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엄청난 흥행 때문인지, KAIST 같은 과학을 연구하는 기관에서도 복잡계 이론을 적용하여 조선 관료 사회의 성공과 몰락 패턴을 연구했다고 한다.
이러한 시스템적 접근과는 달리, 조선 왕실의 권력 지형의 변화는 유전적 다양성 결핍이라는 생물학적 가설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조의 많은 왕과 세자들이 한결같이 그 후손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찍 세상을 떠난 데서 모든 문제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문종이 39세에 승하했을 때 단종은 만 11세에 불과했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20세에 요절하면서 그의 동생 예종이 19세에 즉위했으나, 예종마저 20세에 승하했다. 당시 예종의 적장자인 제안대군은 4세에 불과했고,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개입하여 13세였던 성종을 즉위시켰다.
성종마저 38세에 승하하고 19세이던 연산군이 즉위했다. 인종이 31세에 요절하면서 12세의 동생 명종이 즉위했고, 명종은 34세에 승하했으나 그의 유일한 아들 순회세자는 이미 13세에 요절한 상태였다.
이렇게 이조의 왕과 세자들이 짧은 생을 살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각양각색이지만, 종기로도 죽고, 발병(足疾)으로도 죽고, 피부병으로도 죽었던 데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 밑바닥의 원인은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면역체계의 취약성이다.
조선 왕실은 시작부터 좁은 유전자 풀(pool)이라는 생물학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일부 세도가와의 폐쇄적 통혼에 따른 유전자 풀의 단순함이 기초 면역력을 저하시킨 결과이다. 이러한 왕실의 불행을 기회로 활용했던 세조였지만 정작 자신조차 두 아들을 일찍 잃어버리는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편, 핏줄이 다른 집안에서 온 유전체 보유자인 왕후들은 대부분 장수했다. 왕후들은 오래 살아남아 수렴청정, 외척에 의한 세도 정치 등 왕들의 조기 사망에 따른 부작용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생물학적 측면에서는, 이들은 효과적인 소독약이나 항생제가 부족했기 때문에 왕들이 요절했다는 반론을 잠재우는 좋은 대조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