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청춘일기

기로에 선 공학도, 시로 기록한 시간들

by Tiger Hahn
책꽂이를 정리하던 지난 주말,

오래된 책 한 권에서 낡은 종잇조각들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비닐 코팅된 것도 있었다. 종이는 빛이 바랜 채 얇아져 있었고,

모서리는 수십 번의 계절을 견딘 듯 부드럽게 닳아 있었다.

1983년과 1984년, 대학 2학년 무렵에 끄적였던 시들이었다.


전공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시절,

공학도의 언어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마음들이 시가 되어 책갈피 속에 숨어 있었다.


다시 마주한 그 시절의 문장들은 나를 헛웃음 짓게 하다가도 금세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낯설고 미숙한 그 글 속에서, 나는 세상이 두려워 움츠려 있던 외롭고 불안했던 청년을 보았다.

우스꽝스럽고 쑥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으로 안쓰러운,

말로 다 하지 못한 나의 숨결이 그곳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한 장씩 넘기며, 그 시절의 나와 다시 마주 앉는다.
이 글은 그렇게 다시 펼쳐진 청춘의 일기다.


1983년 3월 / 프랑스군 전적지


“나 죽은 뒤에 살아남을 모든 이들이여
내게 모진 마음 품지 말아라.”
설계도에 없는 변수

기계공고 시절, 나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작업복을 입었다.
기름 냄새와 쇳가루 속에서 배운 것은 정확함과 효율,

그리고 멈추지 않는 손의 노동이었다.


어렵게 진학한 공과대학은 그 꿈의 정점처럼 보였다.
그러나 입학 직후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다.
영어 원서로 가득한 전공 서적 앞에서, 나는 문장을 해독하듯 하루를 버텨냈다.


그해 3월의 어느 날, 나는 프랑스군 전적지를 찾았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곳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사명’이라는 말 뒤에 감춰진 마지막을 보았다.


대여섯씩 결박된 채 흙으로 돌아간 이름 없는 영혼들.

햇빛은 고르게 내리고 있었지만, 그 풍경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잘 먹고 단단해 보이던 몸도 결국 뼈로 남는다는 사실이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나를 흔들었다.


효율과 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배우던 공학도에게
그 죽음의 풍경은 설계도에 없는 변수였다.


그날, 나는 계산 대신 침묵을 배웠다.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저 서서 바라보는 법을.

이름 없는 해골들이 말없이 건네던 음성—



1983년 4월 / 수유리 4·19 탑


“밤엔 들려온다
들어 본 적이 없는 소리
미처 악보에 적어 넣지 못한
팀파니의 소리가.”
'죽음'과 '역사'

캠퍼스에 최루탄 냄새가 채 가시지 않던 4월,
나는 수유리 4·19 탑 앞에 서 있었다.


바람은 아직 차가웠고, 공기에는 어딘가 타는 냄새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거리의 함성과 교정의 침묵이 뒤섞인 시간이었다.

민주화를 향한 절규는
공장 기계 소리보다 더 크게 가슴을 울렸다.


공학은 소음을 제거하는 법을 가르치지만,
그날의 나는 오히려 지워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 사이로 스며들던 미세한 떨림,
역사가 다 기록하지 못한 박동,
악보에 끝내 적히지 못한 울림.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조국 근대화라는 거대한 설계도 위에는
숫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이 빈 공간을, 하나님은 어떤 사랑으로 채우길 원하셨을까?




1983년 8월 / 온양 동화리


여름의 농촌 봉사활동은
관념 속에서 헤매던 나를 뜨거운 현실 위로 불러냈다.


충남 온양 동화리.
청년들이 떠난 자리에는 노인들과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그들의 손은 거칠었지만 따뜻했다.

나는 그 손을 잡으며
‘근대화’라는 단어가 품어야 할 온기를 처음으로 느꼈다.


오전 활동을 마치고 맞이한 오후,
폭풍처럼 쏟아지던 소나기가 지나가고
마을에는 물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여 퍼졌다.


불어난 개울물에 몸을 담그고
나는 내 안의 소란을 조용히 흘려보냈다.

바위에 앉아 젖은 몸을 말리며 올려다본 하늘—


그곳에 시 한 구절이 맺혔다.


“폭풍이 스치고 간 자리에 마지막 구름 한 점 남아
홀로 맑고 푸른 하늘을 떠돌아
침침한 그림자를 지우며 환희 속에 혼자만 서럽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고,
그 끝에 걸린 구름 한 점이
내 마음의 모양과 닮아 있었다.




1984년 1월 / 인천 자유공원


겨울의 인천 자유공원.
차가운 공기 속에서 숨을 내쉴 때마다 흰 김이 피어올랐다.


맥아더 동상 아래에서 눈싸움을 하며
나는 잠시 ‘기수’라는 무거운 이름을 내려놓았다.

웃음이 터져 나오던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는 설명되지 않는 공허가 남아 있었다.

거대한 역사 앞에서
나는 오히려 더 개인적인 질문에 붙들려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왜 이토록 사람을 흔드는가.


“사랑한다는 것,
한 존재로 하여금
불안에 떨게 하는 것.”
가장 정직하고 외로운 외침

그 겨울, 나는 처음으로 인정했다.
조국을 향한 큰 말들 뒤에
한 인간의 외로움이 조용히 숨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외로움 또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라는 것을.




1984년 8월 / 외연도 동백나무 숲


“내 마음은
물 오른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고
노래하는 새.”
나를 내려놓고 다시 노래하다


대학 생활의 절반을 넘긴 여름,
나는 외연도로 향했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마치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경계처럼 느껴졌다.

동백나무 숲의 짙은 초록은
내 안의 방황을 말없이 감싸 안았다.


밤이 되면 은하수가 쏟아졌고,
낯선 고요가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했다.

고립된 3박 4일의 시간은
도피가 아니라, 다시 세워지는 시간이었다.


허무와 고독으로 가득하던 마음에
어느 순간, 아주 조용히 노래가 깃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선명해 졌다.
사람은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무너지는 만큼 다시 자란다는 것을.

이제 나는 더 이상
기계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부속품이 아니었다.


생명의 질서 위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존재로,

나의 영혼은 조용히 방향을 틀고 있었다.


끝에


이 시들은 미숙하다.


그러나 그 미숙함 덕분에
나는 그 시절을 부정하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공학도로서의 길은 계속되었지만,
시를 쓰던 청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책갈피 사이에서
조용히 나를 부른다.

나는 이제 그 부름을
외면하지 않는다.


늦었지만, 다시 펜을 들어
그 시절의 나와 같은 속도로
천천히 문장을 이어간다.



작가의 이전글#11 쇠를 견디며 건너온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