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긴다」
나의 문장 속 '챙긴다'는 단어가 자주 표현 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무의식 안에 있던 말이라 꼼꼼히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큰 딸이어서 내어준 적이 많았다고 여기고 살았던 때문이다. 6형제가 되니 먹을 것은 늘 부족해 나눠 먹어야 했고 학용품도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가져가면 빈손으로 가니
'또 없어'
'오늘도 안 가져온 거야'
하는 친구와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곤 했다.
오빠에게 뺏기어 울기도 하고 동생이 떼쓰니 짠해서 양보하고 나면 내 것을 챙길 수 없었다.
준비물을 챙기지 않는 일이 잦다 보니 불성실한 학생이라는 딱지가 붙은 학교 생활은 한 껏 주눅이 들었다.
분명 남은 날이 있어 가져 간 날도 있었고, 사용하는 시간이 달라 쉬는 시간에 동생이나 오빠 교실로 달려갔다 오느라 숨이 차서 씩씩대며 수업에 참여했던 적도 있었다. 혼난 적이 더 많다 보니 가족 안에서의 나의 욕구를 채울 수 없었다 여긴듯하다. 그런 탓에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 애쓴 마음, 당황하지 않으려 버둥대던 마음이 억울함 을 담고 '챙겨야 한다'는 강박 속에 '버티는 힘'으로 자리매김했던 모양이다.
어른이 된 지금 다른 면으로 보면 동생들과 놀아주거나, 밥을 챙겨야 하는 의무감을 가졌던 어린 마음이 집안일을 거들어 힘들어하는 엄마 마음을 챙겼다. 날마다 그랬으니 버거웠을 테지만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마음으로 남은 것일 수 있겠고, 당연히 챙겨야 했던 성장의 삶 속에 익숙한 삶의 태도로 자신도 모르게 박힌 신념이 된 것이다.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와의 오랜 전 일이 생각났다. 그 친구와 일하는 곳에서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1박 2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하룻밤 묶을 펜션에서 짐을 풀고 주변을 들러보는 것은 다음날 아침으로 미루고 느긋한 마음을 즐기고자 분위기 내겠다고 술을 한잔 하였다. 서로 술은 처음이라 잔에 술이 줄지 않았다. 서로 잔을 들여다보고 '안 마시고 뭐 세요'라고 재촉하다가 오징어 다리를 입에 물고 질겅대다 이야깃거리에 깔깔대다 한잔씩 홀짝홀짝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머리가 멍해지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더 이상 버틸 것 같지 않아
'어휴 이제 그만 마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할 것 같아 샘 얼굴이 너무 빨개! 우리 소주 얼마나 마셨지요?'
소주 2병을 비웠음을 확인하고 옆에 있던 소주병을 들어 보이며
'못 마신다며 2병이나 비운 것 보니 우리 원래 술꾼이었나 봐요'
'그러게 한 병은 좀 아쉽고 해서 두 병은 좀 그렇고 혹시나 해서 한 병 더 샀는데 잘했네'
'그럼 한 병이 또 남았으니 마셔야 하는 건가요!'라며 손사래를 하다 마주 웃었다.
못 마시는 술을 마신 탓에 노곤하여 둘은 잠자리를 일찍 준비하기로 했다.
'창문 쪽이 시원하고 편하니 샘이 하셔도 돼요'
'샘이 해요'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샘이 하셔요' 라며
푹푹 찌는 여름이었기에 시원한 자리로 서로 양보하고 챙기고 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보다 더위 타는 친구에게 밀어붙여 일단락되었다. 누우니 생각보다 선선하여 밤하늘을 마주하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우리의 수다는 이어지다 친구가 코를 골게 되어 끝났다. 창문으로 들어온 밤하늘이 환한 데다가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탓에 코를 고는 친구의 베개를 고쳐주기도 하고 이불을 덮어주기도 하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놀래 깨어 아침을 맞이하였다.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다 얼굴을 습관적으로 토도독 두드린 소리에 샘이 깨어서는 '벌써 세수까지 했어요? 샘 한 잠도 안 자는 것 같던데'하였다.
그러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 자주 만나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몇 년을 지난 뒤였다. 우리 너무 바쁘게 사는 것 같다며 콧바람 쐬러 여행 가자는 말끝에 이때 잠결에 이불을 덮어주고, 베개를 고쳐 주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며
'잠도 자지 않고 챙기는 샘의 세심한 마음이 느껴져 속이 깊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 들어 놀랬어요'라고 말했다. 친구가 몇 년 전의 일을 잊지 않고 있었고 그 말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속이 깊은 것은 오히려 샘이네요'라고 반문했지만 나는 내가 한 행동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고, 그 당시 말이 없어서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아주니 쑥스럽지만 좋았고 그동안 표현보다 속으로 챙기고 있는 친구의 마음이 따뜻하게 와닿았다.
그날 이후 우린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더 자주 연락하며 만났고 속얘기를 터놓아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동갑이다 보니 살아온 경험도 비슷하여 무엇이든 서로 주고받으며 챙기는 사이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마도 습관적으로 한 행동이지만 무엇을 바라고 했던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받은 친구도 알아채었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 받아 챙길 수 있는 것은 그 친구의 몫이었을 테니 말이다. 서로의 진심이 통했던 것이라 주고받는 친구가 된 것이 지금 떠올려도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올렸던 시 '친구의 처방전'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친구가 어느 날 집에서 방울토마토를 사서 먹었는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맛이 아닌 달콤하고 감칠맛이 나니 자꾸 먹게 되더라는 것이다. 새로운 맛이니 분명 좋아할 거라 생각되어 내게 먹어보라며 보낸 것이었다. 출근 길이 바쁘니 이름이 들어오지 않아 내 이름만 확인하고 집으로 들여 밀어 넣고는 버스정류장으로 서둘러 걸어가야 했다. 발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집에 두고 온 택배물이 궁금했다. 난데없이 보낸 사람을 짐작해 보느라 머릿속으로 헤매고 있는데
'00에서 보낸 토마토 문밖에 있을 거예요. 정리하느라 힘드실 텐데 피로 해소하세요!'
라고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 또 혼자 있는 나를 생각해 주는 샘이구나'
아들 결혼을 앞두고 집 정리를 하느라 날마다 피곤에 지쳐 있음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힘들 것을 늘 놓치지 않고 챙기는 따뜻한 마음이 심장에 녹아들어 팽창된 기쁨에 답변하느라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쓴 시였다.
글을 쓰다 보니 '챙긴다'라는 단어를 많이 표현하는 내 안에는 '따뜻함'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찾았다. 그 친구 덕을 또 받은 셈이다.
'친구야 고마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오노레 드 발자크).
함께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친구의 처방전'이 궁금하시면 아래주소로 찾아와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