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칼라 이민자의 삶 - 40세 성장통 치료일기
마지막 단계로, 나를 가난하게 느끼게 하는 것들을 버리기로 했다.
이제 어느덧 이민 생활 7년 차다. 대학 시절까지 포함하면 17년째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을 오갔고, 미국 안에서도 1.5년 주기로 타주 이사를 반복하다 보니 가구며 주방용품이며 제대로 갖춘 것들이 없다.
늘 “내 집이 생기면 그때 제대로 꾸며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나마 쓸 만한 것들은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들고 다녔다.
그 결과, 집 안의 가구들은 대부분 7년 차를 훌쩍 넘겼고 잦은 이사로 구석구석 성한 곳이 없다.
특히 소파와 침대는 이사할 때 짐이 된다는 이유로 프레임 없이 쿠션과 매트리스만 사용해 왔다.
가구들도 필요할 때마다 가장 저렴한 것들로 급히 장만하다 보니 색도,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옷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점점 불어나는 몸에 예전에 입던 옷들은 버리지도 못한 채 남아 있고, 지금 입을 수 있는 몇 벌의 옷만 반복해서 입다 보니 해져서 너덜너덜해졌다.
아마도 매일 아침 일어나
입을 옷을 찾을 때마다,
퇴근 후 저녁을 준비할 때마다,
잠시 쉬려고 공간을 둘러볼 때마다,
낡고 편하지도 않은 집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는 가난하다’는 생각을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새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 감각이 이 성장통에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과감히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을 하나씩 바꿔보기로 했다.
그 시작은 소파였다.
한국 취업 당시 식탁과 세트로 딸려온, 소파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의자를 그냥 소파처럼 쓰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아이는 어느덧 이상한 자세로 아이패드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마를 의자 벽에 대고 무릎을 꿇은 채 보는 것이다.
늘 이마 벗어진다고 잔소리를 했다.
나와 남편 역시 소파에 앉아 편히 쉬기보다는 어정쩡하게 눕거나, 바닥에 앉아 소파에 기대는 정도였다.
운이 좋게도, 추수감사절이었다.
늘 “편하게 퍼질 수 있는 소파 하나 사자”고 말하던 남편에게 이번엔 내가 먼저 가구 보러 가보자고 말했다.
아이도 그 말을 듣자마자, 평소 아무 불평도 없던 아이가 뛸 듯이 좋아했다.
다만... 마음을 좀 더 일찍 먹을 걸.
요즘 관세니 뭐니 해서, 블랙프라이데이 세일로 고작 10불 할인받았지만,
그래도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3인용 자동 리클라이너 가죽 소파를 샀다.
이제 우리는 각자 소파에 앉아
제대로 “쉰다”. 그리고 아이는 더 이상 이마를 대고 아이패드를 보지 않는다.
오늘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주문을 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