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막걸리 심부름

찰랑이는 주전자 속 책임감

by Tiger Hahn


"가서 막걸리 좀 받아오거라."

아버지가 건네주신 양은 주전자를 들고

나는 시장 어귀 양조장으로 향하곤 했다.


눈 내리던 그 날, 골목 끝에 가까워질수록 구수한 누룩 향기가 공기 속에 번져왔다.

그 쿰쿰하고도 정겨운 향기는 어린 나에게 어른들이 견뎌온 하루의 냄새처럼 느껴졌다.


주전자가 가득 채워지면 돌아오는 길은 사뭇 비장해졌다.

찰랑거리는 막걸리가 행여 넘치지 않을까 발걸음을 조심하며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어깨가 조금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주전자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고단한 하루를 아주 조금이나마 나누어 들고 오는 것 같았고,

가족을 위한 나의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그 무렵, 나는 초등학교 전교 회장이 되었다.

그 해 광복절 행사 때 총탄을 맞아 잠드신 육영수 여사를 참배하러,

학교의 어린이 대표라는 이름표를 달고 서울 현충원을 방문하게 된 것도 그 때였다.


차분한 정적이 감도는 공기 속에서 여사의 묘소 앞에 섰을 때,

어린 마음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엄숙한 무게감이 전해졌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누군가의 '앞에 선다'는 것은

화려하게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아니라,

누구보다 먼저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다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 앞에 서다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조심스레 걷던 골목과,

묘소 앞에 숨을 죽이고 서 있던 그 순간은

서로 다른 기억처럼 보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하나의 배움으로 이어져 있다.


책임감이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심부름과 어린 날의 소중한 경험들이 모여 삶의 철학으로 조용히 자라난다는 것이다.


나의 어깨는 그렇게 주전자의 무게를 견디고,

대표라는 이름의 무게를 마주하며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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