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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Aug 18. 2018

15년 동안 고마웠어, 내 강아지

너에게 띄우는 편지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까

2002년 언니가 원하는 학교에 합격해서
엄마의 약속대로 드디어 우리 자매가 노래 부르던 강아지를 사러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은행동 애견거리에 갔을 때 
길 한쪽 끝부터 반대쪽 끝까지 길게 늘어선 애견샵들을 
순서대로 모두 들어갔다 나와도
딱 우리 가족이다 싶은 녀석을 찾을 수가 없어 슬슬 지쳐갈 때쯤
마지막으로 들른 곳에서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찹쌀떡같이 말랑말랑한 너를 조심히 들어 품에 안았을 때
내 가슴팍에 머리를 포옥 기대고 눈을 맞춰주었던 너  

내가 처음으로 선택했던 내 강아지, 모모야 
우리 모모야


무뚝뚝한 우리 가족 품에 둘도 없는 애교쟁이인 네가 오게 되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15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금세 지나갔는지
초등학생이던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을 거쳐 
직장인이 될 때까지
내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해주었던 모모야 
같이 커가는 줄만 알았는데 언제부터 너는 늙어가고 있었어


열세 살이던 그때의 나는 몰랐어 모모야 
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지 
네가 그렇게 아파하게 될지 
네가 아무것도 없는 벽을 보며 왕왕 짖어대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게 될지
네 까만 눈동자가 조금씩 뿌옇게 변해가고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게 될지
그렇게 좋아하던 밥을 굶어도
아침저녁 쓴 가루약을 억지로 챙겨 먹여야만 하게 될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모모야


그래도 이기적인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해 
십오 년간 많은 일을 겪었던 우리 가족이 수없이 이사를 다니면서도
너를 다른 집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아서
문만 열면 뛰쳐나갔던 어린 시절의 너 때문에
나는 다 커서도 엉엉 울며 온 동네를 뒤지고 다니곤 했지만
결국엔 항상 우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언니 품에서 보내줄 수 있어서
우리 가족이 너의 마지막을 지켜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모모야


내가 외국에 나가 있던 일 년 간 
나는 네 안부를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혹시나 잘 못 있을까 봐, 내가 없는 새에 
네가 떠났다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거든 
그렇게 비겁한 나는 네가 입원해 있을 때 
언니에게 온 위급하다는 메시지를 보고도
그 이후로 온 내용은 읽을 수가 없었어 모모야 
내가 달려가도 이미 네가 떠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비겁한 나는 밤을 꼬박 지새우고 
다음 날 아침에야 확인할 용기가 났어 미안해


정말 다행히도 그때 네가 떠난 건 아니었지만
바로 그다음 날 나는 네가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어 
그리고 이번엔 바로 너를 보러 갔지


너무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너는 
그냥 정말 천사 같아서 너무 예뻐서 나는 실감이 안 났어
아직도 네 털은 이렇게 부드러운데 이렇게 사랑스러운 냄새가 나는데
그런데 내 입술에 닿은 네 작은 두개골에서 느껴지는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말도 안 되게 차갑고 담담한 시꺼먼 냉기가
네가 정말 떠났다고 나지막이 속삭여 주더라


아프지 않고 편하게 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떠나기 전에 너무 많이 아파서 발바닥도 귀도 눈도 
온통 노랗게 변해버린 채로 
자그마한 병원 입원실에 며칠간 갇혀 
벽만 바라보다 떠나게 해서 어떡하지
날씨가 따뜻해질 때 즈음 
세상에 나올 내 예쁜 조카도 만나지 못하고 떠나서 어떡하지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떠나고 나서 까지 단 한순간도
예쁘지 않았던 사랑스럽지 않았던 때가 없었던 내 강아지 
스탠딩 에그의 little star를 들으면 나는 항상 너를 떠올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정말 눈이 부셨고
내 품에 안긴 채 곤히 잠든 널 보면 정말 행복했거든
그런데 내가 밤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모모야


나는 종교가 없지만 너를 생각하면 천국이 있었으면 해
그래서 누군가 내게, 모모는 잘 있어? 
상냥하지만 마음 아픈 질문을 던졌을 때
응, 여전히 잘 있어,
라고 대답할 수 있게 말이야.


고마워 모모야.
정말 많이 고마워.
네 덕분에 많이 웃었고 많이 행복했고 많이 따뜻했어.
항상 기억할게 내 강아지,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
우리 모모 사랑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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