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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May 12. 2020

나는 버림받은 고양이지만 당신을 사랑할거예요

유기 동물 구조부터 입양까지, 그 거룩한 세계

    4월 20일 오후 세 시 경, 우리 집에 갑작스레 낯선 고양이가 찾아왔다.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케이지 한쪽에 머리를 박고 있는 이 녀석. 어렵게 구조되어 병원 검진 그리고 중성화 수술까지 마친 후 우리 집으로 오게 된 나의 첫 번째 임보 고양이, 뭉땡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평생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왔지만 '유기 동물 구조'나 '임시 보호' 같은 말은 나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낸 강아지와 고양이의 나이가 15살, 19살이었으니 그 세월 동안 미처 다른 동물들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고 비겁한 변명을 해 본다. 마지막 녀석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고 막연하게만 알던 유기 동물 구조부터 입양까지의 단계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구조부터 입양까지에 관여하는 사람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구조자, 임보자, 그리고 입양자. 구조자는 그야말로 처음에 길에서 유기 동물을 발견하고 구조를 하게 되는 사람이다. 구조자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책임과 의무가 있는데, 먼저 아이를 무사히 구조해 병원에 데려가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전반적인 검진을 맡기고, 필요할 경우 치료와 수술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혹시 주인이 있지 않은지 이곳저곳 공고도 올려야 하고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입양을 진행하기 위해 입양 홍보를 시작해야 한다. 


입양 홍보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임보처이다. '임시보호처'의 줄임 말로, 입양이 바로 되면 좋겠지만 유기 동물 입양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그동안 지낼 곳을 제공해주는 역할이다. 구조자가 직접 보호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구조자 분들은 이미 여러 마리의 동물들을 키우고 있고, 합사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공간이 협소할 경우, 현재 있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할 경우, 전염 가능성이 있는 병을 앓고 있을 경우 등) 대부분 임보처를 구하는 편이다. 임보처에서는 아이가 좋은 곳에 입양을 갈 때까지 잘 케어해 주면 되는데,  길에서 갓 구조된 아이들의 상태는 대부분 꼬질꼬질하거나, 바짝 말라있거나, 사람을 무척 두려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녀석들을 토실토실 살찌우고 사람 손을 타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임무일 것이다. 

구조 당시 vs 임보처에서 3주 후 뭉땡이의 모습

임보자는 그야말로 구조자와 입양자의 중간 다리 같은 역할을 할 뿐 여전히 가장 많은 의무는 구조자에게 있다. 가령 임보처에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사료, 모래 등을 지원해야 하고 아픈 아이일 경우 약값이나 수술비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병원이나 구조 단체, 후원금 등의 다양한 지원을 받기도 한다. 임보자는 구조자를 지원 사격하는 역할이다. 좋은 곳에 입양을 갈 수 있도록 잘 보살펴 예쁜 사진과 영상을 잔뜩 찍고, 아이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 세세히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어느 정도 아이의 상태가 회복되고, 사회화되어 입양을 가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면 구조자는 본격적으로 입양 글을 올리기 시작한다. 이 또한 구조자의 의무로 임보처는 임보 일기를 연재하고 인스타를 운영하는 등 본인이 원할 경우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를 돕기도 한다. 


임보처가 입양처가 되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 행복하고 간단한 결말이겠지만, '잠깐' 맡아 주는 것과 '평생'을 책임지는 것은 너무나 다르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아이와 잘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애초에 '입양 전제 임보처'를 구하는 구조자들도 많은 추세이다. 


한 번 상처 받은 아이가 또다시 버려지면 안 되기에, 입양처를 고를 때는 신중 그리고 또 신중을 기하는 듯하다. "제가 키울게요!" 말 한마디로 입양이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려 동물을 들이기에 적합한 환경에 살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돈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이전에 동물을 키워 본 경험이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입양처가 결정된다. 대부분 입양신청서의 양식을 이용해 접수를 받고, 추가 면담을 진행해 가장 적합한 집을 고르는 듯하다. 


