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지도를 접고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단절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설봉산의 나무들이 나이테를 늘려가듯,
내 안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조용히 준비되어 온 하나의 흐름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늘 설봉산을 바라보며 자랐고,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던 복하천 옆 구만리 뜰을 곁에 끼고 학교로 향했다.
산은 늘 그 자리에 머물며 인내를 가르쳤고,
강은 쉼 없이 흐르며 변화를 일깨웠다. 그 침묵과 흐름 사이에서 소년 기완은
이유도 모른 채 조금씩 영글어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배움은 교과서보다 삶의 현장에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아버지의 자전거포에서 풍기던 쾌쾌한 기름 냄새,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익힌 책임의 무게,
어머니의 뜨개질 소리에 담긴 사랑,
그리고 "넓은 데를 봐라"라던 스승의 한마디까지.
그 모든 조각이 모여 나를 조금씩 바깥세상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고향의 논밭도, 물려받을 농토도 없던 내게 농업고등학교는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었다.
현실은 냉정했지만, 그 덕분에 내 시선은 담장 너머 도시로 향할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넓은 세상을 접하겠다는 결심은
어린 내 가슴에 벅찬 희망과 설렘을 안겨주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단순히 개인의 꿈을 쫓는 소년이 아니었다.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기꺼이 짊어지고 조국 근대화의 작은 기수가 되리라는 뜨거운 사명감을 품었다.
농토가 없어 선택한 공고행은 비록 서글픈 현실에서 시작되었을지언정,
그 안에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거대한 기대가 일렁이고 있었다.
떠나기로 마음을 정한 뒤에도 세상은 평온했다.
설봉산은 여전히 굳건했고 복하천은 변함없이 흘렀다.
달라진 것은 오직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눈동자뿐이었다.
담장 위의 햇빛, 골목의 흙냄새,
저녁 무렵 집집마다 피어오르던 밥 짓는 연기...
떠날 사람에게만 허락된 그 애틋한 풍경들을 나는 마음속 사진첩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 순간들이 훗날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짐을 꾸리던 날, 어머니는 평소보다 말이 적으셨고 아버지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히 자전거 공구를 정리하셨다.
붙잡지도, 재촉하지도 않던 그 깊은 침묵 속에서 나는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읽었다.
떠남이란 결국, 보내는 사람의 눈물겨운 용기 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버스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설봉산을 올려다보았다.
산은 말이 없었으나 그 침묵은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이제 네가 스스로 길을 내며 걸어가야 할 시간'이라고.
"고향은 끝난 것이 아니라,
나를 세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잠시 뒤로 물러나 앉았을 뿐이었다."
첫눈이 내리던 날, 나는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이 나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설봉의 능선과 복하의 흐름은 내 안으로 고스란히
옮겨와 이후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조용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고향을 떠난 소년이 도시에서 배운 희망과 자립심,
그리고 사명감은 오늘의 나를 만든 첫 번째 선택이자 평생의 자산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이름으로 첫발을 내디뎠고,
며칠 뒤 낯선 도시 인천의 공기 속에 서 있었다.
새로운 기술과 사람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속도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모든 시작은 이미 복하를 건너던 그날에 완성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