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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 Nov 18. 2023

여행을 제대로 즐기고 싶으면 운동을 하자

운동과 체력과 여행의 상관 관계

  캐나다에 와서 인생에서 다시 없이 많은 여행을 하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로키 여행(밴프 재스퍼 국립공원), 캐나다 동부 단풍 여행(몬트리올, 퀘벡), 빅토리아, 오로라 여행(화이트호스), 미서부 로드트립, 엄마랑 동생들이랑 3주 여행(밴쿠버, 로키, 토론토), 휘슬러, 캐나다 동부 단풍 여행(오타와, 알곤킨 주립공원)을 했다. 겨울 방학엔 올랜도 플로리다에 간다.


  그리고, 캐나다에 와서 더 없이 많이 운동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주로 해변이나 공원 걷기, 수영을 했고 겨울부터는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설산 하이킹을 네 번 하고 봄에는 미서부 로드트립을 위해 걷거나 1시간 30분짜리 하이킹을 했다. 대자연의 국립공원 트레일을 걷는 로드트립을 하고 돌아와서는 간헐적 달리기와 자전거를 했고 가을에는 밴쿠버 근교 하이킹을 다니고 홈트로 근력운동을 하고 있다.


  연휴나 방학마다 여행을 떠나고 각종 운동을 주4회 이상 하는 생활이라니 캐나다에 오기 전 나는 이런 삶을 상상해본 적도 없다. 1년에 한 두번의 여행이면 충분했고 요가나 필라테스를 30분씩 주 3회정도 하며 간신히 일 할 체력을 유지했을 뿐이다. 친구들, 가족들 중에서 언제나 꼴등 체력이었던 나는 작년 여름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무척 힘들었다. 왜냐면 캠퍼스가 너무 넓고, 그 때 지내던 민박집에서 강의실까지 35분을 걸어야 했는데 너무 멀고, 4시에 수업이 끝나면 다시 35분을 걸어 돌아가야 했고, 해가 밤 10시에 지는 밴쿠버의 여름을 즐겨야 되는데 이미 내가 가진 하루치 활동량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4일째엔가에는 왜인지 허리와 골반이 삐끗한 듯 아파서 더 걷지 못하고 누워있기도 했다. 단 2년 밴쿠버에서 지낼 기회를 얻었으니 제대로 즐기고 싶었지만 몸이 받쳐주지 않았다. 나는 평생 나의 저질 체력을 아쉬워했지만 타고 나길 저질이라고 생각했을 뿐 고쳐볼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내 몸을 가지고 안온하고 편안한 취미 생활들을 즐기며 살았다.


  하지만 여기는 밴쿠버이고 사람들은 모두 운동복(룰루레몬은 캐나다 브랜드이다)만 입고 달리고 비치발리볼 하고 카약 카누타고 하이킹을 한다. 매일 레깅스만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할 것이 그다지 없었다. 그러니 별 수 있나, 나도 한낮을 살았다. 그렇게 1년 반을 지내고 나자 나는 체력이 업그레이드 되었음을 뿌듯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느낀다. 체력이 늘었음은 같은 곳으로 등산을 가거나 여행을 갔을 때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작년 7월 1일, 캐나다 데이인 줄 모른 채로 학교 근처에 일몰이 아름답다는 해변에 갔다. 그 곳은 15분 정도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야 나오는데 국경일이라 엄청난 인파가 몰려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너른 해변을 꽉 채운 사람들, 흥겹게 춤추는 사람들, 게다가 헐벗은 사람들까지. 학교 바로 앞에 있는 해변이라 누드비치일거라곤 생각도 못한 나는 당황했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합법인 대마 냄새가 진동을 해서 어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15분 동안 내려왔던 그 계단을 다시 올라야 했다. 좁은 계단을 빼곡히 채운 사람들은 뛰어 올라가고 나는 이곳을 너무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숨은 턱턱 막히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대마 냄새는 나쁘고,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계단을 올라야 벗어날 수 있는데 내 비루한 몸은 오를 수가 없다. 1분에 한번씩 멈춰서서 인파를 견디며 겨우 겨우 올라온 나는 잔디밭에 주저앉아 가출한 영혼을 붙잡아야 했다. 캐나다에 도착한지 10일만에 겪은 일이었다.  


  올해 봄, 학교 근처를 조깅하다가 계단 입구에 도착했다. 왠지 몸이 가볍고 체력이 남길래 계단을 내려갔다. 마침 일몰 시간이었고, 평일의 조용한 해변은 아름다웠다. 바다와 해가 만나며 너른 하늘이 붉게 물드는 것을 바라보다가 다시 돌아왔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다보니 순식간에 꼭대기에 도착했다. 잉? 이렇게 짧고 간단한 곳이었다고? 이렇게 별 것 아닌 계단을 오를 체력이 없어서 바글바글한 인파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니 과거의 나 안쓰럽고 한심하다.


