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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희 Dec 28. 2021

3화.  말을 걸어왔다.

난, 산으로 출근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 된다'의 마음가짐  현주소가 선명 해졌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날이 많아질수록,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머리가 비어지는 상쾌함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 살아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힘들었던 일이 파도처럼 일렁이다 사라지고, 기뻤던 일이 눈앞으로 쑥 들어와 입가에 미소 짓게 하고는 사라지기를 여러 번.


한 날은 땀 닦으려 발걸음 멈추고 서서 고르다, 시야 따라 내 안으로 들어오는 생각이 '툭' 치며 말을 걸어왔다. 자꾸 내 머릿속을 스치고 달아나는 생각 붙들고, 얘기를 나눠 볼 흥미가 생기니 흘리는 땀도 숨이 차서 헉헉 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무엇을 할까' 머릿속에 달고 살았던 일을 가장 먼저 꺼냈. 하고 있는 것이 지루하다 싶을 때가 아닌, 호기심이 발동을 걸어오면 생각에 돌입해 일을 벌였다. 이제 뇌세포 뉴런이 막 활개 치는 초등생 시기를 지나도 몇십 년이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판이니 호기심을 줄일 때가 된 것이라 말한다. 호기심 따라다니느라 넓어진 지식은 좋지만, 가짓수가 많은 것이 문제라 본 모양이다. 언제인가 쓰겠다고 구석구석 넣어둔 것들을 비워 단순 해지는 것이 맞을 거다. 미룬 일이 얼마나 많으며, 관심 두었다 어느 때부터 모른 체한 일이 여기저기 널려 있으니, 주워서 필요한 것은 통합하여 묶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게 맞다.

더 깊이 생각 든 것은, 지금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선 해놓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 

반갑게 동의했다. 이제 시작을 선언한 것뿐인데, 가벼워진 마음은 산 봉우리를 단숨에 올라온 듯 힘이 남았다. 그동안의 나의 행동으로 보아, 제2의 인생 마무리 과업으로 가져갈 요량으로 바쁜 마음에서 느리게 가보려는 것이다. 나에게 그 느린 마음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깨 볼 좋은 기회니 나름 꽤 진지해졌다. 벌여 놓은 것들이 정리된다면, 그 빈자리를 하고 싶은 것으로 채워서 도움이 되니 좀 더 선명 해진 것이 반가운 것이다.


  이날 이후 재미 붙인 산행 발걸음을 뗄 때마다 하나씩 떠올렸다. 

공부, 출판, 상담사, 사회복지사. 엄마 그리고.....

심리 공부는 지금도 진행 중! 

끝이 안 보이는 부담감 추가는 새로이 가동된 마음을 짓누르니, '휴~~~ '끝에 피식 웃음이 입가로 흘러나왔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던 것. 

심리 공부는  자신을 돌보는 시간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니, 평생 하는 것이 맞을 거라 빠르게 정리 목록에 올린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물고 늘어진 것이 '무엇을 할까'였다. 그중 가장 큰 줄기가 공부였다. 자랄 때 가난했고 딸이라 집안일이 우선이었고 공부는 아들이 우선 되었다. 하지 못하게 하니 더 하고 싶었던 간절함이 고졸로 시집을 와서도 놓을 수가 없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시작해 쉽지 않은 보행이었지만, 석사로 마무리한 것은 잘한 일이다. 박사가 욕심나 기웃기웃하다가 욕심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경제, 나이, 건강 등을 고려하여 내려놓았. 하지만  뜻을 두고 사회복지와 심리전공을 하여 상담사로 사회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으니, 공부의 결실을 톡톡히 본 것으로 충분하다 것이다. 

남은 삶의 시간에 몸소 실천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안 것이 뒷받침이 되었다.


 이런 나의 보행을 지켜보았거나 듣게 된 타인들은, 늦은 나이에도 공부에 손을 놓지 않고 해 낸 것에 '대단하다' 추켜세운다. 그로 인해  지지받는 게 맞을 거다. 그려면서도 난 자꾸 어색하고 멋쩍음이 한참 동안 머물렀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기에 당연하다 여겼다. 남의 옷 입은 듯 불편한 마음 알아차리고 있었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받아들이려 뜸 들이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남아 있었다. 내 안의 나에게 자문을 구하고 기꺼이 받아 챙기면 편안할 것을, 지금까지 쉬 내려놓지 못했다.


