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과 더 작은 엄마- ➁더 작은 엄마

by 콩당콩당

엄마는 키가 작은 나보다 더 작다. 엄마는 자신과 키가 비슷하거나 더 작은 사람을 보면 반가워하고 신기해했다. “워예 키가 내랑 비슷하노.” 하며 껄껄 웃었다.


세상에 자기만큼 작은 사람은 없을줄 알았다는 듯. 엄마는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사람처럼 반가워했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엄마가 나보다도 첫째인 오빠보다도 키가 크던 시절,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빨랐다. 주말이면 맨발로 마당과 한옥 마루를 부산하게 뛰어 다니던 우리 삼남매를 단숨에 잡았다. 나와 언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빠를 잡는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오빠는 우리 동네 뒷산에서 남의 동네 뒷산까지 뛰어다니며 총싸움을 하던 실력으로 당시 학교에서 소문난 빠른 발이었다. 그 실력은 가을이면 열리던 운동회에서 더욱 빛났다.


“옴마야, 자봐라. 뉘집 아들인데 저래 잘 뛰노.”

오빠의 달리기를 본 어른들은 혀를 내둘렀다. 오빠는 늘 달리기에서 1등 도장을 받았고, 뛰다가 넘어지면 일어나 더 빠르게 치고 나가 앞서가던 친구들을 다 따라잡곤 했다. 그런 오빠의 특기는 동네 친구나 형 놀리기. 동네 형들도 잽싼 오빠를 쉽게 잡지 못했지만, 엄마는 오빠를 척척 잡아 야단치곤 했다.


한번은 동네에 어느 할머니가 기르던 큰 개가 나를 우리 집까지 왕왕 짖으며 따라왔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겁이 많았고 나는 개를 무서워했다. 내가 쫄보라는 소문이 동네 개들 사이에 퍼졌는지 개들은 나만 보면 더 사납게 짖었고, 마치 나를 물 것처럼 따라오곤 했다.


개가 따라오자 반사적으로 “엄마!!!”를 외치며 집으로 뛰었다. 개는 죽일 듯이 따라왔고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매일 힘겹게 올라갔던 집 언덕을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엄마는 대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키가 작은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듬직해 보였다. 엄마는 달려와 겁에 질린 나를 품에 안고는 개를 쫓았다. “저리 안가나!”

나는 무서운 기세로 짖는 개가 엄마와 나를 공격할까 무서웠다. 왕왕왕!!! 왕왕왕왕왕!!!


여덟살 막내를 품에 안은, 겨우 서른 넷이었던 엄마는 개를 향해 회심의 한마디를 날렸다. 가!!!!!!! 웬만한 경상도 남자보다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엄마는 나름 긴박한 순간에도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가!!!!!!!!!!!


놀랍게도 개는 갔다. 몇 번 왕, 왕, 낮게 짖어보더니 엄마가 꼼짝도 앉자 슬글슬금 언덕길을 내렸다. 그날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용맹한 나의 영웅이었다.


그날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누구보다 빨랐던 엄마는 1시간여 정도 걸리는 산책길도 두어번 쉬어간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무릎에 좋다는 영양제를 꾸준히 먹고 있지만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끙, 하며 힘들어한다.


무릎은 좀 어떠냐고 물을 때마다 “많이 좋아졌다.”라고 대답하지만, 자식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일 테다. 무릎이 아픈 엄마는 여행이 싫다고 했다. “집에 있으면 내가 절뚝절뚝 걷는지 누가 알 수도 없고.”라며.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줄 알았던 엄마는 아픈 무릎을 부끄러워 한다.


30대가 넘은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나는 나이드는 게 싫다. 얼굴에 점점 탄력이 떨어지고 주름이 생기는 게 싫어서다. 몇 년 전엔 5살이 어려질 수 있다면 5000만원 정도 낼 의향도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5000만원은 거의 나의 전재산이었다.


지금은 엄마의 무릎이 나아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갈 수 있다면, 엄마의 나이가 젊어지고 내 나이가 다섯 살이 많아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엄마와 나는 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점점 느려지는 엄마는 혼자 나이 들어가는 딸이 안쓰럽고, 나는 엄마를 늙게 만든 내 나이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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