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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Feb 05. 2023

미니멀리즘, 가뿐한 생활

해외생활로 체득한 미니멀리즘

  비가 안오는 날엔 문을 열고 나가 무릎담요와 쿠션을 턴다. 아침에 요거트와 시리얼을 먹은 유리그릇은 바로 씻어놓는다. 매일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려 마시고 하얀 머그잔을 씻는다. 흰 코렐 접시와 그릇 2장씩, 매일 식사를 하고 씻어 말린다. 산책이나 달리기 할 때 입는 맨투맨 두벌, 바지 하나에 트래킹화. 수업갈 때의 나이키 운동화. 청바지, 후드티. 비 올 때 신는 부츠.


  요즈음에 일상에서 꼭 필요한 물건을 헤아려보면 얼마 안되는데 매일 써야하고 여분의 다른 그릇이나 옷이 적으니 자주 설거지하고 자주 빨래를 한다. 처음 지내보는 간소하고 부지런한 생활. 해외에 나와 살게 되고 이사를 또 가야해서 겪게 된 미니멀리즘. 자의는 아니지만 겪게 된 미니멀한 생활이 꽤 마음에 든다.


  먼저 가진 옷에 대해 생각해보면, 한국의 신혼집 방 한칸은 옷방이었다. 결혼하며 나와 신랑의 짐을 합치고, 방 한칸 전체에 행거를 설치해 우리의 옷을 수납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입는 옷도 많았고, 외투도 색깔별로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지 않을 때 입을 캐주얼한 옷은 입을 수 있는 시간이 주2회밖에 없는데도 색색이 많았다. 계절별로 옷을 다 꺼내 정리해야 했고 한두번 입었지만 계절이 바뀌고 다시 옷장에 들어갈 때면 드라이클리닝을 하느라 세탁비도 많이 나왔다. 그렇지만 입을 수 있는 시간도 한정적이고 핏이나 착용감 때문에 자주 손이 가는 옷은 정해져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외국에 나오면서 모든 옷을 짊어지고 올 수 없어서 활용도를 생각하며 옷을 골랐다. 안입을 옷은 당근마켓으로 팔고, 동생들한테 더 잘 어울리는 스타일의 옷은 주고. 배로 보낸 짐이 도착하기 전 여름동안 입고 지낼 옷을 추려 캐리어에 담았다. 신랑은 일주일치 옷만 있으면 한달이든 두달이든 살 수 있다고 했고 사실이 그랬다. 주거가 안정되지 않아서 배로 보낸 짐을 풀지도 못하고 캐리어 하나에 담아온 짐으로 두달을 살았는데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좋아하는 질 좋고 편한 여름옷을 위주로 가져왔는데 외국의 공용세탁기와 공용건조기에 돌려도 멀쩡해서 매일 잘 입었다. 많이 걸어다니니 신발도 제일 편한 것만 신게 되어 한두켤레밖에 필요가 없었다. 배로 보낸 짐에서 한가득 옷을 풀었지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도 마찬가지였다. 가진 옷가지 수가 이미 적어 한 눈에 보이자 내가 어떤 옷을 입을 때 기분이 더 좋고 어떤 옷은 그냥 평범한지가 더 명확하게 보였다. 그러니까 이런 그냥저냥 입을 옷은 이제 앞으로 사지 않으면 된다는걸 깨달았다. 가지지 않으면 된다. 필요해서 옷을 살 땐 더 꼼꼼히 디자인과 촉감 품질을 생각해서 고르고 그 옷을 기쁘게 자주 입으면 된다.

  가진 옷이 적으니 관리도 쉽고 자리도 별로 차지하지 않고 한눈에 볼 수 있는데 부족함이 없는 지금이 무척 좋다. 방 하나를 꽉 채운 그 옷들을 보며 정리해야되는데 정리해야되는데 답답해 하던 그때보다 좋다.  


