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대와 자전거포
우리 집 마당에는
아버지가 합판과 폐목재를 구해 직접 자르고 다듬어 만든
탁구대가 있었다.
표면은 조금 거칠었고 네트도 어설픈 모양새였지만,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온 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우리 집 마당을 가득 채웠다.
집안의 돼지와 토끼, 닭들에게 먹일 풀과 잔반을 구하러
방과 후에도 여기저기 분주히 다녀야 했던 나에게,
하얀 공이 탁구대 위를 통통 튀어 오르는 소리는 그 어떤 휴식보다 달콤했다.
공이 튀어 오를 때마다,
고단했던 나의 하루치 근심도 가벼운 공처럼 함께 날아가는 듯했다.
아버지는 늘 그 곁에서 말없이 자전거를 손질하셨다.
시커먼 구리스가 묻은 손으로 체인을 닦다가도,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면 잠시 고개를 들어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그 투박한 탁구대는 단순한 놀이 기구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내어준 당신만의 가장 넓은 세상이었으며,
어린 나이에도 집안 일손을 돕느라 거칠어진 나의 손을 어루만져 주시던 아버지의 깊은 위로였다.
그것은 말 대신 투박한 손끝으로 전해준 가장 따뜻한 사랑의 방식이었다.
읍내 한쪽,
늘 시큼한 기계 냄새와 고무 냄새가 섞여 배어 있던 자전거포는
우리 가족의 생계이자 나의 또 다른 학교였다.
그 속에서 아버지는 펑크 난 튜브를 정성껏 붙이고
느슨해진 체인을 조이며 매일의 삶을 견뎌내셨고,
어머니는 가게 한쪽에서 부업을 이어가며
그 묵직한 기름 냄새 속에서 우리 가족의 하루를 함께 지탱하셨다.
나는 그곳에서 교과서보다 더 귀한 것들을 배웠다.
새것만이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
사람의 손때가 묻은 물건일수록 더 오래 곁을 지킨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고쳐 쓰는 시간' 속에 삶을 향한 끈기가 깃든다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의 손톱 밑에 검게 물든,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는
그 어떤 훈장보다 정직한 노동의 증표로 보였다.
지금 돌아보면 마당의 탁구대와 자전거포의 하루는 서로 꼭 닮아 있었다.
탁구대가 아이들의 웃음을 이어주었다면,
자전거포의 낡은 공구들은 우리 가족의 시간을
묵묵히 이어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고치던 것은 단지 자전거 바퀴가 아니라, 알싸한 기름 냄새속에서 내가 안전하게 세상으로 굴러갈 수 있도록 지켜주던 '나의 거대한 울타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