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기업 오너가 묻고, DX 전문가들이 응답한 ‘패션 DX 실전’
패션기업의 디지털 전환은 강연장이나 시스템 설명회에서 이해되는 일이 아니다.
강연장과 회의에서 아무리 좋은 인사이트를 공유하더라도 조직의 갈등, 오너의 한 문장, 팀 간의 작은 충돌 속에서 방향이 정해지고, 대부분의 실패도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최근 진행된 한 중견 패션기업의 DX 미팅도 그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오너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DX,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겉으로는 기술 질문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기술이 아니다.
핵심은 경영의 언어와 브랜드 구조다. 구조 없는 상태에서 기술을 넣으면 혼란이 확대되고, 구조를 가진 브랜드는 AI 시대에 더 빠르고 강하게 성장한다.
전문가들은 F&F·신성통상·ZARA와 함께 아뜨랑스(Attrangs)를 '한국 패션기업이 실전 DX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했다.
# HR이 아니라 Hybrid Resource의 시대-디자인·운영·마케팅의 ‘역할 언어’가 재설계되는 순간
전문가는 간담회 초반 이렇게 말했다.
“DX와 AX는 사람을 줄이는 게 아닙니다. 일을 다시 설계하는 겁니다.”
패션기업의 인력 구조는 ‘70% 설계자 + 20% 자동화 + 10% 외부 전문성’으로 재편되고 있다.
디자이너·MD·마케터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F&F·ZARA·아뜨랑스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F&F는 브랜드·시장·데이터를 단일 파이프라인으로 묶어 상품 반응–콘텐츠–광고–재고–공급망을 하나의 순환 구조로 재정렬했다.
ZARA는 AI 기반 예측과 매장 시스템을 결합해 ‘빠른 생산’이 아니라 ‘오류 없는 생산’이라는 새로운 속도를 구현했다.
그리고 아뜨랑스는 이 구조를 가장 일관되게 국내 실무에 적용한 브랜드다. 아뜨랑스는 기획→무드보드 생성→상세페이지 문구→이미지 보정·룩매칭→SNS 소재→글로벌 언어 로컬라이징까지 이어지는 전 공정을 하나의 AI 파이프라인으로 통합했다. 덕분에 아뜨랑스는 속도·정확도·콘텐츠 양을 동시에 끌어올리며 "한국형 AI 활용의 실전 모델"로 자리 잡았다.
업계가 가장 어려워하는 ‘콘텐츠 생산–기획–마케팅의 단절’을 자동화로 연결한 대표 사례다.
전문가들은 “브랜드가 먼저 기준을 가져야 AI가 들어올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졌다.
“도입은 쉬워요. 조직이 따라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DX 실패는 언제나 조직에서 시작된다. 데이터를 거부하는 실무자, 참여하지 않는 오너, 전략팀 부재로 충돌하는 PLM·ERP·AI 시스템. 이 문제를 가장 현실적으로 해결한 기업이 신성통상이다. 신성통상은 상품기획을 수치화하고, 온·오프라인 판매 데이터를 SKU 단위로 통합하며, 광고·촉진 구조까지 하나의 운영 언어로 묶었다.
지난 ‘2025 설텍’ 강연에 참여한 송대문 신성통상 임원은 다음을 강조했다.
“DX는 멋있는 대시보드가 아닙니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자동화와 데이터로 제거하는 일입니다.”
아뜨랑스 역시 구조를 먼저 만든 뒤 기술을 얹었다. 이미지–문구–룩매칭–로컬라이징 같은 콘텐츠 공정이 브랜드 언어의 기준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AI가 생산 속도를 높여도 브랜드 톤이 흔들리지 않는다.
F&F와 ZARA 또한 기술보다 먼저 내부 기준을 갖추었기에 데이터와 AI가 ‘혼란을 키우는 요소’가 아니라 ‘운영상의 이점을 강화하는 도구’로 작동했다.
간담회 후반부의 핵심 주제는 AI와 PLM의 관계, 그리고 KPI 재설계였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AI는 속도를, PLM은 구조를 만듭니다. 그리고 KPI가 그 구조를 문화로 고정합니다.”
이 지점에서 네 개 브랜드의 전략이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ZARA는 예측 정확도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SKU를 무리하게 늘리지 않고, 반응 기반 리필 구조를 구축했다. F&F는 국가별 판매 흐름을 단일 데이터 구조로 통합해 재고·콘텐츠·마케팅이 동시에 조정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신성통상은 기획·영업·마케팅의 판단 기준을 일원화해 데이터 기반 KPI 운영을 정착시켰다. 그리고 아뜨랑스는 콘텐츠–기획–마케팅을 AI 파이프라인으로 묶으면서 ‘빠른 업로드’가 아니라 ‘정확한 업로드’라는 KPI를 확보했다. 팬층이 원하는 무드·스타일의 일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단가·속도·효율까지 동시에 개선한 구조다.
네 기업 모두 같은 메시지를 공유한다.
“속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정확도는 구조가 만든다.”
토론의 결론은 명확했다.
“DX는 시스템 프로젝트가 아니라 경영 리더십의 실험입니다.”
패션기업의 성패는 어떤 AI를 도입하느냐가 아니라 오너와 조직이 어떤 언어로 일하느냐에 달려 있다.
F&F의 데이터 구조, 신성통상의 운영 언어, ZARA의 예측 기반 운영, 아뜨랑스의 AI 파이프라인. 이 브랜드들은 공통적으로 기술보다 먼저 ‘구조’를 만들었다. 그래서 AI 시대에 더 강해질 수 있었다.
AI는 브랜드를 바꾸지 않는다. 브랜드의 구조를 확장하거나, 그 부재를 드러낼 뿐이다.
2025년 이후 패션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기술을 들이기 전에, 우리 회사는 어떤 언어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가?”
이 글은 컨퍼런스&커뮤니티 미디어 '디토앤디토(www.dito.fashion)' 11월 26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 디토앤디토는 디지털 혁신과 브랜딩, 글로벌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한국 패션기업의 지속가능성 확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