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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희 Dec 14. 2021

2화. 그랬던 거야!

난, 산으로  출근한다

오랫동안 벼르기도 했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


매달 돈주머니 채우느라 소신 갖고 쏟은 열정을 쳇바퀴처럼 돌리다 21년 8월 말일 멈추었다. 나이가 차서 국가 제도에 따라 멈추었으니 정년퇴임한 것이다. 퇴임이 가까워지자 나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이 묻기를 '그동안 해 온 일을 그만두니 서운 하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라고 궁금해했다. 그때마다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 한 가지 마무리했다 싶네요'라고 답하며 뜨거움으로 데워져 뿌듯했다.

이제 자유인으로 '드디어 제2의 인생이 주어졌구나' 생각 들었기 때문이었다.


질문에 답할 때마다  마음이 가볍기도 했지만 설렘이 커서 서운함이 밀려났다는 것을 알았다. 돌이켜보건대 누구나 그러할 테지만 여기 오기까지 애씀을 입에 쓴 내 나도록 했다. 시작이 늦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자리 잡겠다고 스스로의 한계를 넘고자 했다. 더군다나 사람의 마음 다루는 일이라 전문성을 갖추는 상담연수에 쉴 새 없이 쫓아다녔다. 그 준비 덕으로 늦은 나이에 취업해 일하게 되었다. - 아는 이들은 늦깎이 신입이 매우 신기한지 식사자리에서 한참 동안 화젯거리였다- 근무하는 동안 제도 안에 있었지만 비정규직이었기에 매년 재직자 자격 조사를 했다. 그때마다 근무 자격 턱걸이는 사회적 기준 벽에 부딪쳐 생채기를 남겼다. 그 흔적은 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성가심으로 다가왔다. 스스로에게 갖은 이유를 달아 얼버무려 10년을 버티다 끝내는 자부심이 아까워 맞장구치느라 50대가 넘은 나이에 대학원을 들어갔다.


대학과 달리 스스로 공부해야  얻어지는 관문이었다. 보아야 할 책도 많고 제출해야 할 과제들도 많았다. 낮에 일터에서 지쳐 저녁에 대학원에서 놓칠까 봐 집중하애를 썼다. 시간에 쫓기는 나로서는 떠 밀려서라도 구겨 넣어야 했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로서 반찬 만들어 가족들 먹이고 두 자식 훈육하고 친정집 들여다보는 일 최소화했음에도 바쁘게 치르고 나머지 공부와 밀린 업무 하느라 잠자는 시간은 3~4시간을 넘지 못하는 시간들로 보냈다. 


목표만 보고 오늘과 내일 이어달리기 선수로 살았던 다. 그렇다고 공부했다기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내게는 의문 투성이로 풀어보고자 했다. - 누가 그리 하라고 시킨 적도 없었기에 30대를 지나서 사람 심리를 알아가는 삶에  뛰어든 것을 탓할 마음은 없다. - 눈만 뜨면 줄타기 속 여유 갈증은 심해져 갔다. 그 틈을 비집고 살고 싶었던 자아는 평일에 일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어찌 그리 앞세우는지 '오늘은 안돼! 나중에 하자'밀쳐내기 바빴다.


사람과의 소통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는 것도 일정이 나지 않아 미루면 덜 ', 지금 뭐 때문에 살지?' 브레이크를 걸어왔다. '아차!' 싶어 위기의 순간이라 나 자신에게 미안해 틈 내어 지친 몸을 이끌고 주말 산행으로 달래본 적은 있었다.


마음은 홀가분해졌지만 눈만 뜨면 일손이라 몸은 평소에 운동하지 않아 다음날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뻐근했다. '~으' 연발하자 몸과 마음은 회복을 요구하며 한 통속으로 늘어져 있기를 원했다. 긴 시간 산행 욕심을 내었던 때 출근이 죽기보다 싫어 쉴 핑계를 찾다 마지못해 마음 추스르고 이불속에서 일터로 나서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애쓴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치열한 삶은 기회만 노렸을 터, 청소년 시절은 퉁 지더라도 30년 넘는 세월을 위기가 촉발될 때 갈증만 면하고 꽁꽁 묶어 두기만 하였으니 하고 싶은 것이 쌓여 있었고, 미루었던 일들이 대기번호를 받고 있던 터였다.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남아 돌 때 그때 실컷 하자' 달래 두었던 것들이 이참에 보란 듯이 튀어나온 .


아우성을 더는 미룰 수 없음을 알기에 나에게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면서 실천이 쉬운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쉬고 싶은 마음이 컸던 탓에 '산이나 가자'였다. 단순한 선택이었지만 산에 올랐을 때 정상의 상쾌함과 뿌듯함을 안겨주는 성취감까지 최고인 산행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사람 북적여 정신없고 환경이 복잡하여 머리가 묵직해 지친 나에게는 공기가 탁한 공간을 벗어나 신선함을 실컷 마시는 것에 딱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소에 무척 좋아했던 점이 한몫했던 것이다.

산행은 힘들 때마다 다녔던 것이 몸이 기억하였고, 시야가 트인 나무 숲을 헤치며 흙을 밟으면 살아있음을 알려주니 삶의 현주소임을 단박에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딱 좋은 환경인 것이다. 쉼과 즐거움 그리고 덤으로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이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 아닌가 싶다.


산을 찾을수록 퇴임 순간 카운트 다운하면서 내 지시대로 쭈그려져 눈치만 봤던 몸과 마음에게 충분한 쉼이 필요했다. 보챌 때마다 약속한 것을 지키고자 부지런히 산으로 출근하기로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나무에게 인사하고 맑은 공기 얻어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보며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나뭇잎들에게 가슴 펴서 환호해 준다. 걷는 발걸음 살피다 야생꽃 웃음에 쪼그리고 앉아 아침에 사과 한 개를 다 먹었고, 날이 더워 기운이 다 빠졌는지 지금은 배가 고프다고 쫑알대며 '내일 또 오마' 약속하고 오르내리는 맛도 즐긴다.


먼저 즐긴 사람들이 '어제의 그 산이 아니고 오늘의 산이 내일의 산이 아니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히 천천히 가고 찬찬히 들여다보니 알 것 같았다. 


꽃들은 어제는 봉우리로 있다가 오늘은 자신의 기운을 활짝 열어 꽃향기로 반기고, 

나무는 하늘 향해 더 펼치느라 새순이 늘고 푸르름이 짙어 갈수록 크기가 넓어졌음을 보았음이다.

땅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서 더 파이고, 비가 오는 날은 그 패인 곳이 쓸려 내려온 돌과 흙으로 메워져 새 길이 되고 새로운 사람이 그리고 어제의 그 사람이 오르도록 말없이 내어줌을 알게 되었음이다.

미쳐 눈길 주지 못했던 야생꽃이 눈에 띄면 ' 이름이 뭐니?, 언제 이리 자랐지' 거대한 보물을 발견한 듯 반가운 날은 하루를 반짝반짝 문질러 채워주는 맛을 즐긴.


내 마음 살피다 보니 나이 든 것이 참 좋은 것임을 알아가는 재미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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