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도 알아야 할 나짱이야기 4

몽골과 세 번 싸워 모두 쩐흥다오

by 나짱임

쩐흥다오 길은 흥브엉길(가나기3)이 레탄똥길(가나기2)을 만나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여 750미터 길이로 이어져 있다. 대부분의 여행객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롯데마트 골드코스트점이 바로 이길 위에 있다. 쩐흥다오는 베트남 쩐왕조의 왕족이자 무인으로서 어떻게 보면, 강대국과의 전쟁에 강한 베트남 전쟁 DNA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다. 롯데마트에서 장보고 택시를 기리는 길에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베트남의 위대한 장군 쩐흥다오에 대해 설명해 보자.






몽골로도 부르는 원나라는 유럽의 여러 왕국을 무너뜨렸고 이집트 맘루크에 패하기까지 서쪽으로 전진을 거듭하여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이루었다. 1231년 8월부터 1259년 3월까지 28년간 9차례에 걸친 몽골제국의 침략으로 고려는 원나라의 제후국이 되었다. 이제 원나라가 중원을 차지했으니, 그다음 순서는 당연히 베트남이었을 것이다.



1차 대몽골항쟁 (1252년)


1252년 중국대륙은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던 원나라와 베트남의 경계가 접하게 되었고, 원나라는 베트남의 쩐왕조에 남송에 원군을 보내 함께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 쩐왕조 타이똥은 이를 거부하였고, 몽골군은 이를 빌미로 북쪽 경계를 통해 쳐들어왔다. 쩐흥다오는 변방을 지키고 있었지만, 노련한 몽골군을 감당할 수 없어 수도인 탕롱(하노이의 옛 이름)까지 내어 주고 후퇴하게 된다. 그런데, 남방의 더운 날씨가 문제였다. 몽골군은 오랜 시간 무더운 기후를 견디지 못하게 후퇴하게 된다. 쩐흥다오는 퇴각하는 적을 추격하여 큰 전공을 세우게 되었다.


2차 대몽골항쟁 (1279년)


1279년 남송이 무너지고, 쿠빌라이의 원나라가 이제 새로운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 쿠빌라이는 베트남왕이 직접 와서 조공할 것을 요구했지만, 쩐왕조 년똥을 이를 거부하고 당숙을 대신 보냈다. 쿠빌라이는 대신 온 당숙을 베트남의 왕으로 임명하고, 호위대와 함께 베트남으로 돌려보냈으나, 년똥은 이를 막아섰다.


이후, 원나라는 베트남 남쪽 참파 정벌의 길을 열어주길 요구하였으나, 년똥은 이마저 거부했고, 쿠빌라이는 그 아들 토곤을 보내 무력으로 진입하였다. 이번에도 수도 탕롱은 다시 한번 쉽게 점령되었고, 몽골군은 전진을 계속한 끝에 왕조의 멸망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쩐왕조는 항복까지 심각하게 고민하였으나, 쩐흥다오가 이를 강하게 만류하였다. 이번에도 시간은 쩐왕조의 편이었다. 지친 몽골군이 다시 퇴각했던 것이다.


3차 대몽골항쟁과 박당강전투 (1287년)


1287년 쿠빌라이는 다시 쩐왕조를 침략한다. 이번에는 선박 500척도 함께 내려왔다. 지상군은 다시 한번 수도 탕롱을 점령하였고, 쩐왕조의 왕실은 피신하였다. 그런데, 보급을 책임지고 있었던 선박에 문제가 생겼다. 베트남에 도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곧 원나라군은 식량부족과 더운 기후로 인해 지쳐갔고, 이번에도 후퇴를 결정하게 된다.


총사령관 쩐흥다오는 후퇴하는 원나라 군사들을 추격하였다. 박당강을 건너 퇴각하던 원나라 군대에 큰 타격을 입혔는데, 강바닥에 말뚝을 박고, 수위가 높을 때 몽골군을 말뚝으로 유인하였다. 그러나, 이내 수위가 낮아지게 되고 말뚝에 갇힌 몽골군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베트남에 유사 이래 첫 독립왕조인 응오왕조를 열었던 응오꾸엔이 박당강에서 남한의 군사들을 상대로 베트남 독립을 이루어 냈던 동일한 방법으로 승리를 이루어 낸 것이다.


