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왜 우리 엄마를 버렸나요.
두터운 아파트 철문이 열리고, 얼굴이 보이자 눈물부터 쏟아졌다. 사진으로만 수 없이 보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다만 조금 더 지쳐있고 조금 더 너그러워 보인 달까. 빳빳한 장교 제복 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기고 허리를 곧게 핀 젊은 아버지는, 어느새 둥그스름하게 굽은 어깨에 흰머리가 자연스러운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처음 만난 나의, 외할아버지.
딱히 큰일은 아니지만 내 인생에 할아버지라는 존재는 없었다.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사 남매 중 막내딸인 우리 엄마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혼을 하셨기에. 십 대 중반이 넘어서야 나는 집안에 떠도는 흐릿한 소문처럼 할아버지가 큰 병이나 전쟁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라, 실은 한참 어린 여자와 새 가정을 꾸리느라 우리의 삶에서 자진하여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새로운 가정의 가장으로서 할아버지는 아마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대체로 만족스럽고 가끔은 후회스러운, 보통의 삶을 누렸을 것이다. 이혼이라는 제도도, 젊은 여자가 가장 노릇을 하는 것도 보편적이지 않았을 그 시대에 할머니는 오롯이 사 남매를 키워내셨다. 전 남편에 대한 미움과 설움, 그 여자에 대한 증오와 원망, 뾰족하게 날 세워진 온갖 모난 감정들을 끌어안은 채 자식 넷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정작 자신의 상처는 알아챌 틈도, 살필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막내딸을 그렇게 예뻐했다던 할아버지는 딸의 결혼식에도 오지 못했다. 급하게 빌려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웨딩드레스를 입은 스물다섯의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 형제분의 손을 대신 잡고 식장을 걸어 들어갔다. 나는 그게 너무 슬펐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어야 할 결혼식이 불편한 어색함으로 가득했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새 아내는 한 번이라도 전 자식들에게 연락하면 본인이 목숨을 끊고야 말겠다며 길길이 뛰었다고 한다. 남편이 아내 말을 잘 들어야 가정이 평화롭다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가 새 아내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그 가정의 평화는 지켜졌을 것이다. 엄마도 작은 이모도 이제는 다 지난 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무덤덤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속이 메스껍게 끓어오른다.
하지만 할아버지,
그럼 우리 할머니한테는 왜 그랬어요?
왜 우리 엄마의 가정은
지켜주지 않았어요?
긍정보다 부정이 컸던 할아버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하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겨울, 작은 이모의 딸이자 나의 가장 친한 동갑 친구이기도 한 사촌의 제안 덕분이었다. 야, 우리 같이 할아버지 보러 갈래? 그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그래,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 대신 한번 보고 오렴. 할아버지의 딸들도 덤덤히 우리를 허락해 주었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지만 작은 이모가 수소문 끝에 최근 집 주소를 알아봐 주었고 단 한 명, 할아버지의 전 아내에게만 비밀로 한 채 우리는 대전에서 부산으로 떠났다. 할아버지도 모르는 그의 손녀들이 몇 날 며칠 몇 시 불쑥 찾아갈 거라는, 지나간 세월을 심판하듯 당신의 현관문을 두드릴 거라는, 그 어떠한 언질도 예고도 없이 그야말로 무작정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 마치 수학여행이라도 가듯 우리는 흥분과 설렘으로 벅찼다. 가방 속에는 할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식들 그리고 손녀들이 어떻게 자라왔는지 보여주겠다고 챙긴 가족사진들이 가득했다. 만약 갔는데, 가족들이 같이 있으면 어떡하지? 아니면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할아버지가 안 반가워하면 어떡하지? 뭐라고 하실까? 무슨 얘기를 할까? 맨날 연습한 캐논 연탄곡 피아노 연주를 들려드리면 어때? 감동하시지 않을까? 답이 없는 물음표들만 끝없이 쏟아졌다. 종이에 적힌 주소지대로 어느 아파트 단지 앞에 다다랐을 때 남은 것은 가슴 터질 듯한 긴장감뿐이었다. 한참 동안 집 앞 놀이터 벤치에 앉아 마음을 다잡다 그래도 집에 찾아가는 건데 선물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아파트 상가를 전전한 끝에 빵집에서 롤빵을 포장했다. 꽃집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할아버지가 수백수천 번 지나다녔을 아파트 현관을 통과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할아버지에게 너무나 익숙할 몇 층 버튼을 누르고, 몇 번이고 되읽어서 외워버린 호수가 적힌 철문 앞에 서서 발만 동동 굴렀다. 손에서 땀이 흘렀다. 초인종을 누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띵동-, 억만년 같이 느껴지는 정적 끝에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아파트 복도로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우리는 나름 고심 끝에 준비한 답을 말했다. 혹시, 김명애 씨를 아시나요. 할아버지의 막내딸, 우리 엄마의 이름이었다. 초인종 너머인데도 흠칫, 놀람과 불안함이 뒤섞인 망설임 끝에 떨림이 느껴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릅니다-.
살면서 들은 가장 가슴 아픈 거짓말이었다. 나는 이미 그가 내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희가, 그 딸들인데요...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야 할지, 망연자실하게 마주 보고 있는데 달칵-, 두터운 아파트 철문이 열렸다. 얼굴이 보이자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다.
