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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Oct 17. 2022

기대치가 낮으면 여행이 즐겁다 (몬트리올 몽트랑블랑)

캐나다 단풍 구경 (몬트리올 여행 )

  10월 10일 월요일, 땡스기빙데이(추수감사절) 연휴는 단풍의 한가운데일 것이라 생각했다. 캐나다는 국기에도 단풍잎이 그려져있는데, 밴쿠버에 살아보니 캐나다 서쪽엔 단풍나무보다는 초록의 뾰족한 밥아저씨 나무가 많고, 드라마 도깨비에서 말한 단풍국은 캐나다 동부를 말하는 거였다. 가을을 제일 좋아하고, 특히 단풍이 물든 길을 걷는 것을 계절 중 제일 좋아하는 나는 당장 수업 사이에 동부 여행을 계획했다. 단풍국의 단풍 시즌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하며 하루하루 설렜다. 캐나다의 풍경을 많이 검색해보지 않아서, 동부의 단풍이 어떤지 감이 잘 오지 않았지만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바빠 준비를 별로 하지 못한채로 비행기를 탔다.


  캐나다가 얼마나 큰지, 같은 나라인데도 밴쿠버에서 몬트리올까지 5시간이나 비행을 했다. 캐나다 동부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몬트리올과 퀘벡은 작은 프랑스같고, 불어를 쓴다는 정도만 안 채로 몬트리올에 도착했다. 몰랐는데 밴쿠버랑 시차도 3시간이나 있었다. 가볍게 제주도 놀러가는 느낌으로 떠난것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도착 시간은 밤 10시. 낭만적인 파리의 거리를 상상한 것과 달리 몬트리올의 밤은 깜깜하고, 인적이 드물었다. 아침밖에 먹지 못해 긴장한 채로 식당을 찾는데 비도 오고, 노숙자들도 많아 무서웠다. 어찌 저찌 늦게까지 열려 있는 피자집을 발견해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직원이 갑자기 피자 박스를 주먹으로 퍽! 내리치고는 "stupid box!!!(멍청한 박스같으니!)" 라고 소리쳤다. 밤 11시에 일하는것도 짜증나는데....피자 박스가 잘 접어지지 않으면 충분히 짜증날수있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 너무나 웃긴 장면이었다. 짜증이 날순 있지만 그렇게 진심을 담아 박스를 내려치고 멍청한 박스라고 욕을 하다니!! 웃음과 당황이 섞인 채로 얼른 피자를 받아들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맛없는 피자를 먹으며 이 에피소드를 우리가 몇 년간 두고 두고 말할 것임을 알았다. 낭만적인 파리같다는 몬트리올에 대한 우리의 첫인상은 춥고, 어둡고, 무섭고, 신경질적임 으로 인식되었다.


  자고 일어나서 밝은 몬트리올 여행을 시작해보니, 100년도 넘은 건물들이 아름답고 단풍이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해서 초록빛과 노란빛, 갈색, 붉은 빛이 잘 어울렸다. 어젯밤의 걱정과는 달리 아무 카페를 들어가도 커피가 무척 맛있고 오래된 테이블과 의자가 멋스러워 기분이 좋았다. 생각보단 단풍나무가 적었고, 물도 들지 않아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가보다 하고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예술가들의 거리 등 이름이 알려진 곳들을 하염없이 걸어다니며 구경을 했다. 밴쿠버의 사람들은 여름동안 거의 등산복, 캠핑웨어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데 이곳은 남녀노소 할것 없이 너무나 세련된 멋장이들이라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가죽자켓에 구두, 부츠를 신은 사람들, 멋진 모자를 쓴 사람들, 우아하고 시크한 사람들.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 이렇게나 다르다는게 신기했다. 밴쿠버에는 어딜가나 넓은 공원, 커다란 나무, 호수가 있어 편한 운동화를 신어야하고, 저절로 햇빛 아래에서 뛰고 수영하고싶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옷을 입게 되는데, 이 도시의 사람들은 우아하고 멋스러운 빼곡한 건물들 사이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받고 지내기 때문에 이렇게 지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버스와 지하철이 아주 촘촘해서 많이 걸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멋진 구두를 신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어젯밤의 첫인상으로 이곳에서의 여행에 대해 실망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지나가다 먹었던 베이글도 너무 맛있고, 가끔 마주치는 단풍에도 즐거웠다. 어느 언덕의 호수에서는 캐나다의 국기에 있는 바로 그 커다란 단풍잎들이 떠있는 것을 보았다. 정말이지 그림같은 단풍잎이었다. 아름다웠다.



