가 망가졌습니다. 범인은 에어리에서 로스팅한 에티오피아 스카이 프로젝트로 육안으로 봐도 아주 작고 단단한 에티오피아 74158 종이었어요.
☄️기후 위기 때문에 커피 벨트가 북상하면서 에티오피아 스페셜티 커피 재배는 해발 2,550m까지 올라갔습니다. 이제 고도 2,000m 이하 지대에서는 커피신의 축복이 내리던 시기의 선명하고 밝은 에티오피아 원두를 만날 수 없다고 해요.
제가 쓰던 독일제 전동 그라인더는 이런 기후 위기와 언더에 가까운 라이트 로스팅 트렌드가 겹치기 훨씬 전에 설계된 제품이었습니다. 10년 넘게 단 한번의 잔고장도 없던 녀석이 고지대에서 자란 작은 원두를 거를 기술은 가지지 못해서 모터 어딘가에 원두가 박혀버린 것이죠…
다행히도 그동안 기술이 발전하면서 5만원대에 작은 원두도 잘 걸러내고 라이트 로스팅 원두도 한 잔 정도는 거뜬히 갈아내는 전동 그라인더가 태어났습니다. 심지어 반갑게도 국내 브랜드에서요! 바로 홀츠클로츠 E80입니다.
12년 전 구매한 그라인더는 14단계 분쇄도 뿐인데도 분쇄 입자 크기도 고르지 못했는데요. 이전 그라인더와 달리 E80은 80단계의 분쇄도를 지원합니다. 15~20g 정도라면 언더 느낌이 살아있는 라이트 로스팅도 거뜬히 갈아내요. 거기다 기본 구성품에 블로워도 있어 아까운 원두 1g도 팡팡 털어낼 수 있습니다.
아직 10년을 써보진 못했으니 내구연한을 보증할 수는 없지만 무광의 검은색 바디는 충분히 고급스럽고요. 작은 호퍼에 꽉 차있는 팝코닝 방지 실리콘 가드 덕분에 분쇄입자도 고르게 나옵니다. 아직은 예뻐하지 않을 구석을 찾기 어려운 제품이예요.
아프리카의 기후 위기가 한국의 1평도 되지 않는 작은 홈카페에 10년 만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 놀라우면서도 이를 대비해내는 홀츠클로츠의 저력에 새삼 놀란 한 달간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이런 작지만 큰 기술력, 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집중력을 무척 좋아하네요
…물론 5만원대 E80 대신 400만원대 EK43을 산다면 훨씬 더 원두의 향미를 살릴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E80을 구매하고 남은 차액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상승하고 있는 커피벨트에서 살아남은 맛있는 원두를 구매하기로 했습니다ㅎㅎ 물론 제가 이부진(님)이었다면 맛있고 비싼 원두도 EK43도 다 샀겠지만요☺
주변에 폼 좋은 수동 그라인더를 사고도 이를 돌리지 못해 홈카페를 포기하시는 많은 분들에게도 E80을 추천드려요. 일단 사무직으로 10년 넘게 근무하며 쇠질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저는 전동 그라인더 없이 홈카페 생활을 할 수 없답니다. 손목, 어깨 약한 우리집의 프린세스 분들, 모두 어서오세요!
그리고 격변하는 생두 시장 속에서 기가막힌 녀석들을 골라와 열심히 볶아주시는 데다 제 취향 딱 맞게 분쇄도도 조절해주신 싱글배치 사장님 감사합니다. 싱글배치 태어날 때부터 함께 했을 것 같은 E80은 이제 저희 집에서 팽팽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ㅎㅎ
마지막으로 스페셜티 커피가 사라지지 않게 같이 사랑하고 즐겨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덕분에 10월은 지갑은 얇으나 마음이 풍성한 한 달이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