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재 Apr 21. 2020

정말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있을까

폴더폰과 함께 시도한 백투더퓨쳐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스카이에서 야심 차게(?) 출시한 폴더폰,  IM-F100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 뽀얀 흰색 몸체. 스펙이나 기능 같은 건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랬더라면 애초부터 삼성이나 애플 쪽을 기웃거렸겠지. 평소 전자기기에 큰 애정을 쏟지 않는 성격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전예약'이라는 걸 해보았다.

그렇게 한 달 여를 기다려 10만 원 초반대에 폴더폰을 업어 왔다. 한 손안에 착 붙는 그립감, 탁-소리 나게 전화를 끊는 쾌감. 다시 만나기까지 무려 10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내 마음에 쏙 드는 클래식한 디자인도 한몫했지만, 사실 폴더폰을 기웃거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똑똑해도 너무 똑똑한 스마트폰은 가끔씩 내 숨통을 조여 왔던 것이다. 마치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스마트폰.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반대로 핸드폰 없이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스마트폰의 최대 장점이자 존재 이유인, 어디에 있는 누구와도 쉽게 연결해준다는 부분도 가끔은 꺼림칙했다. 사실 나를 개인적으로 찾는 사람은 한 손안에 꼽힐 정도로 많지 않다. 걸려오는 전화도 반절은 스팸이고. 그런데도 뭐랄까, 24시간 내내 따라다니는 감시 카메라처럼 내 모든 것을 그 작은 기계가 알고 있고 내 번호만 안다면 누구든 실시간으로 연락해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추궁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숨 막히게 느껴졌다.


게다가 친구부터 가족, 친척, 모임, 직장, 전 직장까지 웬놈의 단톡 방은 이렇게 많은지. 빨간색 동그라미가 쌓이는 걸 잠시도 두고 못 보는 성격인지라 모든 단톡 알람은 꺼놓고 카톡을 비롯한 대다수 어플 아이콘에 아예 배지 알람이 뜨지 않게 설정해 두었지만 이걸로는 충분치가 않다. 나 역시 단톡 방의 장점을 최대로 활용하면서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한 해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평생 다시 볼까 말까 한 사람들과도 한 방 안에 거의 영영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느 때는 내가 주도해서 신나게 대화를 이어나가다가도, 몇 시간 새 300개 넘게 쌓여 있는 카톡방을 보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그 방의 우리들은 공평하게 번갈아가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자처하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아예 핸드폰을 없애고 모두로부터 잠적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사람에게만 연락할 수 있는 세상. 그 자유로움, 해방감..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세상을 과감하게 등질 준비는 아직 되지 않아 일단 폴더폰 정도에서 타협점을 찾기로 한다.


    폴더폰을 구매하긴 했지만 과감하게 스마트폰의 유심칩을 빼내 폴더폰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스마트폰에는 회사 단톡 방이라는 묵직한 족쇄가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나 가족은 그렇다 치고 회사 사람들에게까지 "저 오늘부터 카톡 못 쓰니까 공지는 문자로 따로 주세요."라고 통보할 용기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나 같은 일개 사원에게 사실 그건 객기에 가까울지도. 여하튼 그래서 유심칩을 하나 더 구매해 당분간 투폰 체제로 가기로 결심했다. 전화나 문자는 모두 새로운 폴더폰으로 하고, 스마트폰은 데이터를 최저로 해서 와이파이가 될 때만 쓰기로. 야무지게 카톡 프로필에는 '카톡 잘 못 봐요. 전화 주세요'와 같은 메시지를 올려 두었다. 그것만으로도 한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스마트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로부터 약 반년이 지난 지금,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참히 실패했다. 여전히 폴더폰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도리어 어딜 가든 두 개의 폰을 들고 다니는 휴대폰 중독자의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최대한 줄여가다 언젠가는 폴더폰만 단독으로 사용하리라 마음먹었지만, 막상 밖에 나가 보니 스마트폰 없이는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10년 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았던 걸까? 처음 가는 길, 어디서 버스를 타고 어디서 갈아탈지 그야말로 길 잃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스마트폰은 최대한 안 쓰겠다고 오기를 부리며 기껏 생각해 낸 방법은 친구에게 전화를 해 대신 알아봐 달라고 한 것이었다. 친구가 캡처해 보낸 저화질 지도를 들여다보며 힘겹게 찾아가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한번 문명을 맛본 자가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행위란 그야말로 불행으로 가는 급행열차였다.