  그릇들과 컵, 잔에 대해 생각해보면 신혼집의 주방 수납은 좁았는데 온갖 그릇과 컵으로 가득 차있었다. 집에서 밥먹고 커피 마실 시간이 적은데도. 예쁘다는 이유로 갖고 싶다는 이유로. 쌓인 그릇들 아래쪽에 놓인 접시를 꺼내려면 무겁고 힘들어서 그냥 다른 그릇을 쓰기도 했고, 막상 써보니 너무 무거워 설거지가 힘들어서 덜 쓰는 그릇도 있었다. 잘 깨지는 재질의 컵이나 잔은 와장창 깨지는 날엔 힘들게 청소해야 했다. 지금 여기서는 아무 무늬 없는 흰색 코렐 세트를 하나 샀다. 큰 접시 2개, 중간접시 4개, 국그릇 2개, 머그컵 4개. 그리고 깨져도 상관없다 여기며 배로 보낸 자취생때부터 쓴 밥그릇2개, 종지 그릇 2개. 가볍고 잘 닦이고 깨지지 않는 이 그릇들로 모든 끼니를 다 요리해 잘 담아 먹는다. 그릇이 한정적이니 자주 설거지를 하고, 그러니 개수대가 깔끔하다. 그 모습을 보는 것도 기분이 좋다.


  신혼집에는 커피머신을 들인 적도 있고, 드립커피를 위한 각종 도구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불편해 드립백을 가끔 사서 내려먹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내려 먹는 '모카포트' 하나뿐이다. 매일 커피를 마시니 매일 쓰고, 커피가루를 버리고 씻어 놓는다. 커피를 위해 딱 하나의 도구만 필요한 게 마음에 꼭 든다. 커피맛도 드립커피, 커피머신 커피보다 좋다. 수업을 갈 때는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가지고 나간다. 카페에도 갈 필요가 없다. 돈도 절약되고 특히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어 좋다.

 

 살다보면 각종 물건이 필요하다. 한국에선 다이소에서 온갖 물건, 수납용품이나 생활용품을 너무 쉽게 샀다. 그런데 여기엔 다이소가 없고, 뭔갈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배송은 열흘도 더 걸리니 사는 것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물건의 쓰임을 고민하고 딱 맞게 쓰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주로 과일과 채소를 포장하고 있던 플라스틱 용기는 자잘한 물건과 영양제를 수납하는데 쓴다. 파스타소스 병, 음료수 병들은 너무나 유용한 수납 용기이다. 새 양말에 걸려있던 양말 걸이는 외출할 때 가지고 나가는 장갑과 마스크 걸이로 쓴다. 무언가를 묶어야 하거나 밀봉할 때 쓸 물건들도 하나도 사지 않았다. 빵이나 과일 봉지에 달려있는 것들로 충분하다. 박스나 플라스틱을 잘라서 필요한 모양으로 만들어 쓰기도 한다. 정리를 위해 각종 물건을 사들였던 나는 어떤것도 사지 않고도 집안을 깔끔히 정돈할 수 있게 되었다. 값이 싼 물건들을 많이 파니 쉽게 사고 쉽게 버렸던 나는 어느새 지구에도 도움이 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외국에 나오면서 가지고 있는 물건의 갯수가 확 줄어들고 생활비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나는 몸을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살아가는 게 조금도 불편하지가 않다. 이 변화가 힘들고 지치지 않다. 오히려 자주 몸을 움직이니 컨디션이 가뿐해지는 것 같고, 환경도 생각하는 것 같은 마음에 뿌듯함과 성취감도 느낀다. 이 생활이 습관이 되니 적은 물건을 가지고 정해진 생활을 하는게 시간과 에너지가 더 절약되는 것 같다.


  한국에 두고 온 짐이 많다. 이사박스에 꽁꽁 싸놓은 물건들, 옷들, 주방도구들, 각종 가구들. 선반과 스툴. 해외 생활을 준비하면서 당근 온도가 높아지도록 정리했는데도 꼭 필요하다고 여기며 남겨놓은 그 물건들. 그렇지만 여기에서 반년동안 이사다니며 간소하게 살면서도 충분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 짐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삶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지가 기대가 된다. 여기에서 지내는것처럼 물건을 사기 전엔 반년 후 이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는 것. 이사할 때 스스로 짐을 싸고 힘들게 옮기고 정리해둘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 그런 관점으로 물건을 바라보면 가뿐한 삶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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