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의 장르가 바뀐다면

오늘의 잡글

by 로켓딴

지하철의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깊고 길다. 내 앞에 젊은 여성이 짧은 치마 뒤를 작은 가방으로 가리며 연신 뒤를 돌아본다. 불편해 보이는 그 행동이 짠함으로 다가온다.


짧은 치마를 이전엔 잘 입지 않았다. 치마를 입을 때면 팬티 위에 속바지나 그에 준하는 든든한 속옷을 입고, 거울을 앞뒤로 보고 티가 나지 않는지를 확인한 후에 집을 나섰다. 계단도 불편하지만 바람이라도 불면. 아휴.

지금은? 여름엔 짧은 치마, 반바지가 너무 좋지. 속옷도 기본만 입는다. 바람이 살랑 다리 사이를 지나가면 얼마나 시원한가. 전철 계단? 그냥 올라간다. 아무러면 어때? 할머니 ‘빤쮸’사진이 설사 내 얼굴 옆에 붙어 돌아다닌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나.


이런 ‘자유’는 ‘늙음’의 얼마 안되는 선물이지만. 당연히 그냥 얻지는 않았다.

중간 생략하고.

금발이 너무해, 키싱박스 같은 소위 하이틴 장르 영화를 좋아한다. 기분 거시기한 날 선호하는 장르다. 대부분 10대, 20대 청춘, 소녀들이 실수와 상처를 딛고 성장한다는 끝이 좋으면 다 좋은 이야기들이다. 영화 속 소녀들의 실수는 과장되어 그려지는데 대부분 ‘와 저건 극복이 어렵겠는데’하는 정도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우리나라에서라면?

왜 우린 성공도, 실수도 한방인 걸까. 인터넷에 잘못 올라간 사진 한장, 연애 한번에 인생이 끝나고, 사회에서 매장되고.

극장에서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온 느낌은 찜찜함이었다. 사랑, 어설픈 청춘? 첫사랑 그녀가 선배와 자취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낀 남자는 첫 설계작품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상처를 안고 연애도 힘들었겠지. 많은 날들을 술로 지새웠겠지.

그러나 그녀는? 그날 선배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쌍년’이 되어 어떤 세월을 살았는지를 영화가 그렸다면 장르가 달라졌겠지.

(20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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