그 마음에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게 자리 잡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라면서 칭찬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다. 5,60년대를 지나 70년대까지 청소년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그 시대 부모님들은 배고픔을 다시 겪으면 안 되었고, 사회는 허허벌판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가난을 벗어나는 수단은 좋은 위치를 얻어 안정적 삶을 갖는 것이었는데, 공무원은 손꼽히는 직장으로 현재도 이어지는 것이 신기하다. 그것은 바라보는 시각과 무게감이 지나온 세월만큼 현재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생계유지로의 선택은 공통적이나 그 시대는 명예와 자부심으로 가문의 영광이었고, 지금은 잘릴 염려 없는 그러니까    항간에는 철밥통이라 말하는 안도의 직장이다. 군다나  시대꼭 성공해야 하는 것이 살 길이라 여기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는 신념이 단단히 박혀 최대이면서도 최종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더 잘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느라 칭찬에 인색했던 시기였다.  또한 어수선한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온 국민이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는 한국경제 개발에 기여했다. 나라가 온전히 있어야 자신들이 있다는 것을 뼈 아프게 경험했기 때문에 힘들어도 해내는 것이었다.


  그 현상들은 지금으로 이해하면 국가적 트라우마의 후유증인 것이다. 집단 트라우마의 피해자인 부모들은 나는 못 배웠지만 자식은 무조건 가르쳐 자식만큼은 힘든 삶을 벗어나게 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 밑바탕에는 무엇이라도 죽기 살기로 하면 살아나더라는 것을 안 어른들이었으니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살길이었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법칙이었고 안전했다.  남에게 해코지 않는 것은 나쁜 것이고, 착하고 겸손해야 한다는 거였다. 나는 부모라는 이유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에 반기를 자주 들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부모님 심기를 건드린 버르장머리 없는 딸이 되었다.


지금은 아버지의 알 수 없는 행동이 왜 그랬는지 이해되지만, 숨 막히는 아버지로 기억한다. 6.25 전쟁 참전으로 다리에 총상을 입고 통증에 시달려 신음하기도 하고 전우들의 비참한 잔상에 시달려 소리를 지르기도 하시는 고통을 감내하는 삶을 사시다 가셨다. 난세에 바른 말하다가 경을 치는 일을 많이 봐 왔다고 하셨다. 술에 많이 취해 귀가하신 날은 숨죽이며 무식한 척 모르는 척 살아야 함을 강조하셨다. 거기에 큰 딸로 태어난 사회적 배경도 보탰다. 말괄량이 딸에게 조신해야 한다는 슬로건이 버르장머리 없는 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 탓에 혼란의 내면의 아이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다. 오랜 세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나의 거울 사용으로 게으름을 경계하는 긴장감이었음을 제시한다. 더욱이 나 자신이 칭찬을 덥석 받다가 봉변을 자초하지 않으려 스스로의 엄격한 잣대로 를 닫았을 것이다. 이제 부모로부터 무조건 받아들였던 관념들은 내가 아니다. 그 누구보다 나는 부모의 삶과 나의 삶을 연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 시대는 공부로만 승부수를 두었다면, 요즈음 세대들은 다양한  능력을 가진 것을 끊임없이 관심 갖고,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내 거침없이 멋지게 드러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한다. 일과  즐거움을 함께 가지고 놀 줄 아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다룰 줄 알고 인정하는  자존감의 유연성은 우 중요한 인성이라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건강하다 할 것이다. 내게도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해 놓은 것에 대한 칭찬을 받아두어도 좋다 여기려 한다. 그러지 못하는 아니 익숙해진 나의 신념과 태도로 스스로를 옥죄는 관점을 내려놓는다. 이번 계기로 좀 더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을 통해 살아있는 현존의 나로 독립시키려 한다.  그 독립은 내게 있는 것 그대로 보기로 하는 것이다.  나아가 국가적 트라우마가 가족에게 대물림되는 것을 끊어 낼 힘을 키우는 것이다.


또한 나의 행동과 생각은 나만이 조절하고 바꿀 수 있기에  무의식 속에서 키워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 태도를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넓혀 가기로 한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 관건일 테니 칭찬은 지금부터 스스로의 자세를 낮추어 나를 지지하는 용도로만 받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데 쓰기로 정리한다.


산으로 출근하는 재미가 솔솔 붙어 갈수록 세심한 나를 들여다보고 내 삶이 숙성되기 위한 과정에 과감히 버리기 활동이 시작되어 기분이 좋다.


"평범한 제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작가님의 마음에도 다가가 말을 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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