1294년 쿠빌라이가 사망하고, 더 이상의 원정은 없었으며, 이후 원나라와 베트남의 관계는 호전된다.(고려는 1364년 원나라 쇠퇴기에 원의 침입을 물리침으로 다시 독립국의 지위를 회복한다.)






쩐왕조의 막장 가계도, 그 중심의 쩐흥다오


리왕조 말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쩐투도는 쓰리쿠션 기술로 조카를 왕위에 앉히고 쩐왕조를 개창하게 되는데, 그 과정은 이러하다. 조카를 리왕조의 공주와 결혼시킨 후, 혜종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조카와 결혼한 공주를 베트남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로 등극시킨다. 1225년 11월 왕위를 자신의 조카이자 여황제의 남편인 쩐까인에게 이양시켜 리왕조를 무너뜨리고, 쩐왕조를 개창하였다. 즉, 쩐투도가 실질적으로 쩐왕조를 개창한 인물이지만, 이후 왕권은 사촌의 계보를 통해 승계되게 된 것이다.



이후 쩐왕조 왕실 가족관계를 살펴보면 아침드라마 저리 가라 할 스펙터클함을 확인할 수 있다. 쩐흥다오는 쩐 왕조 초대황제 타이똥의 조카, 2대 황제 탄똥의 형제 겸 사촌(쩐흥다오의 모친이 타이똥과 재혼하여 탄똥을 낳았기에), 3대 년똥의 오촌당숙이자 장인(첫째 딸과 둘째 딸 모두의), 4대 아인똥의 외조부가 되는 그물망 같은 가계도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근친혼의 관행은 성씨가 다른 권력자의 출현 가능성을 줄여, 혈연공동체 및 친인척 관계를 위주로 국가를 운영하게 되면서, 왕조의 단합을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하게 하였고, 그에 따라 군주의 권력도 강화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유럽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왕가가 근친혼을 통해 권력을 유지했다고 하는데, 유사한 사례로 보인다.


쩐흥다오는 쩐왕조 초기 권력의 기반을 다지는데, 왕은 아니었지만 가계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몽골의 침략을 3 차례나 막아낸 무장이었으니 실제로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여러 차례 승리하므로 베트남인들의 국뽕을 더하게 하는 많은 사례 중 하나로 남아 있으니, 쩐흥다오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존경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예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공산통일전 남베트남 지폐에 그려진 쩐흥다오 장군


쩐흥다오길(DUONG TRAN HUNG DAO)에서 가야 할 곳.



롯데마트 골드코스트점 추천 상품 (01)


망고젤리 : 망고젤리는 짝퉁이 많아, 담시장보다는 롯데마트에 사는 것이 안전하다.

샤워기필터: 동남아 여행 필수품, 굳이 가져올 필요 없다. 롯데마트(Mr.DIY)에 있으니까.

치약류 : 달리치약, 센소다인치약을 추천함

반짱 : 쌀로 튀긴 뻥튀기, 부피가 크지 않아 수하물 반입이 용이하다. (잘 부서지기는 함)


Mr. D.I.Y매장 (롯데마트 4층 옆) : 베트남 다이소, 저렴은 기본, 신박한 아이템이 있을 수 있으니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보자.

포세이돈 뷔페 :같은 건물 6층에 위치한 해산물 뷔페, 해산물집 어디 갈지 고민하기 싫으면 그냥 여기 가면 됨.



주월사 한국야전사령부가 있던 장소 (18A)


혹시 이곳을 지나간다면, 우리의 자녀 또는 동행에게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와 베트남사이에 있었던 일(베트남전 참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여행의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야전사령부는 주로 정보 및 작전을 통제, 조정 및 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나짱의 한국어방송국도 운영했었고, 파병 장병들은 그 시대 미국영화를 한국 개봉 전에 먼저 볼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군은 1966년 최초로 파병되었고, 1973년 3월 마지막 병력이 베트남에서 철수하였다.(깜란은 파월장병 본진인 청룡부대가 최초로 도착한 곳이다.)

주월사 한국야전사령부로 쓰던 장소는 현재 칸화대학 기숙사로 활용되고 있다. 베트남어로도 기숙사(KY TUC XA)라는 점은 흥미롭다.


Ơi Craft 기념품점(24)


아주 작은 기념품 상점인데, 옛날 옛적 중국에 조공품으로 바쳤을 것 같은 특이한 물건, 특산제품 등이 많이 있다. 기념품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방문을 추천한다. (품목: 진주, 버펄로뿔, 식기류 등 과 약간의 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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