  다음날에는 캐나다 동부에서도 단풍 명소로 손꼽히는 '몽트랑블랑'에 가기로 했다. 차로 1시간 30분 거리인데, 대중교통이 마땅히 없어 렌트를 하기로 해서 렌트카업체로 찾아갔다. 몬트리올은 오래된 도시라 길이 좁고 꼬불꼬불해서 운전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출발과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의 운전 습관이 정말로 거칠다는것을. 어떤지, 공항에서 시내로 올 때 택시기사가 정말 거칠게 운전을 하고 중간중간 욕도 했는데, (이것도 첫인상의 이유이다) 그 기사님이 특별한게 아니고 전체적으로 그런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구글 네비는 시간이 점점 늘더니 도착 예정 시간이 3시간 후가 찍혔다. 어떻게 1시간 30분 거리가 3시간이 되지? 하며 느릿 느릿 기어가다보니 도로에 나뒹구는 범퍼를 4개나 봤다. 교통사고가 너무너무 많은것이었다. 긴장 속에 2시간 정도가 지나고, 드디어 교통체증이 풀렸고, 우리의 눈앞에는 단풍산이 펼쳐졌다. 끝도 없이 펼쳐진 단풍나무들. 바다를 바라보면 너른 바다와 지평선에 마음이 시원에지는데, 단풍산이 마치 바다처럼 펼쳐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긴장속의 2시간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우와 우와!"하는 감탄사만 나왔다. 괜히 단풍국 단풍국 하는게 아니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을 단풍바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1시간여를 더 달려 몽트랑블랑에 도착했는데, 또 수십대의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차들이 몰려있는지, 단풍국의 단풍명소라서 모두가 여기에 온것인지 이게 무슨난리인지 생각하며, 온갖 꽉 찬 주차장들을 지나 저 멀리에 있는 유료 주차장에 겨우겨우 차를 대고 나니 또 1시간이 지나있었다. 1시간 30분 걸릴 줄 알고 가볍게 출발해서 주차장에 내리니 4시간이 지나있었고, 너무나 배가 고팠다. 주차장에서부터 30분을 걸어 겨우겨우 몽트랑블랑에 도착했는데... 나는 그런 인파를 ... 이태원이나 잠실 콘서트장에서나 본 것 같다. 단풍명소라는 것만 알고 온 몽트랑블랑은 놀이공원처럼 꾸며져 있었고, 온갖 놀이기구가 있었고, 사람들은 끝없이 줄을 서있었고, 어느 식당에나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캐나다 동부 사람들이 단풍 시즌에 놀러 오는 롯데월드나 에버랜드같은 곳이었던 것이다. 어찌어찌 또 1시간을 기다려 겨우겨우 배를 채우고,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몽트랑블랑의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을 올랐다. 세상에, 높은곳에서 내려다보는 몽트랑블랑. 이 놀이공원의 알록달록한 지붕의 건물 뒤로 펼쳐진 호수와 단풍바다. 눈을 어디다 둬도 가득한 울긋불긋함에 말을 잃었다. 지난 5시간의 고생이 또 잊혀지는 순간이었다. 말없이 걸으며 우리는 단풍 풍경을 누렸다. 아마 평생에 제일로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풍경은 다른 곳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몽트랑블랑에서 다시 긴장속에 밤운전을 하고 몬트리올의 숙소로 돌아와, 내일 도깨비의 도시 퀘벡에서의 일정을 생각해보면서, 몬트리올에서의 시간이 왜 즐거웠는지 깨달았다. 아무것도 아는게 없는 채로, 멍청한 박스같으니라구!의 첫인상으로부터 시작된 여행이였기 때문이다. 퀘벡은 드라마 도깨비 덕분에 많은 풍경을 안다. 그렇지만 몬트리올에 대해서는 사실 나는 이런 도시가 있는지도 몰랐다. 항공권을 사려고보니 퀘벡으로 가는 직항이 없고 다 몬트리올을 경유하고 있길래 알게 된 것이고, 최소한의 여행 준비를 통해 단풍구경과 프랑스같은 모습을 조금 기대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왕복 3시간을 예상했던 몽트랑블랑 여행이 왕복 6시간으로 늘어나고, 한끼밖에 못 먹고, 무섭고, 긴장했던 나쁜 여행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오직 단풍만을 생각하고 온 곳에서 절정인 단풍을 원없이 봤기에 그 자체로 완성된 여행처럼 느껴졌다. 이 글에 쓰지 않은 많은 어려움 때문에 몇십년동안의 여행 중 힘든 여행 축에 속하는데도, 즐거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쁘기도 하고, 기대가 없으니 예상치 못한 일들에 하나 하나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마음을 더 내려놓고 가뿐한 마음으로 여행을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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