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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Nov 23. 2023

미국 로드트립 중 경유지도 특별하게  만드는 여행법

커다란 댕댕이가 있는 시골 주택 방 한칸에 머물기

  하루에 6~8시간씩 운전해야 하는 넓디 넓은 미국 땅 로드트립을 다녀온지 반 년이 지났다. 한달 가까이 국립공원을 걸으며 차박 캠핑, 호텔, 에어비앤비에 번갈아 묵었던 여행. 한참 지나고 나서도 특별하게 각인된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 여행을 헤아리다 보면, 지구처럼 느껴지지 않는 대자연의 풍경들 말고도 '그 여행 참 좋았지' 생각하게 하는 시간들이 있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집의 방 한 칸을 빌려 쉬었던 에어비앤비에 담긴 하루들이다.


  내가 운전을 못해서 남편은 운전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로드트립 내내 혼자 긴 운전을 해야했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짤 때부터 보통 미국 로드트립을 할 때 한번에 이동하는 거리보다 두 세시간씩 짧은 곳에서 도록 했다. 목적지까지 한 번에 이동하지 못하고 중간 중간 끊어가려면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나 마을에 멈추게 된다. 운전 시간을 줄이느라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하는 곳에서 잠만 자고 싶지는 않아서 일부러 특색 있는 에어비앤비들을 골랐다. 조건은 세가지였다.

  1. 호스트가 생활하는 집 전체 중 방 한 칸 (호텔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거실과 주방 등 공용 공간도 사용할 수 있다.)

2. 대형견이 있을 것

3. 특별한 주방이나 정원, 핫텁 등 특색 있는 시설이 있을 것


  정성껏 고른 에어비앤비에서의 경험이 그랜드캐년이나 요세미티, 옐로스톤 국립공원 같은 대자연에서의 시간과 다르지 않게 신선해서 그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밴쿠버에서 출발해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에 갔다가 1시간 정도 더 달려 도착한 작은 도시 Klamath Falls의 경험, 나파밸리에서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경유지였던 Sonora 지역의 숲 속 전원 주택,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 그랜드캐년으로 이동하는 경유지였던 Kingman 지역의 사막 한가운데  핫텁과 수영장이 있던 주택에서의 시간은 떠올리면 표정에 금새 생기가 돈다.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과 나파밸리 사이에서 묵었던 Klamath Falls의 주택은 수학 교사인 30대 여자의 집이었다. 방 한칸에 5만원이었는데 거실도 주방도 세탁기도 모두 쓸 수 있었다. 친절한 호스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를 보러 영화관에 간다며 체크인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두마리가 있는데 무척 다정하고 귀여우니 개를 좋아한다면 문을 열고 함께 놀아도 된다고 했다. 개들이 방에 머무는 것도 괜찮으니 싫어한다면 문을 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밴쿠버에서 1년을 살면서 매일 매일 수십마리의 대형견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점잖고 사랑스럽고 예쁜지 알게 되었기에 일부러 이 에어비앤비를 예약한거였다. 조용한 시골 동네의 집에 도착해 호스트의 방문을 열자 커다란 블랙 래브라도 두마리가 뛰어 나왔다. 생각보다 몸집이 무척 커다래서 당황했지만 착하고 예쁜 눈망울에 마음을 빼앗겨 내내 개들과 놀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대형견과 함께하는 삶이 낯설지만 아주 오랜 시간 대형견과 함께 한 어떤 나라에서는 개를 키우면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심지어 호스트가 집을 비우기까지 한다. (그래서 특별히 이 방을 저렴하게 운영하는 것도 같다.)

  여행을 하다보면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어떤 상식이나 문화와 다른 상황을 마주치게 된다. 그럴때면 내 사고가 깨어지며 유연해지고 세계가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집하다보면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롭고 답답하지 않나. 그럴 때 여행 중 마주했던 낯선 삶을 떠올리면 무엇이든 조금쯤 괜찮아진다. 나는 그 감각을 사랑한다.

  커다란 소파가 네모낳게 놓여 있는 거실과 작은 뒷뜰을 오가며 개들과 놀아주다 남편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소박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작은 식탁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나자 호스트가 돌아왔다. 그녀는 방학이면 개들과 함께 로드트립을 다니며 하이킹을 한다고 했다. 약 한달 동안 이어질 로드트립을 시작하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우리 일정에는 없던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을 추천해주었다. 그녀는 내일 면접이 있어서 밤에 준비를 해야하니 파티를 할 것이라면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이미 지쳐 있었기에 곧 잘거라며 그녀와 인사를 하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시골 마을에 혼자 살며 자신의 공간을 여행객에게 공유하는, 방학이면 커다란 개 두마리와 함께 로드트립을 떠나는 30대 여자의 삶은 분명 내가 알고 있던 삶의 방식은 아니다.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살고 있다.


  나파밸리의 와이너리에서 오퍼스원과 로버트 몬다비의 와인으로 행복을 맛본 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도착하기 전 들렀던 소노라 라는 시골 마을 숲속의 주택은 그림 같이 아름다웠다. 구불 구불 산길을 올라 집 앞에 도착하자 여기 저기에서 고양이들이 나타나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3층 짜리 주택의 문을 두드리자 여든 살이 넘어 보이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었다. 아직 어린 것 같은 회색 강아지와 함께였다. 할아버지는 끝 방으로 우리를 안내해 었는데, 할머니의 솜씨인 듯 레이스와 꽃무늬로 아늑하게 꾸며진 방이었다. 방 문 앞 복도에는 각종 차와 커피, 물과 과자가 놓여 있는 서랍장이 있었고 거실과 분리되도록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 집을 공유하지만 나름 분리되도록 신경 쓴 공간이었다. 짐을 풀고 있는데 찹찹찹찹 소리가 들리더니 커튼 아래로 강아지가 들어왔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방에 들어와 한참 쓰다듬어주었다. 힐링이 여기에 있었다.

