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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Apr 10. 2023

미니 식기세척기를 반품했다

미니멀라이프는 어려워

  이제 3주 후면 12평의 방 하나, 거실 하나인 집으로 이사를 해야한다. 그래서 틈틈이 집을 정리하며 짐을 줄이고 있다. 어제는 4년 6개월동안 쓰지 않았던 배드민턴채와 6개월 전 새로 사고 포장을 뜯지도 않은 셔틀콕 세트를 중고거래 했다. 그저께는 남편이 검정색 수영복 바지만 입어서 몇년 전 괌에 갈 때 샀던 야자나무가 화려하게 그려진 수영복 바지를 나눔했다. 휴지를 거의 다썼지만 코스트코의 30개짜리 대용량 휴지 세트를 사지 않고 집 근처 마트에서 12개짜리 세트를 샀다. 낡은 옷과 안입는 옷을 정리하고 옷장 정리하는 법 영상을 보며 벽장도 깔끔하게 정돈했다. 뿌듯했다.

 

침대만 있는 방에 의자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 참에 겨울이라 안쓰고 있던 캠핑 의자를 닦아서 창가에 두었다. 창문 앞 나무가 벚나무였다는 사실을 꽃망울이 맺히고서야 알았고, 2층 창문 밖의 벚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며 책도 읽고 글도 썼다. 그러니까, 해외살이 중 이사를 계속 하며 천천히 미니멀라이프의 길에 들어서는 중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이웃과 식사를 하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 미니 포터블 식기세척기를 샀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사설 기숙사는 캐나다 대부분의 콘도나 학교 기숙사에 식기세척기가 기본적으로 설치되어있는데 반해 식기세척기가 없고, 대형 전자제품이 금지이다. 한국에 두고 온 가전 이모님들 중에 제일로 그리운 것은 식기세척기이던 참에 정신이 번뜩였다. 미니 식기세척기 같은게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마치 그 물건이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외식비가 비싸 삼시세끼와 커피를 집에서 먹으면서 좋은 점도 많지만 당최 매일 매일 해야하는 설거지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하루라도 거르면 개수대가 꽉 차 다음날 아침 주방을 보면 기분이 나빴다. 남편과 나는 어차피 매일 해야 하는 일이니 감정 기복을 줄여보기 위해 설거지를 습관화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나면 개수대의 물이 빠지지 않도록 하고, 뜨거운물에 세제를 풀어 그릇을 담궈놓는다. 오후 일정을 마치면 저녁 식사 시간 전에 내가 설거지를 한다. 식기도 많지 않고 2명의 식사일 뿐이라 15분에서 20분 안에 설거지가 끝난다. 저녁을 먹고 나면 똑같이 그릇과 조리도구를 담궈 놓고, 자기 전 남편이 설거지를 한다. 한 한달쯤 했더니 할일이 쌓여 있는 주방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지 않아도 되고, 생각보다 설거지 시간이 짧아 괜찮다고 느끼던 참에 미니 식기세척기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분명 할만하다고 느꼈고, 설거지 하기 싫음으로 인한 기분 나쁨도 없어지다시피 했는데 갑자기 그 식기세척기가 없으면 시간을 낭비하는것처럼 느껴졌다. 1~2인분의 그릇 몇개를 넣을 수 있는, 전자렌지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그 기계는 40만원정도였고, 1년 넘게 외국에 살아야하니까 1달에 3만원꼴로 편안함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있는 줄도 몰랐던 물건이지만, 유투브에 올라온 별도의 설치가 필요 없고 물과 세제만 있으면 된다는 리뷰 영상을 보고는 당장 구매를 했다. 곧 이삿짐센터의 도움 없이 둘이서 모든 물건을 포장하고 날라야 하고 방하나에 거실 겸 주방 하나인 좁은 집에 살게 되는데 말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식기세척기가 일주일정도 후에 집에 도착했고, 당장 설치하고 써봤다. 아껴야하는 살림에 40만원이나 투자하며 머릿속에선 무척 편해진 설거지 라이프가 펼쳐졌는데, 실제론 우리가 매일 쓰는 큰 접시가 꽉 끼어 들어갔다. 점심 먹은 것만 넣는데도 테트리스를 해야해서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는 2시간 10분 동안 점심 설거지가 돌아갔다. 그리고, 식기세척기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소음이 2시간 10분동안 지속됐다. 물에 담궈놓은 후 20분 안에 끝났던 양의 설거지가 7배의 시간이 걸리며 시끄럽기까지 했다. 기대감에 부풀었던 내 마음은 짜게 식었다. 그렇지만 이미 샀으니 좋게 생각해보자 며칠 써보면 좋겠지. 소음이야 뭐 아주 큰 소리는 아니니까 정신을 흐트리면 괜찮겠지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곤, 우리는 이 기계를 반품하기로 했다.


  가볍게 쓰도록 만들어진 전자제품들이 으레 그렇듯 이런 저런 작동 오류가 많았다. 어떤날엔 건조가 끝났는데도 세제가 가득했고, 어떤 날엔 이유를 알 수 없는 에러 코드가 떴다. 분명 설거지를 도와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기계를 샀는데, 그 안에 들어가는 그릇 세네개, 컵 한개정도 넣어 돌리고 남은 조리도구들은 따로 설거지 해야했고 그래서 식기건조대는 계속 필요했으며, 원랜 식기건조대만 한켠에 있었는데 한켠엔 식기건조대, 한켠엔 식기세척기까지 좁은 싱크대가 더 혼잡해졌다. 12평인 집에 살면서 이런 꽉찬 주방을 견디기에는 장점이 생각보다 작았다.


  이 커다란 기계를 어떻게 다시 포장해서 우체국 택배로 부칠지 생각하면서 나의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간소하게 살기로 했던 이유를 글로도 두번이나 썼지 않은가. 그리고 숱하게 많은 물건들을 사놓고 결국엔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일거리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여겼지 않은가. 거품기, 마늘다지기, 차주전자, 진공포장기, 먼지흡수기, 채소탈수기, 미니 공기청정기, 가습기 등등 기대감에 샀다가 주기적인 청소와 관리가 번거로워 그다지 쓰지 않게 된 물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SNS에 노출되는 광고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물욕을 만든다. 어떤 물건들은 누군가의 마음에 꼭 들어 기쁨과 효용을 주지만, 어떤 물건들은 불편과 짐이 될 뿐이다. 나는 내가 물건을 가짐으로써 얻는 즐거움보다 꼭 필요한 물건들만을 고심해서 가지고, 비워진 여백을 누리는데서 기쁨을 얻는 사람이라는것을 몇년에 걸쳐 깨달았기에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또다시 물건에 현혹되다니. 평수가 반으로 줄어드는 이사를 앞두고 있다는 상황에서도 이런 선택을 하다니, 간소하고 단순한 삶으로 나아가는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걸 또 한번 느낀다.


  그렇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또 한번 확인했다. 오래 생각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 때에만 물건을 들여야겠다는 점을. 나를 만족스럽게 하는 것은, 새로 의자를 사지 않고 작년 여름에 쓰던 캠핑 의자를 닦아 침대 옆으로 옮겨 창밖의 벚꽃을 온전히 누리며 글을 쓰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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