할아버지의 집은 평범하고 평화로웠다. 잘 짜인 각본처럼 그 날 그 시간 집에는 할아버지 혼자뿐이었다. 현관에서부터 눈물이 쏟아진 나는 소파에 앉아서도 제대로 말 한마디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집안에서 가장 무뚝뚝하고 무심하고 쿨한 딸이었기에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자꾸만 나를 울렸다. 잘 정돈되어져 있는 따스한 집안의 온기가. 그러니까 눈물 닦으려 피신한 욕실에 다정히 꽂혀 있는 칫솔들이라든가 벽 한 구석에 놓인 골프가방, 커다란 티브이 옆에 놓인 손자 손녀들의 사진 같은 것들. 난 할아버지가 없는데 너넨 할아버지가 있겠지, 해맑은 얼굴의 귀여운 너희들은 너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불륜으로, 다른 가정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이렇게 너네보다 훨씬 더 큰 손녀, 손자들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벽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 속 할아버지 아내의 얼굴, 친자식 결혼식에 코빼기도 내비치지 못하게 악다구니를 썼다는, 아직도 우리 할머니에게 독한 년 나쁜 년 온갖 욕지거리를 들어 마땅한 그 악명 높은 여자의 얼굴. 너무나 평범한 보통의 할머니일 뿐인, 그 온화한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실, 나는 할아버지가 밉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고 본인이 지어줬을 우리 엄마 이름을 모른 척하고, 그런데도 막상 마주한 할아버지는 핏줄이랍시고 밉지가 않았다. 그래서 낯설어야 당연할 생판 모르는 목소리가, 얼굴이, 존재가, 너무나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 기시감이 자꾸만 나를 울렸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집 근처 고기 집으로 데려갔다. 맛있는 밥을 사주셨고, 그제야 눈물이 잦아든 나도 한두 마디 사촌을 거들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우리도 잘 살고 있었고, 할아버지도 잘 살고 있었다. 우리들 모두 평범하고 보편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가방에서 가져온 사진들을 꺼내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말없이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당신의 자식들이 당신 없이 자라 학교를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던 할아버지는 막내딸이 남편, 어린 두 딸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가족사진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셨다. 밥을 먹고 나와 우리는 인사를 했다. 잘 먹었다고, 우리는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올라간다고, 외삼촌과 큰 이모도 모두 잘 살고 있다고, 할아버지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라고. 들고 간 카메라로 번갈아가며 할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포옹도 했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어 있는 지폐를 모두 털어 우리 손에 쥐어 주셨다. 나는 아직도 그 돈을 쓰지 않았다.
엄마와 작은 이모는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훔치셨다. 잘 살고 있으니 됐다, 너희가 잘 다녀왔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할머니도 이 이야기를 작은 이모에게서 전해 들으셨다. 화내거나 흥분하실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의외로 할머니는 덤덤하셨다. 그날 밤 방에 들어가서 오래된 흑백 사진을 꺼내 보셨을지 나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에게도 이제는 많이 아문, 지나간 일들이 된 걸까. 우리 엄마가 갓난아기였던 시절 다 같이 찍은 가족사진 속, 반짝이는 눈의 잘생긴 청년인 할아버지만큼이나 우리 할머니는 도도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군인이던 할아버지는 연상인 할머니를 쫓아다니다 못해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방아쇠를 당겨버리겠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생각해 본다. 그 시절 내 또래였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자신의 앞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른 채 젊음으로 한껏 무장하고선 반짝반짝, 세상에 다시는 없을 것 같았던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낳고, 돈을 벌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그 단조롭고 당연한 일상에 언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을까. 둘의 사랑은 대체 왜, 어떤 식으로, 어디서부터 변하기 시작했을까. 처음 할머니를 사랑했던 열정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할아버지는 두 번째 아내를 사랑했을 것이다. 자식들까지 뒤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어쩌면 그 둘이 처음부터 인연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여자는 아침 드라마 속에 나오는 극악무도한 악녀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싶지 않은 평범한 아내였을 것이다. 평생 동안 내 남편이 또 바람을 피우지 않을지, 몰래 이전 자식들을 만나진 않을지, 죄책감에 시달리며 악몽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어쩌면 그래서 아직 정정하신 우리 할머니보다 한참 일찍, 훌쩍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와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 당장은 선명하고 분명해 보이는 것들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퇴색되고 변화한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는 것,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어른이 될수록 어려워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불확실성이 내 자아를 만들어낸 근본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부터 만들어진 우리 집안의 숨겨진 역사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내가 가진 모든 의문과 욕구의 시발점이었다. <백 년의 고독> 같이 한 집안의 방대한 연대기를 다룬 대서사시에 내가 유독 끌리는 이유, 비혼 비출산이 유행같이 번지는 와중에 아이를 많이 낳아 평화로운 대가족을 꾸리고 싶은 이유, 타인으로부터 끊임없이 사랑받고 싶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끊임없이 읽고, 보고, 찾아 헤매고, 내 흔적을 흩뿌려 어떻게든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뿌리를 굳건히 내리고자 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공감 받음으로써 내가 가진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을 계속해서 쓰고자 한다. 사랑은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인생은 어떻게 풀려 나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 간단한 진실이 나의 뿌리로부터 얻은 교훈이며, 내가 글로 쓰고자 하는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