  

  이 집은 고풍스럽고도 아늑한 나무 주방이 아름다워 선택한 곳이었다. 남편이 아름다운 주방에서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만드는 동안 강아지 베이비존스는 남편 주변을 서성이고 내게 와 붙어있기를 반복했다. 거실에는 할아버지가 소파에 누워 영화를 보고 계셨다. 몇십년은 된 것처럼 보이는 그야말로 빈티지 가구들이 놓인 공간에서 파스타를 먹는데, 마치 우리가 몇백년전 시골에서 평범한 식사를 하는 중인것 같았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동안 베이비존스는 우리 발 밑에 누워있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아주 오래된 와인들과 책을 구경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전부터 빈티지 가구가 유행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원목 가구 한 점씩 집에 들여 아늑한 방을 꾸미는 1인 가구도 많다. 집 전체가 할아버지의 삶과 함께 낡아온 가구들로 채워진 공간은 그 자체로 영감이 되었다.

  

  테라스에 잠깐 나갔는데 눈 앞에 사슴이 나뭇잎을 뜯고 있었다. 마치 요정의 집에 있는 기분이었다. 사슴을 구경하는데 치즈 고양이가 다리 주변을 서성였다. 인사를 하자 머리를 부볐다. 그 고양이는 나를 따라 집으로 들어왔는데 익숙한 듯 어느 방의 고양이 침대에 앉았다. 다음날 새벽에 일찍 나서느라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을 챙기는데 이 녀석이 꼬리로 주방 용품 걸이를 건드리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할아버지를 깨울까 걱정이었다. 야옹이며 우리를 자꾸만 부르는 덕에 엉덩이를 두드려주느라 출발 시간이 늦어진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숲 속에서 고양이들과 개와 사슴과 새를 가까이에 두고 느리게 살아가는 삶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단 하루였지만 할아버지의 집에서 그 삶의 온화함과 한가로움, 다정한 편안함을 겪어볼 수 있었다.

  

  조슈아트리에서 그랜드캐년으로 이동하는 길목에서 묵었던 Kingman의 주택은 고급 저택이었다. 사막 한가운데의 저택에는 지붕 없는 수영장이 있고 핫텁이 있어서 선택한 곳이다. 요세미티와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 씻지 못한 채 차박 캠핑을 하고 난 후라 푹 쉬고 싶었다. 은퇴한 군인 아저씨와 아내가 살고 있는 그 집에는 제다이와 레아라는 이름을 가진 댕댕이 두마리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아주 넓은 집이었는데, 호스트의 사촌 형제가 와있어서 수영장에 주로 있을건데 우리도 함께 놀아도 된다고 하셨다. 연이은 차박 캠핑으로 지친 우리는 수영할 상태는 아니라서 밤에 핫텁만 이용하겠다고 했다. 뜨거운 물로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킹 사이즈의 침대에 누웠다.

  아-. 현대 문물 최고다.

제다이와 레아가 수시로 왔다 갔다 하기에 일부러 방문을 열어두고 쉬다가, 마트에서 사온 음식을 데워 저녁을 먹었다. 나파밸리에서 샀던 와인을 마시고 싶어서 호스트에게 오프너를 빌려 와인을 마셨다. 아-. 최고다. 호스트 분은 주방에서 식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는데, 내일 딸네 가족들이 놀러온다며 미리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이 커다란 집 곳곳에는 아주 많은 가족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아기였을 때부터 졸업 사진, 대가족의 사진들이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 출가시킨 후, 종종 놀러오는 그들과 수영을 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며 지내는 노년의 삶이 부러웠다.

  호스트 가족들이 불을 끄고 방에 들어간 밤, 우리는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보며 핫텁에 몸을 담갔다. 사막의 밤공기는 건조하고 찼고, 따끈한 물에 노곤한 기분이 되어 하염 없이 별을 바라보았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서 새벽에 캠핑 의자에 앉아 은하수를 바라보던 밤도 특별했지만, 따끈한 물에 앉아 편안하게 별을 바라보는 지금도 좋았다.

  북적 북적 친구나 가족들을 때때로 맞이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노년의 삶, 인적 드문 곳에서 별천지 하늘을 지붕처럼 두르고 사는 삶. 언젠가 남편과 내가 나이가 들고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집에 초대해 정성껏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현재를 공유할 소중한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외에도 멕시코 아내와 미국 남편이 함께 빈 땅에 지은 두 사람의 전통을 담은 집에서의 하루, 롯데월드가 지어질 때 엔지니어로서 함께 했던 할아버지가 차려준 한식 한상의 경험은 지난 글에 적었다.

  여행 중에 호텔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무는 것은 뜻하지 않았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휴식인 듯 그 자체로 새로운 경험이었던 에어비앤비에서의 하루들은 내 안에 작은 씨앗을 뿌렸다. 한국에서 살며 본 적 없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얘기해줬던 할아버지의 말씀 같은 씨앗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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