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길(8)

교차로

by 별의 여백

번잡한 교차로가 훤히 보이는 가게 안에서 한참 남은 약속시간을 기다릴 때였다.


점멸하는 초록불.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그 모든 발길이 건너편에 닿자마자 바뀌는 신호.


또 다른 신호를 따라 다른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자동차의 행렬.


씨실과 날실처럼 도로를 지나는 이들이 짊어진 각자의 사연은, 거대한 직기(織機) 같은 교차로 위에서 하나의 개연(蓋然)으로 직조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몇 번이나 반복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쉴 틈 없이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와 바쁜 걸음들 사이로, 하얗게 그어진 횡단보도의 평행선들이 언뜻 비쳤다.


보잘것없이 감아놓은 나의 하루를 겨우 통과시킬만한 자그마한 그 틈은, 바삐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수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져 갔다.


내가 오늘 대충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엮어내려 갈 틈이 아직 저 사이에 남아 있긴 한 걸까.


순간 저 틈을 파고들어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저 촘촘한 틈바구니에 나의 조악한 하루를 억지로 엮었다 헐거워지는 것은 아닐지.


빠듯하게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버텨내기만 한 나의 일상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난 울적한 마음을 눌러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약속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 짐을 챙겨 초록불이 막 켜진 횡단보도로 달려 나갔다.


하얀 화살표를 밟자마자 깜빡거리던 신호등은, 건너편에 발을 딛자마자 빨간불로 바뀌어버렸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두른 걸음에 흘러내린 가방을 추켜 올리는 사람.


목적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서둘러 지나가는 사람.


기다리는 이를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사람.


모두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잠시나마 오만했던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겨우 내 하루를 엮어낸다 해서 헐거워질 오늘이 아니었을 텐데.


머쓱함에 소리 없는 한숨을 작게 내뱉을 때였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하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의 어깨너머로, 반복되는 번잡한 교차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을 바삐 지나는 비슷한 크기의 다른 하루들은, 오늘이라는 커다란 직물의 남은 날실 사이로 계속해서 엮여가고 있었다.


이전 24화동네길(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