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길(7)

계절

by 별의 여백

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높다란 건물들 사이, 바람이 드나드는 그 틈에서는 많은 것들이 변해간다.


놀이터를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들은 어느덧 책가방을 매고 바쁘게 그곳을 지나치며, 사계의 바람이 지나는 동안 같은 자리에서 볕을 쬐던 누군가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매일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거울 속의 나도, 일 년 전에 비하여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또 한 번, 숫자가 바뀐 해의 첫 계절에 난 고집스럽게도 여전히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길을 걸었다.


작년의 내가 미리 새겨 놓았던 보이지 않는 발자국을 따라, 같은 속도와 같은 보폭으로 익숙한 자리를 돌고 또 돌고.


그러다 잠시, 이제 막 꽃을 틔운 나무 아래 멈춰 서서 스러져가는 계절을 밟아본다.


낱낱이 흩어진 꽃잎을 밟고, 파인 발자국 안에 고인 빗물을 밟아 젖은 신발로 마른 낙엽을 바스러뜨린다.


곱지 않은 흙이 된 그 자리 위에 눈이 쌓이면, 하얀 눈 밭엔 일 년이 시커멓게 달라붙은 나의 걸음이 짙게 새겨진다.


그때의 난, 내가 밟아 붙잡은 그 계절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발을 꾹 내리눌렀었다.


그러나 시간을 따라 산화(散花)해버린 내 발자국은 결국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린 발자국을 겨우 그러모은다면 과연 몇 년치나 될까.


무언가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채 흘려보낸 시간들이 그립고도 야속했다.


지나가는 이의 얼굴에 만개한 젊음을 눈으로 어루만지며 곱다- 하던, 어른들의 그리움과 완전히 같은 모양의 감정은 아니었다.


설익어 붉어지다 만, 떫은맛에 가까운 치기 어린 그리움이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잠시동안 그 떫은 감정들을 곱씹다 헛웃음이 났다.


이제는 지나간 버린 것들을 붙잡을 수 없음도, 억지로 그리움이라 이름 붙인 그 감정이 부질없음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발에 주었던 힘을 빼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보았다.


풀이 돋아난 흙더미에 남은 것은 내 발자국이 아닌 또다시 새로운 봄을 맞아 약동하는 이름 모를 것이었다.


나는 차마 그것을 짓밟아 내 흔적을 남기려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주변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늘을 보니 바람을 따라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방향으로부터, 어디선가 달큼하고 풋풋한 향기가 흘러 왔다.


난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등 뒤의 꽃나무에서 상큼한 꽃향기가 나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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