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
인천기계공고에서 내가 처음 배운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의 언어였다.
펜을 쥐었던 손에 무거운 '줄'이 쥐어졌고,
제도실의 정밀한 선형은 실습실의 차가운 쇳덩이로 실체화되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겹겹이 쌓이도록 쇠덩어리를 갈아 정육각형 주사위를 만드는 실습이 몇 개월간 이어졌다.
눈으로는 직선을 맞추고 손끝으로는 미세한 정밀도를 감각하는 그 원초적인 반복은,
사실 쇳덩이가 아니라 나약했던 나 자신을 깎아내는 고독한 담금질이었다.
그러나 인천에서의 타향살이는 열일곱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녹록지 않았다.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건네신 '더 넓은 세상을 보라'는 말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나의
어깨는 너무 좁았다.
낯선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마다 나는 몇 번이나 나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 한마디가 어린 제자에게 내린 축복이었는지,
아니면 견뎌내야 할 채찍이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연필 가루 대신 쇳가루가 코끝을 찔렀고,
방과 후 돌아온 옥탑방에는 서늘한 한기가 감돌았다.
어깨가 마비될 듯한 통증이 밀려오는 날이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향의 사계를 불러냈다.
복하천의 연둣빛 숨결과 설봉산 짙은 숲내음이 옥탑방의 적막을 채워주면,
신기하게도 다시 하루를 견딜 힘이 차올랐다.
손바닥의 물집이 터지고 굳은살이 쌓여갈수록,
그것은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버텨냈다는 정직한 흔적이 되었다.
나라 전체가 보이지 않는 긴 숨을 참고 있던 2학년 가을,
정밀가공기능사 자격증 실습은 차원이 다른 시련이었다.
NC선반과 수작업을 병행하며 세 개 이상의 정밀 부품을 깎아 하나의 제품으로 조립하는 과정은
0.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외줄 타기였다.
찰나의 실수가 수십 시간의 노력을 고철로 만드는 가혹한 압박감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실습실의 불을 끄지 않았다.
그것은 낯선 도시의 냉정함을 실력으로 돌파하는 법이었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땀방울로 제 자리를 만들어가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旗手)’의 숙명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자격을 취득하던 날, 나는 학교의 상징인 '기능인의 탑' 앞에 다시 섰다.
기능인의 탑 앞에서 다짐했던 그날의 꿈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반백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내 서랍 한편에는 그때 받은 국가기술자격증이 고이 보관되어 있다.
모서리는 닳고 색은 바랬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쇳가루 섞인 기름 냄새와 뜨거웠던 열일곱의 숨결이 생생하다. 그것은 가난의 그림자를 지워내고 내 삶의 주인이 되겠노라 선언했던, 소년의 가장 정직한 첫 번째 승전보였다.
시대의 거대한 해일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 술렁이던 때, 기능을 배우는 일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었다.
쇠는 쉽게 형태를 바꾸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손길 앞에서는 결국 정직하게 길들여진다.
쇠를 견디며 건너온 그 계절은 나를 더 넓은 하늘로 밀어 올렸다.
손끝으로 익힌 기능의 정점에서 나는 다시 그 너머의 근본적인 학문적인 질문을 마주했다.
기능은 현상을 해결했지만, 이론은 그 현상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단순히 쇠를 잘 깎는 사람을 넘어, 기계의 심장을 설계하고 그 원리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기능이라는 튼튼한 토양 위에 이론이라는 기둥을 세우고 싶다는 열망,
그것이 나를 기꺼이 다시 책상 앞으로 불러 세웠다.
이제 내 앞에는 그날 동인천역에서 마주했던 것보다
더 거친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지만,
나의 손은 이미 그 파도를 움켜쥐고 항해를 계속할 만큼 충분히 단단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