   노스밴쿠버에는 딥코브라는 아름다운 곳이 있다. 그곳에는 쿼리록 트레일이 있는데, 5살도 40분 정도만 오르면 대단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쉬운 트레일이라고 리뷰들이 얘기하고 있었다. 작년 가을 그곳에 갔다가 쓰러질 뻔 했다. 리뷰의 5살은 1살때부터 수영하고 스키나 보드를 타고 자전거를 배우는 캐나다 애들 기준인것 같다고 투덜거리며 올랐다가 한참을 쉬고 돌아오는 길엔 다리가 후들거려 미끄러져 넘어지기까지 했다. 올 해 가족들이 놀러왔을 때 그곳에 가서 가족들만 그 트레일에 보내고 나는 오르지 않았다. 거길 같이 갔다오면 여행 가이드 노릇을 할 수 없을만큼 지칠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에 그 곳을 다시 올랐다가 깜짝 놀랐다. 잉? 이렇게 가볍고 가뿐하고 가파르지도 않은데 이렇게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니! 너무 가성비가 좋은 하이킹이 아닌가!


  평생 저질 체력이라고 생각하며 행동 반경을 제한하고, 여행도 주로 휴양지로 다니고, 한국에서도 시골에 있는 예쁜 독채 숙소에 가서 화이트 침구에 파묻혀 책읽고, 고기 구워먹고,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는 힐링 휴식 여행을 해왔다. 그런데 2년이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밴쿠버에서 지내며 몸을 움직이고, 연휴며 방학마다 '그래 캐나다 있을때 가야지 언제 가보겠어'하며 무리인 것 같아도 여행을 다녔더니 내 몸이 단련이 되었다. 완만하게 우상향하며 1년 동안 차근 차근 저질 체력에서 보통 체력이 된 내 몸은 올 가을 가파르게 점프하듯 좋아진 것 같다.


  지난 10월 동부 단풍여행으로 갔던 오타와에서 튼튼한 내 몸을 실감했다. 하루에 2만보를 넘게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작년 가을 단풍여행이었던 몬트리올 퀘벡 여행은 내게 아주 힘들었던 여행으로 남아있다. 몬트리올이나 퀘벡은 구경거리가 도보 15분, 20분 거리로 붙어 있어서 대중교통을 타기도, 택시를 타기도 애매해서 전에 없이 많이 걸었는데, 밤마다 다리가 아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예쁘고 아름다워서 계속 걸으며 구경하고 싶었지만 허리도 무릎도 아파 자꾸만 멈추고 카페에 들어가고 벤치에 앉아야 했다. 그런데 불과 1년만에, 아무리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를 않았다. 원래는 무거워진 종아리와 발바닥이 앉을 곳을 찾았는데, 다리의 감각이 딱히 느껴지지 않아서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이곳 저곳을 선선히 걸어다니고, 국립 미술관에서도 4시간 동안이나 작품을 봤다. 나는 여행을 가면 꼭 미술관에 간다. 미술관에 있으면 행복하지만 1시간 반 정도 지나면 허리와 다리가 아파 예술에 둘러 쌓인 즐거움을 온전하게 누릴 수가 없다. 그런데 아픔이 느껴지질 않으니 더 오래 더 감탄하며 색체와 형태에서 오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캐나다 동부의 단풍 명산인 알곤킨 주립공원에 가서도, 비가 와도 포기하지 않고 산을 올라 단풍나무로 이루어진 지평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체력이 오르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고작 15분짜리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겨워 했던 나는 1년이 지나자 밴쿠버의 산에 올라 멋진 풍경들을 내려다보고, 여행 가서도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피곤과 힘듦과 싸우지 않아도 되게 변했다. 나는 평생 저질 체력으로 피곤에 찌들어 살아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생기와 활력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거였다.


  사실 체력이 오르는 그 과정에는 자주 아프다. 안하던 각종 운동을 하면서 몸이 쑤시고, 몸살 난 것 처럼 몸이 무겁고 왜인지 더 피곤한 날들이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피곤한 몸을 달래가며 주인이 안하던 짓을 하니까 아프구나 슬퍼하며, 그럼에도 캐나다니까 의지를 발휘해서 몸을 움직여왔는데 이제서야 그 시간들이 근육이 되어 내게 힘이 되는 듯 하다. 요즈음은 완전히 달라진 몸이 기뻐서 더욱 신경 써서 몸을 만들고 있다. 귀찮고 너무 힘들더라도 일부러 근력 운동을 힘든 수준으로 해내고, 조깅을 할 때도 예전 같으면 진작 느리게 걸었을 타이밍에 조금 더 뛴다. 주말에 산을 타고 돌아오면 단백질을 신경써서 음식을 먹는다. 예전엔 힘든 운동을 해야할 동기가 없었는데 이제는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면 분명하게 몸이 달라지고, 그러면 내 여행과 생활이 더 즐거워진다는 것을.


  겨울 방학의 플로리다는 얼마나 즐거울까. 하루에 한 곳씩 4일 동안 디즈니 월드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생각을 하면 기쁘면서도 지칠까 걱정이 되었을텐데 지금은 기대만 된다. 예전의 나였으면 하루 이틀만 걸을 수 있었을테니 일부를 포기했을텐데, 이제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운동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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