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다시 만난 계절
십 년을 넘게 사직터널 길을 오고 갔다. 사직터널 위에 동산이 하나 있었다. 아주 자그마한 동산. 사직터널 위 자그마한 동산은 사월이 되면 온통 하얀 아카시아로 뒤덮였다. 동산은 작았지만 꽃이 피기 시작하여 절정에 다다르면 진한 아카시아 향을 멀리서도 맡을 수 있었다. 이곳의 정수는 하얗게 뒤덮인 동산도, 그 위로 점점이 떨어지는 햇살도 아니다. 아카시아 향. 그냥 아카시아 향이 아닌 사직터널 안에 갇힌 지독한 아카시아 향이 사월 눈부시게 빛나는 이곳의 정수이다. 사월이 되면 터널 안은 온통 진한 아카시아 향으로 가득 찼다. 지독한 아카시아 향 때문에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다. 그런데도 나는 아카시아 향이 좋아 검은 먼지가 얼굴에 달라붙는 것을 감수하며 버스 창문을 열어 두었다. 향은 머리에, 피부에 아로새겨져 지독할 정도로 오래도록 코끝에 붙어 다녔다. 집에 앉아서도 밤의 알싸한 공기 속에서 아카시아 향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항상 봄이 시작될 때마다 후들거리는 가슴을 안고 사직터널을 지나며 기다렸다.
그런데 막바지 추위로 겨울의 마지막을 신고하던 날, 사람들이 동산에서 아카시아를 잘라내고 땅을 들쑤셔 놓는 것을 보았다. 뭐지. 불안했지만 뭐 별일이 있으려고 생각했다. 봄이 되자 사직터널 위로 선명한 노란 개나리가 피었다. 나는 개나리가 지고, 봄이 지나갈 때까지 사직터널 길은 지나가지 않았다. 봄이 지나고 지독한 아카시아 향이 코끝에서 사라지던 시기에 가슴 떨리게 좋아하던 사람을 마음에서 놓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인연과 집착의 끈을 놓고 나니 단단한 문장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사람을 마음에서 보내고서야 글 쓸 자리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 시절 항시 선생님은 연애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는 선생님이 아이들의 연애를 질투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아니었다. 글과 연애, 두 가지 모두 통제할 능력이 나에게,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사직터널 위의 작은 동산이 무척 그립다. 사실 오늘 일만은 아니다. 요새 자주 사직터널이 생각난다. 봄볕이 따뜻했던 사월. 아카시아로 가득했던 사직터널. 사월의 아카시아 향을 생각하니 또 가슴이 후들후들 떨린다.
춥다. 감기가 오려나 으슬으슬 춥다. 감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몸이 말하는 것이지. 봄이 오고 있어, 봄이 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