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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재판

by 슈르빠

두 개의 창문이 있는 방에 도둑이 들었다. 재판정에서 검사는 범인에게 두 개의 창문 중 어느 창문으로 침입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도둑은 둘 다라고 대답했다. 분개한 검사는 바른대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도둑의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변론을 했다.


도둑은 동시에 두 군데에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도둑은 두 군데서 동시에 관측될 수 없다. 창문에 관측 장치를 설치하면 도둑은 어느 한쪽 창문에서 관측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관측 장치를 달지 않았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관측 장치를 달지 않았을 때도 하나의 창문으로만 침입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개의 창문을 통해 침입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지만, 이것은 일본에 두 번째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준 도모나가 신치이로(朝永 振一郞, 1906~1979)의 <양자역학적 세계상>이라는 책에 실려 있는 광자재판 이야기다.


양자 상태는 관측되기 전까지는 특정한 확률 진폭을 가진 여러 상태의 중첩으로 존재하며, 그 중첩 상태는 관측에 의해 하나의 확정된 상태로 붕괴한다는 코펜하겐 해석을 설명하기 위해 도모나가가 고안한 이야기다.


이중슬릿 실험에서, 관측을 하지 않으면 광자는 파동처럼 행동하여 두 개의 슬릿 모두를 통과한 다음 상자 안벽에 간섭무늬를 만든다. 그러나 어느 하나의 슬릿에 관측 장치를 설치하면 광자는 입자처럼 행동하여 그 슬릿으로만 통과하고 상자 안벽에 간섭무늬도 만들지 않는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입자와 파동의 중첩 상태가 관찰이라는 개입으로 인해 입자로 붕괴되어 발생한다.


물론 코펜하겐 해석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다세계 해석, 디코히어런스 (Decoherence) 등 다른 해석도 존재하지만, 그것을 떠나 그런 현상 자체는 고전역학에 익숙한 일반인으로서는 충격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관측을 하지 않을 때는 양쪽 창문을 지나가는 빛 알갱이가 어느 한쪽 창문에 관측장치를 설치하면 그 창문으로만 지나가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말인가?


전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 지점 중 하나를 골라 관측을 하면 그곳에서만 전자가 관측되고 나머지 지점에서는 전자가 존재할 가능성이 소멸되어 버리는 현상을 무슨 수로 믿으라는 말인가?


그렇다고 그것을 진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기에 더욱 곤혹스럽다. 더군다나 이미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 같은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용한 큐비트(quantum bit)와 양자컴퓨팅이 세상에 출현해 있는 지금, 뉴튼의 사과만 깎아 먹던 일반인으로서는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믿을 수 없다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본질을 판단하거나, 관측된 결과만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장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진실이 아니라고 배척해서도 안 되고, 서로 상충되어 양립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무지의 소산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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