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공감되는 가사, 경쾌하고 단순한 박자감에 좋아하는 장기하의 곡이다. 어릴적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산에 갔다. 그렇지만 등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시절 산 입구에는 삶은 계란, 식혜, 막걸리, 김밥 같은걸 팔았는데 우리 가족은 먹고 싶은걸 고르고 슬슬 걸어 초입을 갓 지나 등산로가 아닌 적당한 나무 사이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먹고 놀았다. 맛있는 음식, 조금만 걸으면 들을 수 있는 계곡물의 시원한 소리, 나무 숲의 냄새, 커다란 나무 끝에 보이는 하늘 같은것들을 좋아했다.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아도 이렇게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걸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산을 애써 오르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다.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에서 선택 일정으로 한라산을 가거나 오름에 가거나 고를 수 있었다. 고민의 여지도 없이 오름을 선택하는 것이 나였다. 대학생 때 오랜 친구들과 지리산 근처로 여행을 갔다. 그곳에는 온천이 있어서 좋았던건데 갑자기 친구들이 지리산을 올라야겠다고 했다. 겨울의 산을 오를 자신이 없었는데 스무살의 첫 연애를 어설프게 끝낸 친구 둘이 자신들의 이별 산행에 동행해주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라고 했다. 실소가 나왔지만 오랜 친구들과는 어리석은 소리를 하고 받아주는게당연하니까 못이기는 척 따라갔다. 등산할 계획이 없었기에 컨버스나 반스 신발을 신고 산을 오르던 우리와 마주친 등산객들은 '에헤이 어머 어머 그렇게 오르면 안돼!' 하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무서웠는데 내 친구들은 무모했다. 계속 산을 오르겠다는 그 애들과 달리 근육이 부족했던 나랑 다른 한 친구는 낙오되어 다시 산 길을 내려왔다. 어디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흐릿한 기억 중 따뜻한 난로가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던 시간의 평온함과 만족감만은 선명하다. 멋진 풍경을 보고 돌아온 친구들이 이렇게나 멋졌는데 너희는 못봐서 어쩌냐고 아쉬워하는데 정말이지 한 톨도 아쉽지 않았다. 어차피 내려올 것인데, 잠깐 산길을 걸은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어디 정상에 가서 어떤 뷰를 봐야하는걸까?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날 이후로 십 몇년이 더 지나는동안에도 어딘가 산을 오른적이 없다. 벚꽃이나 단풍을 보러 산에 갈 땐 있었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누렸던대로 산 초입의 꽃과 잎이 아름다운 자리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그랬던 내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16개월을 살면서 한달에도 몇 번씩 산을 타고 뷰포인트에 올라 탁 트인 전망에 순수하게 감탄하는 사람이 되었다. 등산하는 사람이 된 덕분에 숨 속 깊은 곳까지 단풍의 정취를 들이쉴 수 있게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스무살의 내가 예지몽으로 꿨더라도 이 무슨 허무맹랑한 꿈이냐며 넘겼을 일이다.
10월 한 달 동안 조프리레이크, 알곤퀸 주립공원, 린드만레이크 하이킹을 했다. 특히 알곤퀸 주립공원은 캐나다 동부에 위치해 있고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단풍 여행을 하러 동부에 가면서 1박 2일이나 산에 가는 일정을 넣었다. 추수감사절 연휴 내내 동부에는 폭우가 쏟아졌는데 내가 알곤퀸 주립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많이 오고 있지는 않았다. 5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타와에 와서 3시간여를 달려 알곤퀸까지 왔는데 비가 온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7.5km, 총 소요시간 4시간인 트랙 앤 타워 트레일(Track & Tower)을 걸었다. 며칠간 내린 비로 진흙탕이 된 산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느라 시간도 근육도 더 많이 쓰여 힘들었지만, 그 산행은 오롯이 좋았다. 좋았다는 말이 충분치 않은 듯도 하다.
비 오는 산을 우비를 입고 걷는 동안엔 빗방울이 투둑 투둑 모자와 옷에,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고요한 숲 속에서 빗소리만을 들으며 한걸음 한걸음을 디딘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집중을 하고 있어 다른 생각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저 한걸음씩 다음에 디딜 돌 사이, 바위의 평평한 면만을 인식한다. 그러다 경사가 힘들면 숨이 가빠져 호흡만이 인식된다. 그렇게 걷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었는데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와 단풍나무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다.
아-. 아름답고 고요하다.
세상의 소음과 단절된 채로 빗소리와 바람 소리만을 들으며 숲 한가운데에 있다. 고운 빛깔로 물든 나무들만을 응시할 수 있다. 이따금씩 멈추어 단풍의 한가운데를 담았다. 그런데 2시간 넘는 시간을 올라야 하다보니 이따금인 순간들을 이어보면 한 폭이 된다. 어차피 내려올걸 알면서도 뭐하러 힘들게 높이 오를까 생각했던 나는, 산을 오르는 과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누리는 것도 좋지만 가빠지는 호흡을 느끼며 걷다가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동안 바라보는, 비슷한듯 조금씩 다른 나무의 장면은 어딘가 뭉클한 데가 있었다.
그렇게 올라 뷰포인트가 가까워졌는데도 끝날 듯 끝나지를 않았다. 너무 지치고 그만 걷고 싶어서 '못하겠어ㅠㅠㅠ이제 못해ㅠㅠ더는 못걸어ㅠㅠ'하며 마지막 힘을 짜내어 걸었다. 그렇게 겨우 겨우 도착해 나무 사이에서 걸어나오자 눈 앞에 펼쳐지는 단풍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모습. 높은 곳에 올라 무언가를 바라본 적이 있으면 다들 아는, 입을 다물 수 없는 풍경.
아픔은 한 순간 사라지고, 시원함이 온 몸을 통과해 새로 태어난듯한 기분. 그런 느낌이 그 곳에 있었다. 내가 이런 곳에 올라 이런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다니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도 함께 느낀다. 한 구석 한 구석 촘촘히 담다가 해가 지기 전 내려가기 위해 다시 몸을 움직였다. 다시 비 오는 산 속을 걷는것은 힘들지만, 힘들기만 하지는 않다. 여전히 가을 빛깔은 아름답고, 통증은 하루 이틀 아파하고 나면 조금 더 들어찬 근육을 내어준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풍 산 속을 오롯이 걷고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동부보다 늦게 찾아온 밴쿠버의 가을도 산 속에서 마주하고 싶었다. 몇 시간 동안 산 속을 걸으며 단풍 구경하는 것의 오롯한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다른 산에도 찾아가 등산은 이 맛에 하는 것이라 외치며 걷고, 감탄하고, 뿌듯한채로 내려왔다.
설악산, 북한산, 내장산, 속리산..
나는 요즘 우리나라의 가을 산을 찾아보며 기대하는 마음을 키우고 있다. 이름만 많이 들어본 그 산들은 어떨까? 주로 노란빛인 캐나다 단풍과 다른 우리나라의 붉게 타오르는 단풍산은 고유하게 아름다울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동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밴쿠버에서 몇 계절을 보내며 몸에 새긴 것을 한국에서도 경험하고 싶어졌다는게 기쁘기도 다행스럽기도 하다. 돌아갈 때가 아쉽기만 하지는 않을테니까.
스무살 때 함께 지리산을 오르다가 먼저 내려가 난로가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내 얘기를 아직까지도 하는 친구들과 함께 다시 그 곳으로 찾아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앞장설 생각에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