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집으로 이사가야 해서 미니멀리즘을 열심히 실천한다
투룸에서 원베드룸으로
2층집 투룸. 24평이던 신혼집과 비교해보면 지금 사는 이 기숙사는 20평쯤 되는 것 같다. 밴쿠버의 집값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데 투룸 기준 월세가 350만원정도이고 방하나에 거실 있는 집은 월 250만원 정도를 내야한다. 원룸 월세는 150만원에서 180만원 정도. 결혼 전 내가 살았던 1.5룸의 월세가 50만원이었는데.
학교 기숙사를 기다리는데 최소 1년은 넘게 기다려야만 순서가 온대서 어렵게 구한 지금 집은 반쯤은 학교 기숙사인 사설 기숙사인 덕에 월세가 그나마 220만원이었다. 220만원도 부담되는 돈이고 둘이 사는데 투룸까지는 꼭 필요하지 않아서 일단 8개월만 계약했다. 학교 기숙사 순서가 오면 이사가려고. 그렇게 6개월째 사는 이집은 사실 둘이 살기 딱 적당한 것 같다. 원룸으로 독립해서 1.5룸으로 넓혀 이사했던 자취하던 시절과 방3개짜리 24평 아파트에서 4년을 지내다가 방 2개짜리 20평 집에 살아보니 짐을 줄여 외국으로 날아왔다고는 해도 두 사람이 입고 먹고 자고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서 이정도 공간은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두달 후 우리는 이사가야 한다. 주방겸 거실에 방이 하나 있는, 12평정도 되는 집으로. 집세를 거의 1000만원을 아낄 수 있기에 유학생활하는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래서 요즈음의 나는 바쁘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주변의 물건들이 눈에 띄고, 깔끔하지 않게 쌓여 있는 벽장의 물건들이 거슬리고 두달 후 좁은 집으로 이사갈 때의 수납이 걱정되서 자꾸만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들을 뒤적이고 정리를 한다. 학생 때는 내 책상만 주섬주섬 정리했는데 나이를 한참 먹고 다시 공부를 해도, 깔끔하지도 않은 성격이면서 시험만 앞두면 정리와 청소를 안하고는 못배기겠는 이 기분은 여전하다는게 재밌다. 극단적으로 집을 줄여야 하니, 24평 집에서 추리고 추려 배를 태워 가져온 지금 짐도 너무 많다는게 보여서 어떻게 줄여야 할지를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먼저 옷. 직장생활 할 때 입는 옷은 집에 있고 캐주얼한 옷 위주로만 챙겨왔는데도 많다. 예를 들어 청바지는 일자핏으로 중청, 흑청, 생지 3벌에 세미부츠컷 생지, 연청이 있어 2벌, 최근에 유행한 넉넉한 핏의 중청 1벌, 딱 붙는 연청 1벌, 조거핏으로 흑청, 연청 2벌 총 9벌이다. 면바지는 베이지색 검정색이 얇은것, 기모있는 것으로 총 4벌이다. 코듀로이 소재의 와이드팬츠도 1벌 있고 레깅스 재질의 검정색 바지도 1벌 있고, 두툼한 기모가 들어간 트레이닝 바지도 색깔별로 3벌이 있고, 운동용 트레이닝 바지도 2벌이 있어 20벌의 바지가 있다. 사실 내가 가진 바지 개수를 셀 수 있는것도 한국에서 열심히 짐정리를 해서 줄이고 줄여서 배 태워 외국에 가져온것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20벌은 너무도 많다. 이렇게나 색깔별로, 핏별로, 소재 별로, 두께별로 바지를 다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를 꾸미는걸 너무 좋아하면 상관없지만, 나는 옷입는것에 딱히 관심이 없다. 줄이는 것이 맞고 그 방향이 내 마음에 편하다. 이번에 영하 30도인 오로라 여행을 갈 때 느낀건데, 레깅스와 내복을 겹쳐입으면 특별히 기모가 들어간 겨울옷은 필요가 없다. 내복을 두개씩 입으면 더 따뜻하다. 살짝 작아져서 불편한 바지는 손이 안가서 입지 않는다. 그런 옷은 기부하는 등 비우면 된다. 외국에서 공용세탁기를 쓰느라고 옷이 한국에서보다 세탁 후 빠르게 닳고 있어서 버리게 되는 옷들까지 있을텐데 그 후에도 옷을 더 살 일은 없겠다.
