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엿판에 새긴 첫 눈물
겨울바람이 옷깃을 매섭게 파고들면,
나는 어김없이 묵직한 깨엿판을 어깨에 메었다.
200원어치 엿을 떼어다 팔면 500원이 남는 단순한 장사였지만,
그 작은 동전 몇 개를 손에 쥐기까지 내가 넘어야 할 세상의 문턱은
고향의 설봉산보다 높고 험했다.
수줍음 많던 나에게 다방이나 당구장의 무거운 문을 여는 일은
매번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담배 연기와 왁자지껄한 어른들의 소음 사이로 들어서면,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깨엿 사세요”라는 말은
자꾸만 입술 끝에서 맴돌다 흩어지곤 했다.
낯선 이들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나의 고개는 자꾸만 아래로 숙여졌고,
어깨에 매달린 엿판은 세상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나를 짓눌러왔다.
어느 날은 짓궂은 취객이 내지른 장난 섞인 꿀밤 한 대에
참았던 서러움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차가운 길 위에서 쏟아낸 눈물은 엿가락처럼 끈적하게 마음을 할퀴었다.
하지만 가장 시리게 남은 기억은 자정이 다 된 깊은 밤,
하얀 눈길 위에 흘린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찾기 위해 눈밭을 헤매던 시간이다.
장갑도 끼지 못한 손끝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얼어붙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차가운 눈더미를 파헤치며 사라진 동전을 찾고 또 찾았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동전을 원망하며,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 소리 죽여 울었다.
그때 흘린 눈물은 단순히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매서운 추위와 타인의 시선을 견디며 맞바꾼 나의 하루가,
통째로 눈 속에 파묻혀 사라져버린 것 같은 허탈함 때문이었다.
정직한 노동이 차가운 눈더미 속으로 증발해버린 것만 같아 나의 마음은 겨울바람보다 더 시렸다.
그 혹독한 겨울,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이면을 보았다.
모든 돈에는 그것을 벌기 위해 흘린 누군가의 애환과 간절함이 먼저 녹아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눈물로 얼룩졌던 깨엿판은 나에게 인생이란 요행이 아니라,
제 몸을 던져 얻어내는 정직한 대가임을 가르쳐주었다.
눈 속에 파묻힌 오백 원을 찾기 위해 차가운 손마디를 비비던 그 밤,
나는 비로소 삶의 항로를 배웠다.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길은 없으며,
오직 자신의 진실한 땀방울만이 내일의 문을 열어준다는 그 준엄한 사실을 말이다.
그날 눈밭에 새긴 나의 눈물은,
훗날 어떤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가장 단단한 삶의 밑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