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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May 01. 2023

평수가 좁다는건 모든게 작다는 것임을 몰랐다

12평 좁은집으로 이사하기

  그저께 이사를 했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이사를 하고 전에 살던 집을 꼼꼼히 청소하고 새로운 집을 정리하느라고 무척 바빴다. 이제서야 테이블 위에 공간이 생겨 글을 쓴다.


  월세를 아끼기 위해 20평의 투베드룸 타운하우스에서 10평 초반의 원베드룸으로 이사를 결정하면서 우리가 결심한 것은 좁은 수납공간에 옷과 이불, 캠핑용품, 취미용품들을 필요한 것만 갖고 정리를 하는 것이었다. 기존 집에서는 한평이 조금 넘는 벽장도 있었는데 새 집에는 벽장도 없고, 방마다 있던 붙박이장도 1개가 되니까, 우리가 보통의 사람보다 물욕이 많은 편은 아니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입주 전에 집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새 집에 왔다. 당혹감. 낭패감. 집을 보는 순간 1초만에 당황하고 말았다. 수치적으로 평수가 반보다 더 줄어든다는 것은 미리 알았지만, 눈으로 보는것은 달랐다. 특히나 당황스러운 것은, 냉장고가 내 키보다 한참 작다는 것과 6인용 식탁이 있던 기존 집과 달리 2인용 식탁이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기숙사에서 집 타입만 바꾼 것이라 가구의 디자인이 똑같았다. 다만 크기가 다 줄어있을 뿐. 찬찬히 살펴보니 주방서랍의 가로길이도 반, 수납장의 개수도 반, 화장실의 욕조는 없어졌고, 방 하나의 크기 자체도 기존 집의 큰방보다 작았다.


  살던 집에 대해 청소체크리스트까지 주며, 깨끗하지 않으면 기숙사측에서 청소하고 청소 시간 당 5만원씩 보증금에서 차감한다고 해서 6시간도 넘게 청소를 하며 큰집이 싫어지고 (그리 크지도 않았지만) 작은집으로 이사가는 것을 기뻐하기까지 했으나, 이럴 줄은 몰랐다.


  도와주러 온 친구와 남편과 셋이서 2층집에 있던 짐들을 다 옮기는데 4시간이 걸렸다. 한국의 집에도 짐이 한참 남아있고, 고르고 골라 꼭 필요한 것만 남겼다 여겼던 해외살이 짐이 새 집의 모든 공간을 꽉 채웠다. 발 디딜 틈이 없어 나중에 날라온 잔 짐들은 화장실 바닥에 늘어놓을 정도였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사 전 물건들을 조금씩 비우면서 꼭 필요한 물건만 남겼다 여겼는데, 갑자기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마구 눈에 띄었다. 나는 남자 둘이 무거운 짐들을 나르러 간 동안 또 들어올 짐을 놓을 자리를 만드느라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없어도 되는 물건들을 중고거래 단톡방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사 도중 중고거래 단톡방에 올려서 하루 동안 당장 비운 물건은 수납이 불편한 구조의 캠핑의자 2개(불편해서 다른 캠핑의자를 사놓고 왠지 있으면 쓸것 같아서 가지고있었다), 커다란 만능채칼 (몇년간 가지고 있었지만 두번정도 썼다) , 밀폐용 잼병 3개와 양념통 3개 (새것인데 1년간 뜯지도 않았다), 냉동 잡곡(세달전 사자마자 냉동했는데 잡곡밥을 안먹는다), 전동 와인오프너, 옷들 많이(사이즈든, 착용감이든 좀 애매하지만 버리기는 조금 아깝고, 그렇지만 손은 안가서 입지는 않은것들_기부함에 넣었다) 이다.

  조금의 미련도 없이 바로 바로 물건들을 떠나보내면서 한참 쓰지도 않고 앞으로도 안쓸것같은 물건이 아직도 많았는데,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또다시 애매한 태도로 좀 더 가지고 있어보자 여겼다는게 이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니멀리스트가 되면 사는게 가벼워지고, 에너지가 더 아껴진다고 했다. 정리하고 물건을 중고거래 하거나 기부를 하는 것은 시간과 체력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 왜 더 에너지가 아껴진다고 하는 것인지, 적당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를 꿈꾸는 나는 그렇게까지 와닿지는 않았다. 단지 좀 더 정돈된 환경에서, 청소를 더 간단히 하고 살고싶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사 도중에라도 물건을 비우고 이 좁은 집을 내내 정리하면서 물건이 좀 적으면 수납을 열심히 고민할 일도 없고, 관리도 더 쉽겠다는 걸 느낀다. 넓은 집에 살면 넓은데로 물건을 적당히 이곳저곳에 숨겨 두어서, 찾는데 시간이 더 오래걸렸다. 이렇게 좁은 집에 오니 물건을 수납하기 위해 계속 유튜브로 정리 영상을 찾아보고 수납 팁을 배우고, 어떤 종류의 물건들을 어디에 테트리스를 해서 넣을지를 고민해야만 한다. 심지어 지난 8개월간 지난 집에서 가지고 있었던 물건들은 먼지가 앉아 청소도 필요하다.


 오늘은 이사한지 3일째이다. 어제는 이케아에 가서 키큰 선반(렉) 2개와 주방용 트롤리 1개를 사왔다. 그것으로 발 디딜틈 없던 바닥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렸다. 급한 불을 껐으니 이제부터는 차근차근 비우고 정리하며 1년도 넘게 살 이 집에 있는게 쾌적하도록 해야겠다.


  10분이면 집 전체 청소기를 돌릴 수 있는 작은집에서, 다른 장점들도 발견해가며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잘...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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