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바다, 첫 번째 항해
몸으로 익히고 생각으로 완성하다
젊음은 언제나 길 위에 서 있었다.
설봉의 침묵에서 인내를 배우고, 복하의 흐름에서 도전을 꿈꿨던 소년.
이제 그 소년은 정든 고향의 산하를 뒤로하고,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낯선 도시,
인천으로 향한다.
배움과 선택,
숱한 실패와 악착같은 다시 시작이 소년을 조금씩 단단한 강철로 담금질했다.
손끝으로 익힌 기술의 시간이 깊은 사유의 생각으로 이어지며,
비로소 삶의 정교한 항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무모했던 도전은 소년을 다음 자리로 이끌기 위해
하늘이 예비해둔 치열한 준비 과정이었다.
자전거포의 벌이가 결코 넉넉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 가족이 말없이 공유하던 아픈 전제였다.
중학교 졸업장과 함께 날아든 인천기계공고 합격 통지서는 단순한 진학의 기쁨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질긴 밧줄을 끊어내기 위해,
부모님이 당신들의 생을 깎아 멀리 내보낸 한 척의 작은 종이배였다.
그 배의 이름은 '헌신'이었고, 돛대에 걸린 깃발은 '희망'이었다.
열여섯 살의 겨울 끝자락,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천행 전철을 타고 동인천역에 내렸다.
매끄러운 선로 위를 미끄러지는 전철의 소리는 신기하면서도 생경했다.
하지만 역 주변을 가득 채운 건 전철의 세련된 소음만이 아니었다. 낡은 기관차가 내뿜는 거친 숨소리와 육중한 기차 바퀴가 선로를 짓누르며 내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뒤섞여 귀를 파고들었다.
그 거대하고도 차가운 금속음의 향연 속에서,
나는 아무런 완충 장치 없이 날것의 세상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도시는 거대했고, 빨랐으며, 지독하리만큼 냉정했다.
누구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거대한 기계 장치 같은 공간에서,
나는 처음으로 오직 내 두 발의 힘만으로 자신을 지탱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기숙사비조차 버거웠던 제자의 형편을 살피신 선생님은
동인천 당신의 집 옥탑방 한 칸을 선뜻 내어주셨다.
밤늦도록 인문고 학생들 과외 수업의 열기로 가득했던 그 좁은 방은 늘 하얀 분필 가루가 자욱했다.
중학교 시절 가난이라는 그림자가 발목을 잡을때마다 오히려 학업에 매달렸던 나였기에,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차마 말로 다 못할 복잡한 회한으로 일렁였다.
학생들이 모두 돌아가고 방 안에 자욱하게 남은 분필 가루를 닦아내고서야
비로소 고향에서 가져온 얇은 이불을 펼 수 있었지만,
아침마다 사모님이 건네주신 따뜻한 도시락의 온기는 타향살이의 시린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유일한 지붕이 되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옥탑방의 차가운 형광등 아래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은 성공에 대한 욕심이라기보다, 나를 여기까지 밀어 올린 부모님의 시간과
스승님의 진심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날 밤 이후, 나는 더 이상 '복하천 소년'이 아니었다.
낯선 도시의 공기 속에서 나는 '자립'이라는 쓰디쓴 이름을 배우며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당시는 나라 전체가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엔진의 회전수를 높이던 격동의 시대였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리와 밤을 잊은 공장의 불빛 속에서,
기술을 익히는 어린 손들은 곧 국가의 미래를 주조하는 손들이기도 했다.
나는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 한복판에 서 있었다.
시대가 청춘들에게 붙여준 이름, '근대화의 기수'라는 말은 더 이상 교과서 속의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손끝에서 피어날 불꽃이었고, 내 삶의 명분이었다.
설봉산의 그늘을 떠나온 소년은 그날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의 삶이라는 거대한 배에도 이제 막 무거운 닻이 올라가고 있음을.
이제 내 앞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고, 나는 기꺼이 그 파도 속으로 키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