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소녀와 캐나다로 간 친구

by 로켓딴


“터키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을 기념해 1955년 발행한 우표가 있다. 당시 세이리마 프랫이라는 대위는 전쟁에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한국 소녀를 부대에 데리고 와 돌보았고, 소녀는 터키 말을 조금씩 배우며 종종 통역관 역할을 했다. 이 이야기는 기사화됐고, 터키가 이 사진을 기념우표 도안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우표에는 프랫 대위가 한쪽 팔로 소녀를 안은 채 그림책을 보여주는 장면이 담겼다. 국내 최초의 우취 칼럼니스트인 김광재씨는 1962년 한 일간지에 이 우표를 소개하면서 디자인 속 주인공을 찾고 싶다고 썼다. 그해 국제우표전시회가 열리자 거짓말처럼 그의 바람이 현실화됐다. 당시 고려대에 다니던 19세 최민자 학생이 전시회장에 나타나 우표에 실린 사진의 원본을 제시하며 자신이 당사자라고 밝힌 것이다."(우정이야기, 이종탁(경향신문) 칼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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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터키(Turkey)에서 발행한 '터키군 한국전쟁 참전 기념우표'(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내 최초 우취(우취는 우표와 우표수집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말함. 국제우취연맹, 한국우취연맹이 있다.) 칼럼니스트. 아버지는 사업은 매번 실패했지만 우취계에서는 최초의 전문 잡지 발간에 이어 신문 칼럼 게재 등 인정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동아일보는 아버지 이름으로 칼럼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아버지는 우표 삽화로 실렸던 터키출신 참전 용사와 한국 고아의 사례를 발굴해 기사화하기도 했다. 모두가 궁금해했던 한국 고아를 찾아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늦은 귀가를 했지만 어쩌다 퇴근이 이른 날이면 안방의 캐비넷을 열었다. 철로 만든 장롱같이 생긴 캐비넷이 안방에만 3개가 있었고 창고에는 몇 개가 더 있었다. 아버지의 부도로 온 가족이 이사 전문가가 되었는데 캐비넷과 우표 관련 짐들을 흐트러지지 않게 포장하는 일에는 오빠와 나도 동원되었다. 아버지의 캐비넷 안에는 잘 정리된 바인더 북들이 빼곡히 꽂혀있다. 대부분이 우표였다. 중간중간 화폐나 비슷한 유물들도 조금 섞여 있다.

아버지는 방안 가득히 우표들을 늘어놓고, 정성스레 한 장씩 포장을 하거나 주제별로 바인더를 바꾸기를 반복했다. 가끔은 우리를 불러서 희귀한 우표들에 대해 설명했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우표, 우리나라 최초, 인쇄가 잘못된 우표같은. 그런 설명을 할 때 아버지는 정말 부자같아 보였다. 아버지는 카세트로 클래식 음악을 듣기도 했다. ‘G선상의 아리아’같은 음악이다.

아버지가 일찍 오는 날이면 집은 세상 조용하다. 외출했던 엄마도 서둘러 돌아와 까다로운 아빠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 좋은 재료가 없을 때가 당연하니 엄마는 옆집이나 가게에 무언가를 빌리러 간다.

아버지가 그나마 관심을 갖고 말을 거는 건 하나뿐인 아들이다. 성적에 대해 물어보고는 그해 우표전시회에 출품작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공부도 잘하지만 그림이나 우표수집같이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는 아들이다.

하나뿐인 딸인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특출나게 잘 하는 것도 없었다. 친구도 거의 없이 언제나 혼자 놀았다. 가족들의 시야 밖에서 벽지 그림을 가로세로 세거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런 나에게 어느날 친구가 생겼다! 쓸데없이 시끄러운 학교에서 나처럼 조용한 여학생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캐나다에 가 있고, 한국에서는 할머니와 살고 있다고 했다. 두 아이의 외로움이 만나 짝궁이 되었다. 화장실도 같이 가고, 종이 울리면 돌아볼 친구가 생겼다.

좋은 날엔 언제나 끝이 온다. 친구는 캐나다 부모님에게로 가게 됐다고 했다. 떠나기 전날 친구의 할머니 집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그리고 친구는 떠났다.

다시 혼자가 된 아이에게 어느날 편지가 왔다! 나는 여러장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친구는 내가 보고 싶다고,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며 외로움과 그리움을 꼭꼭 눌러 적어보냈다.

캐나다에서 편지가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아버지가 딸에게 말을 걸었다. 그 편지를 달라고 했다. 엄밀히는 우표와 그 봉투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었다. ‘당신이 그걸 왜 달라고 하냐, 이건 몇 개 안되는 내 소유물이고 난 이걸 간직하고 싶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아버지에게 편지봉투를 건넸다.

캐나다에서 편지는 그리고 두어번 더 왔다. 편지에 영어가 섞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친구들을 사귀었다고 전해왔다. 나는 친구의 할머니집에 가보았다. 친구의 할머니는 반갑게 맞아주시며 간식을 주기도 했지만. 다른 방에서 할머니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냥 집을 나왔다.

아버지가 물었다. 캐나다에서 왜 편지가 더 이상 오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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