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이겠어요?
어릴 적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엄마 말만 너무 믿은 탓이다.(알다시피 부모들은 자식이 천재인 줄 아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 내 뜻 대로 되는 게 별로 없었다. 나는 사회의 잣대로 나를 봤고, 루저인 내 모습에 화가 난 게 아니라 슬퍼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만 화를 냈다. 모든 것은 네가 더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고.
20대에서 서른이 넘기까지 나는 내가 바라던 모습과 동떨어진 나 자신을 탓하고 비난하느라 거의 녹초가 돼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야박하게 굴면서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만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다독여주길 원했다. 그건 더 어려운 일이란 걸 그땐 몰랐다. 실망한 나는 결심했었다. 다른 누군가의 이해와 위로에 의지하지 않겠다.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안아주고 다독여줄 것이라고. 상대의 판단과 결정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지금은? 지금도 노력 중이라고 밖에 못하겠지만 무턱대고 나만 잡진 않는다. 내가 태어난 세상에서 넘기는 조금 높은 이런저런 턱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만치 온 것도 애쓴 거라고 스스로 다독여줄 줄도 안다.(그렇지만 여전히 조금은 쓸쓸하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것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었다. 불합격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보다는 나의 모순됨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애쓰지 말고 내가 만든 기준으로 나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그렇게 믿어 왔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지만 돈은 벌어야 하므로 이왕이면 번듯해 보이는 직장을 다니는 게 좋지 않겠나 하는 욕심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건축가에 대한 동경을 품은 채로 건축직공무원시험을 봤고 용케 합격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해피엔딩은 당연히 아니다. 뒤늦게 들어간 공무원조직에서 잠시 행복했던 것은 맞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2년도 채 안돼 그만두고 지금은 백수다. 누군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만둘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뭐예요? 그만둔다고 생계에 지장 있는 건 아니라서요.라고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원동력이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사실 어떤 열망이 있어서였다기보다는 앞으로도 그 일을 계속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끔은 괜히 그만뒀나 심란해지기도 하고 오락가락한다. 그렇지만 쓸모없는 삽질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팔근육이라도 단단해지겠거니 차근차근, 천천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생각이다. 물론, 하고 싶은 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