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과제와 시험이 많은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10년만에 대학으로 돌아와 영어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게 퍽 어려웠다. 언어의 장벽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을 많이 들여야 했다. 그렇게 10월을 보냈는데, 답답하거나 괴롭지가 않았다. 생각해보면 중학생때도 고등학생때도 대학생때도 시험기간엔 스트레스를 어찌할지 몰라 단것과 매운것을 엄청 먹었다. 위가 탈이 나고 살이 찌고 피부가 뒤집어졌지만, 시험기간에는 그럴수밖에 없어서 계속 그렇게 먹으며 지냈다. 어려운 과목의 과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할 때면, 모르는게 이해가 되지 않아 화가 나고, 외워지지 않아 짜증이 났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써 10년정도를 보낸 후 다시 대학에 돌아와 첫 중간고사 기간을 보내며 생각했다.
왜, 안 싫지, 왜 화가 안나지?, 왜 공부가 재밌지?
내 전공은 경제학이고,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해서 퀴즈도 맨날 틀리고 과제 하는데도 몇시간씩 걸렸기 때문에 그 시간이 싫어야하는데, 싫지가 않았다. 곰곰히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공부하여 이해하는 상태가 되서 문제를 풀 수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답을 맞추지 못해도 별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부족해서 시험을 잘 못봐도,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최소 기준은 있지만, 이렇게 성실하게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기준이다.
이런 상태로 공부를 하는게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내가 시험을 못보면 대학 입시를 망치고, 대학에서 시험을 못보면 학점이 떨어지고, 학점이 떨어지면 취직이 어렵고, 영어 점수를 못만들면 응시 기회가 없어지는 상황 속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외워지지 않고 이해가 안되서 자꾸 틀리는 모든 과정이 스트레스였다. 영어 듣기를 하는데 당최 들리지가 않아서 토익 문제를 풀 수 없을 때 너무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어학공부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딱히 무슨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꼭 잘해야하지 않아도 되니, 공부가 그 자체로 재밌게 느껴졌다. 특히 관리 경제학 과목을 공부하면서는 왜 맥도날드가 세트도 팔고 단품은 그 가격으로 따로 파는지, 왜 코스트코는 멤버십 비용을 그렇게 정하고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지,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디즈니는 왜 그러는지 알게 되어 즐거웠다. 문제를 풀면 많이 틀렸지만, 하나 하나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즐겁고, 이렇게 쌓은 지식이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때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어학 공부가 재밌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사람들은 재능이 있어서 재밌는건가 하며 그냥 수단으로만 공부하던 나였는데, 새로 배운 표현들이 미드를 볼 때 들려오면 재밌었다. 모르던 표현인데 이렇게나 매 화마다 나오다니, 한 번도 듣지 못했는데 이렇게 매번 들리다니 신기했다. 그렇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는게 즐거웠다. 영어 듣기 실력을 늘리려고 모던패밀리를 다시 보는데, 예전에 영어회화 연습을 하겠다고 볼때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이해가 안가 너무 화가 나서 금방 관뒀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조급하지가 않으니 그냥 틀어놓고 반쯤 이해한다 생각하며 가볍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것을 새롭게 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과 같다. 뉴스를 봐도 전혀 관심도, 흥미도 없어서 흘려 넘기던 것들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흥미가 생기고 그러면 더 알고싶어진다. 20년 가까이 무언가를 배워왔는데, 점수를 얻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니 배우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다. 20년 동안은 전혀 모르던 감각이다. 내가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앞으로는 배움에 더 열린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