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건빵의 온기와 태권도의 열기

두 줄기의 설계도

by Tiger Hahn
김진란 선생님 하숙집은 우리들의 아지트이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놀이터였다.


육군 장교였던 선생님의 애인이 부대에서 가져다주었다는 군용 건빵은,

그 시절 나에게 허락된 최고의 사치이자 귀한 선물이었다.


워낙 귀하고 딱딱했던 건빵이라 우리는 그냥 깨물어 먹는 법이 없었다.

커다란 대접에 물을 붓고 건빵을 담가 퉁퉁 불려 양을 늘렸다.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물을 머금고 부드러워진 건빵 조각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며,

우리는 배고픈 시절의 시린 속을 서로 달래주었다.


해 질 녘,

주머니 가득 선생님이 챙겨주신 건빵을 채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부터가 달랐다.


동생들 앞에 건빵 주머니를 당당히 풀어놓으며

짐짓 어른인 척 거드름을 피우던 그 저녁.

나의 마음은 대접 물에 불어난 건빵처럼 조용히,

그리고 넉넉하게 부풀어 올랐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건네줄 때 느껴지는 그 묘한 포만감을 그때 처음 맛보았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학교 강당은 태권도부의 우렁찬 기합 소리로 달아올랐다.


난로 하나 없는 넓은 강당 바닥은 발바닥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시렸지만,

하얀 도복 소매 위로 삐져나온 선배의 빨간 내복을 보며

우리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며 추위를 잊곤 했다.


살을 에던 추위 속에서 맨발로 바닥을 차고 정권을 내지르며 흘린 땀방울은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다져주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그저 고단한 노동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릴 때 찾아오는 말간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배웠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복 사이로 피어오르던 하얀 김은 내가 세상에 내뱉는 첫 번째 열기였다.




물에 불린 건빵이 주었던 부드러운 온기와 찬 바람을 가르던 태권도의 뜨거운 열기.


그 상반된 감각들은 나의 가슴 속에 '함께 견디는 법''스스로 단단해지는 법'이라는

두 줄기의 설계도를 남겨주었다.


훗날 거대한 기계 장치와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던 항공 산업인의 삶도,

어쩌면 그 시절 물에 불린 건빵의 부드러움과 태권도의 강인함 사이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image.png 그 시절, 우리가 함께 견뎌낸 겨울


작가의 이전글#2 눈밭에 묻힌 오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