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 큰아들 꿈에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로또번호 다섯 개를 불러주었다. 꿈이 선명했던 만큼 당첨이 확실했다.
월요일에 제출할 사표 문구가 떠올랐다. 그동안 나의 삶을 지탱해 주어서 감사했다는 다소 서정적인 문구였다. 불현듯 당첨금 세율이 너무 높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결정에 남겨진 하나의 번호는 성경책을 무작위로 들쳐 그 쪽수로 정했다.
결국 사표 못 냈다.
아들에게 그 할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더냐고 물었다. 누구길래 가만히 있던 사람 들쑤셔서 난리를 치게 만들었냐고.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그 할아버지가 누군지 알 것 같다. 내가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시는 그분, 그래서 오늘도 내 곁에 계시는 그분.
굳은 땅에 쟁기질하며 살라고 하시는 그분, 달리다 멈추면 더 이상 바람이 아니라고 절벽 끝에 부는 바람처럼 살라고 하시는 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