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 40세 성장통 치료일기
성장통이 시작된 후 내가 가장 먼저 갖게 된 루틴은 매일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지금 가진 금액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앞으로 얼마를 더 모아야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매일같이 계산하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이 모든 건 정리해고와 자발적 퇴사,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겪었던 무수입의 시간들 때문일 것이다.
직장에서의 수입이 절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고 난 뒤부터, 나는 어느새 생존의 숫자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였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조용히 깊어지기 시작한 순간이.
늘 긍정적으로만 미래를 바라보던 내 30대에, 성장통의 뿌리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던 때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이제야 목표했던 일을 제대로 해볼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던 순간 코로나가 터졌다.
꿈을 조금 수정해 학계 대신 산업계로 발을 들였지만 미국에서 경험한 쉬운 해고,
그리고 회사의 규모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나에게 찾아온 말도 안 되는 조직 문화와 임금 체계는 결국 또 다른 퇴사를 부르게 했다.
그렇게 회사를 옮기던 그 과정 사이사이에는 늘 수입이 끊기는 시간이 존재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30대에 차곡차곡 모아둔 자금을 하나둘 갉아먹으며 버텨야 했다.
‘원래라면 자본을 쌓아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통장이 비어 가는 것을 바라봐야 했던 그 감정—
그건 단순한 허탈함이 아니라, 삶을 잠식하는 자괴감이었다.
그리고 그 자괴감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거의 없던 나에게
처음으로 깊고 어두운 씨앗 하나를 심어 놓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아마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성장통은 그 씨앗이 어느덧 자라 단단한 뿌리가 되어
내 마음 곳곳을 쿡쿡 찌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뿌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조금씩 가지치기를 해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작은 치료 계획서를 만들었다.
1. 마음의 가난에서 벗어나기
막연한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믿어보기
재정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두려움 대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나를 가난하게 느끼게 하는 낡은 물건들을 비워내기, 마음의 공간 만들기
2. 내일을 위한 씨앗 심기
내일의 나를 위해 배우고 시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기
단, 배움과 시도에 ‘흔적’을 남기기 (기록, 포트폴리오, 글, 작은 결과물)
씨앗은 보이지 않아도 자라니까, 지금의 작은 시도들에 의미를 두기
3.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기
오늘의 에너지를 내일의 불안이 아니라 오늘의 나에게 쓰기
너무 먼 미래보다, 지금 한 발짝에 집중하기
이제부터 나는 이 치료 계획서를 따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내 마음속 깊이 자란 불안의 뿌리를 가지치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