작은 가전들도 조금씩 비우고 있다. 한국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탁상용 가습기라던가 거품기는 작으니까 배에 태워 가져왔는데, 가습기의 물을 매일 갈고 내부를 씻는것이 생각보다 귀찮아서 안쓰게 된다. 바닥난방식이 아니라 히터를 쓰는 외국의 무척 건조한 집이라서 탁상 가습기는 사실 소용도 없어서 빨래를 너는 것으로 가습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한인 중고거래단톡방에 올려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
미용 용품도 비우고 있다. 샴푸와 린스를 기본으로 쓰고 씻어내지 않는 바르는 트리트먼트를 썼어서 쓰던 제품을 몇개 사서 외국에 나왔다. 그런데 머리를 단발로 잘라서 그런지 지금 쓰는 린스가 잘 맞아서인지 트리트먼트가 필요하지 않아서 역시 중고거래로 비웠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학생이고 다른 학생들도 맨얼굴에 모자쓰고 후드입고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그리고 이 나라의 문화가 서로의 외모에 관심이 조금도 없기 때문에 파운데이션이라던가 팩트를 쓰지 않고 썬크림만 쓴다. 쓰지 않는동안 립과 피부화장품의 유통기한이 다 지나서 버렸다. 지금은 붉은 빛이 도는 립밤만 쓴다. 이제 가진 것은 로션, 아이크림, 선크림, 립밤 뿐이다.
취미 용품도 비우고 있다.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쓰던 48색 오일파스텔(크레파스), 수채화용품, 수채화종이 등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사실 1년전부터 아이패드를 사서 클래스101로 드로잉수업을 들은 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미술용품들을 쓰지 않았다. 언젠간 쓰겠지 하면서 서랍에 넣어놓은채로 반년이 지났고 앞으로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릴 것 같아서 일단 48색 오일파스텔을 비웠다. 수채화는 아이패드로 그리는것이랑은 다른 손맛이 있어서 아직 안비웠지만, 두달 후 이사갈 때까지 안쓰면 비울 예정이다. 배드민턴채도 가지고왔다. 한국에서 운동하려고 샀지만 4년동안이나 안썼는데, 여기 오면 왠지 할것같아서 가지고 왔다. 셔틀콕도 샀다. 그런데 6개월동안 안썼다. 4년 6개월을 안썼지만...그렇지만 이제 봄이니 쓸지도 모르다는 생각에 가지고는 있는데 두달 후 비울지도 모르는 물건 1순위이다.
주방 용품, 캠핑 용품도 비우고 있다. 캠핑 때 쓸 감성적인 식기나 잔이 좀 있었는데 실제로는 설거지가 편하고 크기가 적당하고 수납이 쉬운 장비들만 주로 쓰게 된다. 예쁜 식기를 챙기긴 하는데 막상 가면 얘를 쓸까 말까 하다가 쓰지 않는다. 가지고 갔다가 가지고 오기만을 반복했다.
이렇게 집안 곳곳을 둘러보면서 몇달간 쓰지 않았던 물건들, 쓸때 불편해서 기분이 딱히 산뜻하지 않았던 것들을 골라 비우고 있다. 한국에서 이미 아주 많은 물건들을 당근으로 비우고 여기서 쓸 것 같은것만 골라서 가져왔는데도 그렇다. 좁은집으로 이사가지 않으면 좀 더 가지고 있다가 한두번 쓸지도 모르지만 수납 공간이 반으로 줄어들 상황을 가정하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여전히 많다는걸 여실히 느낀다.
이렇게 이사가기 전 두달동안 짐들을 좀 더 비우고, 작은 집에 둘 수 있는 만큼만 물건을 가지게 되겠지. 이렇게 이사를 반복하면서 빠른 속도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간다는게 마음에 들고 기대가 된다. 작은 집에서 1년을 넘게 살고 나면 한국에 갈 때는 간소하고 단정한 살림이 몸에 익을테고, 그러면 앞으로의 생활은 쭉 단순할테다. 그 과정을 기록하면서 그 기쁨을 한걸음 한걸음 꼼꼼하게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