지도뿐이 아니다. 스마트폰에 있는 연락처를 한 번에 옮길 수가 없어 차라리 아무 번호도 등록하지 않고 썼다. 그나마 '핸드폰 없으면 연락도 못하는 사이'인 것이 싫어 가까운 지인의 연락처는 최대한 외우고 다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SNS와 멀어지는 것은 차라리 반가웠지만 웹툰, 에어비엔비, 넷플릭스, 중고나라, 택시 예약, 배달 어플 같은 것들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다. 새삼 아, 정말로 인류는 발전하는구나- 더 편리한 삶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구나- 를 뼈저리게 느낀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폴더폰은 유니크하고 예뻤다. 어마어마한 저화질과 저음질이지만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힙한 느낌이 들기도 해 오히려 좋았다. 딱딱한 자판을 꾹꾹 눌러 글자를 치고 최대한 꽉 채워 문자를 보내는 것도 처음엔 낭만적으로 느껴졌는데, 사실 굉장히 불편하고 느리며 과거로부터 온 향수에 불과하는 걸 곧 깨달았다. 폴더폰을 길게 펴고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통화를 하고 있으면 흘끔흘끔 와 닿는 시선은 나름 즐거웠다. 이건 아마 내게 약간의 관종 기운이 있기 때문이겠지. 바지 주머니에서 보란 듯 슥- 핸드폰을 꺼내 통화하고 탁! 소리 나게 닫은 다음 다시 주머니에 밀어 넣으면 어쩐지 좀 더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그런 사람 말이다. 그래 봤자 내 가방 속에는 언제나 비상시를 대비해 스마트폰이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지만. 폴더폰을 여닫는 건 언제나 즐거웠지만 그나마 오래가지 못했다. 음질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스마트폰 번호를 불러주며 "야, 잘 안 들리니까 앞으로는 이 번호로 해!"를 여러 번 외쳐야 했다.




    회사에서 마케팅 담당인지라 인스타그램 오프라인 수업을 들으러 간 적이 있었다. 우연히 내가 폴더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강사분이 의아한 눈으로 말을 걸었다.


"저, 궁금해서 그런데.. 왜 폴더폰을 쓰세요?"

"아.. 스마트폰을 쓰니까 핸드폰을 하루 종일 붙들고 있는 것 같아서요."

"아~ 근데 인스타 관리하려면 더 많이 하셔야 할 텐데..."

"ㅎㅎ... 그러게요.."

   

그랬다. 나는 애초에 불가능한 도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회사는 얼마 되지 않아 나왔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결국 인스타나 블로그 같은 내 개인 계정들을 계속해서 관리해야 했고 그야말로 하루 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있어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의무적으로 폴더폰을 쓰는 것조차 포기하고 스마트폰에 다시 의존하기 시작했다. 똑똑하다고 욕할 게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에게 물들 대로 잔뜩 물든 현대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효율적이며 신속하고 스마트한, 이 시대에 걸맞은 현대인.


    여전히 투폰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폴더폰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지 오래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을 때를 대비한 비상용 전화기 정도는 되려나. 하루의 반은 스마트폰 앞에서, 나머지 반은 노트북 앞에서 보내며 오늘도 시린 눈과 지끈대는 머리를 감싸 쥐지만 결국 이 놈들 없이는 내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폴더폰의 유심을 해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마트폰 없이 살겠노라 떵떵거린 과거의 내가 너무 무안할까 봐, 그리고 가끔은 매몰차게 폴더를 덮어 전화를 끊고 싶기 때문일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인을 꿈꾸는 당신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