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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희 Nov 25. 2021

난, 산으로 출근한다

1화. 좋은 선택


한 가지 일을 마무리하느라 애쓴 나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었나 보다


  산 봉우리에 올라 펼쳐진 경치를 바라보니 내가 살아온 그동안의 시간을 격려하듯 세상 이치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8월 중순 더운 여름날 아침에 '그냥 한 번 올라가 보자'하고 나선 등산이었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아 어리둥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집을 나설 때는 아무 생각 없었다.  올라오는 동안 들이차는 숨과 눈 속으로 파고드는 땀 번복을 나 몰라라 하더니 꿈틀대던 뇌는 숲을 이룬 나무들과 싱그런 잎이 내뿜은 신선한 공기에 반했다. 입을 크게 열고 두 팔로 안아 마신 덕이었을까? 내가도 찾지 않아 콕 처박혀 찌들었던 마음들이 더위 때문에 뛰쳐나와 씻겨 나갔는지 몸도 마음도 가벼워 신났던 차였다.  

흥분된 몸과 내 마음을 붙잡는 나무 사이로 들어차는 하늘빛에 초롱초롱 해진 눈은 힘이 들어가 이 광경을 담느라 동공이 산을 온통 빨아들일 듯하였다

이를 지켜보느라 들뜬 심장은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을 추스를 겨를 도 없이 펼쳐진 광경으로 거칠게 파닥거리고 휘둥그레진 눈은 쏟아진 빛으로 허둥지둥하여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 덕에 이 잔치상에 그동안 용케 쌓았던 내 성을 한 바탕 헤집어 정리된 개운한 맛을 보았던 시간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귀찮은 부스러기들은 걷는 발 밑에 터덜터덜하다 버려 미련 없다 생각했다. 산에 묻고 가벼워진 마음은 삶 속으로 들어와 흥얼거리며 든든해진 심장을 안고 이 날 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잠을 푹 잤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나니 두 을 들어 강한 빛을 가리고 아련히 보았던 것들이 어떤 맛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잠자코 지내는 일상 속에서 슬며시 파고들었다. 넋 놓은 순간 번뜩 스쳐 지나니 더 보고 싶은 궁금증에 온 몸을 쏘아댔


또 다른 하나는

다녀온 이후 그 여운을 지니고 힘을 내었던 모양이다.

산을 오르지 않는 날은 마음이 묵직하여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인지 나침반 바늘 빠진 것처럼 뱅글뱅글 허둥댔다. 어느 날은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하루 종일 피식거리니 존재감이 무뎌져 견디기 곤욕이라 눈만 뜨면 가자고 마음을 재촉했다. 그때마다 '다 귀찮다' 오르기 싫은 이유를 달아 몸살을 앓는 나를 알아채고 화들짝 놀랐다. 이쯤 되니 천하장사도 아닌지라 나 자신에게 두 손들어 의지를 앞세워 나섰다. 물, 근육통 이완제, 휴지를 주섬주섬 등산가방에 집어넣고 스틱을 챙겨 헉헉대며 산에 오르기를 군말 없이 해냈다.

지칠까 봐 포기할까 봐 졸아있는 마음에게 가보자고, 해보자고 혼잣말을 해주며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움츠렸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산 봉우리에서 온  구석구석 찾아 깨우는 신선한 공기를 받아 안고 보이는 경치들에게 한껏 으스댄다.

'내가 여기까지 드디어 올라왔다', '첫날의 기쁨을 다시 찾으러 왔다'라고 내 마음은 나비 되어 훨훨 날았다.

이 산 꼭대기에서 기쁨을 마구 불러대는 에너지 샘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고 외치고 나니 숨통이 트였다.


'이 맛이야, 바로 이 맛으로 힘들지만 사람들이 오르는구나'

경험을 해보아야 얻는 기쁨을 제대로 알았다.

'그냥' 시작이었지만 좋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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