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일지 1 - 마음의 가난에서 벗어나기

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 40세 성장통 치료일기

나의 성장통은 늘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번 치료의 첫걸음은, 그 불안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보는 데서 시작해보려 한다.


그동안 써 내려간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직장에서 나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불안은 늘 배로 증폭되곤 했다. 특히 미국 중부의 소도시에서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일상의 대부분은 거의 고립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다.

말을 주고받는 대상은 가족이 아니면, 간간이 잡히는 발표 회의나 업무 보고뿐이었다.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전달에 가까운 소통...


그런 환경 속에서 가끔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소통은 낯설고 버거운 일이 되었고, 말문이 막히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불신도 점점 깊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불신은 다시 ‘지금 이 직장에서 괜찮은 걸까’라는 불안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악순환의 사이클이 시작되었다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아침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생존에 필요한 현금’을 계산하는 집착 역시
아마도 언젠가 직장을 그만두게 될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했다. 프로젝트에서도 확실히 잘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만 의견을 내고, 도전보다는 반복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한 동기와 재미는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그래서 이번 치료의 첫 단계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기로 했다.

먼저 통장 잔고를 제대로 파악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살고 있는 주는 세일즈 택스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지만
렌트비는 비교적 저렴하다.
아껴서 산다면, 현재 가진 현금만으로도 최대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사실 이 돈은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투자도 하지 못한 채 현금으로만 쌓아둔 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 무직 기간이 1년 이상 될 수도 있다’는 상상 속에서
내 마음은 늘 “더, 더”를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첫 치료의 방향을 이렇게 정했다.
나 자신을 다시 믿어보는 것, 그리고 나의 역량을 키우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것.

안정적인 프로젝트보다는 미래 지향적이고, 어렵지만 실패해도 배울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아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배움이 다음 선택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뒤, 그동안 직장에서 하고 싶었지만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위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도 하나씩 정리했다.


마음이 조금씩 바빠졌고, 일주일치 업무 계획이 빽빽하게 채워졌다.
그 모든 과정이 잘 흘러갔을 때의 나의 모습도 어렴풋이 그려졌다.


그렇게 한 주를 보냈다.


물론 드라마틱한 성과나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변화 하나는 있었다.


아침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가난하다, 언제 돈을 모으나”라며 한숨 쉬던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


아주 작은 변화지만, 나는 이것을 긍정적인 첫 발걸음이라고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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