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친구, 첫번째 이별
나에게는 누렁이라는 이름의 개가 있었다.
딱히 세련된 이름을 지어준 기억도 없다.
그저 털색을 따라 '누렁이'라 불렀을 뿐이지만,
녀석은 강아지 시절부터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돼지우리 앞에서 동생들과 함께 누렁이를 곁에 두고 찍은 사진 한 장이
이제는 세상에 남은 녀석의 유일한 흔적이 되었다.
누렁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마당에서, 들판에서, 내가 이름을 부르면 가장 먼저 고개를 들고 나에게 반응하던 존재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녀석은 언제나 꼬리를 흔들며 나를 맞았다.
특별한 이유도, 거창한 환영사도 없었다.
그저 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녀석은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우리는 말을 섞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만으로 그날의 기분을 읽어내곤 했다.
들판을 함께 뛰어다닐 때면,
누렁이는 늘 나의 반 발짝 뒤를 지켰다.
앞서 나서서 길을 막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눈에서 멀어질 만큼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 적당하고도 일정한 거리감은 어린 나에게 이상할 만큼 큰 편안함을 주었다.
녀석은 늘 나를 지켜보며 보호하려 했고, 나는 그 든든한 동행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다.
가끔 내가 쪼그리고 앉아 녀석의 털 사이로 배어 나오는 따뜻한 숨결을 느끼고 있으면,
조건 없이 곁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평생 나의 그림자처럼 머물 것 같던 누렁이가
나라에서 나눠준 쥐약을 먹고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당시 온 나라에는 '쥐잡기 운동'이 한창이었고,
나라에서 나누어준 쥐약을 집집마다 음식에 섞어 길목 곳곳에 뿌려두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을 괴롭히던 쥐를 잡기 위해 놓아둔 그 독한 약을,
착하고 순진했던 누렁이는 그것이 자신을 해칠 줄도 모른 채 핥아먹고 말았다
너무도 허망하고 고통스러운 이별이었다.
마당 한쪽, 녀석이 머물던 휑한 빈자리 앞에서 아버지는
굳게 입을 다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나 역시 어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시대의 소란함 속에 희생된 말 없는 존재가 남긴 빈자리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 갔다.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나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함께했던 시간을 잃는 슬픔이 다시는 감당하고 싶지 않을 만큼 시렸기에,
아버지는 그 후로 우리 집에 다시는 개를 들이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이다.
누렁이는 말이 없었지만 나에게 가장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묵묵히 곁을 지키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이별이 사람을 어떻게 자라게 하는지를.
지금도 누군가 조건 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어김없이 나의 반 발짝 뒤를 걷던 누렁이를 떠올린다.
누렁이는 그렇게 내 인생의 첫 번째 친구였고,
삶의 무게를 가르쳐준 첫 번째 이별로 나의 항로 속에 영원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