유기묘 입양 글이 가장 활발히 올라오는 곳은 네이버 카페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그리고 유기 동물 어플 <포인 핸드> 이 둘인 듯하다. 그 외 인스타그램에서 #유기묘입양 #사지마세요입양하세요 #입양처급구 등의 태그를 통해 다양한 입양 홍보 게시물을 만나 볼 수 있다. 각 플랫폼마다 입양 절차는 상이하지만, 유기 동물을 입양하는 것은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으니 생각이 있다면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 좋다. 금액 또한 발생하는데 입양비라기보다는 무책임한 입양을 막기 위해 책임비로 5-10만 원 정도를 받는 듯하고, 일정 금액을 6개월 이상 돌려주거나 하는 식으로 아이의 안부를 확인하는 방식도 있다. 

길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굴 털이 다 벗겨졌던 뭉땡이..

입양처의 최종 결정권도 구조자에게 있다. 물론 아이를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임보처와 어느 정도 상의를 하긴 하겠지만, 이는 구조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입양처가 정해지면 구조자-입양자 사이에 계약서를 작성하고(구조자-임보자 사이에도 계약서는 작성한다), 직접 임보처에서 픽업해 입양처까지 아이를 데려다준다. 간혹 구조자가 차량이 없을 경우 임보처나 입양처에서 이를 대신하기도 하고, 따로 차량 지원 봉사자를 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개월 혹은 몇 년에 걸쳐 유기 동물 구조의 과정은 가까스로 완료가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알게 되고 처음 든 생각은 '구조자 분들은 천사인가...?'였다. 대부분 지원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나서서 아이들을 구조하고, 병원비와 사료값을 지원하고, 임보/입양처를 구하기까지... 결코 간단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대부분 구조자 분들은 이미 정기적으로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시는 캣맘, 캣대디 분들이시고 그중 유독 상태가 좋지 않거나 아파 보이는 아이들, 혹은 집을 나온 게 분명한 아이들 위주로 구조를 해 입양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구조가 반복되어 벌써 여러 마리에게 좋은 주인을 찾아준 구조자 분들이 수도 없이 많이 계시다. 팔 벗고 나서 구조를 할 정도의 용기도 없고 또 다른 생명을 평생 책임질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나는 그저 임보처 역할에 그치지만, 세상에 이토록 좋은 사람들이 많다니 놀랍고도 감사한 마음이다. 이 분들이야말로 사회 속 숨겨진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첫날 냉장고 옆 좁은 틈에 숨어 하루 종일 나오지 않던 뭉땡이는, 바로 다음 날 아침부터 손에 머리를 부비며 골골송을 불러댔다. 일주일 만에 얼굴에 털도 예쁘게 나고 열심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집안 사방팔방을 자유롭게 누빈다. 마치 처음부터 사랑만 받고 자란 고양이처럼 얼굴에서는 그늘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고작, 3주 만에 일어난 변화였다.


뭉땡이의 첫 주인은 이사를 가며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집에 두고 갔다고 한다. 이후 집주인에 의해 거리로 쫒기게 된 뭉땡이 친구 몇몇은 굶어 죽었고, 몇몇은 구조 되어 입양을 갔다. 누가 봐도 품종묘인 뭉땡이는 좀처럼 구조자님께 다가오지 않았고 그렇게 반년 넘게 길바닥을 헤맸다고 한다. 그러다 오랜만에 나타난 녀석을 마주쳤고, 심하게 벗겨진 얼굴을 보고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아 다가갔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도망치지 않아 무사히 병원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고 한다.


엉망진창인 얼굴 상태와 달리 녀석에게는 아픈 곳이 없었다. 눈물 자국을 따라 얼굴 털이 벗겨졌던 걸 보면, 아마 마음이 많이 아팠던 거겠지. 




어느 한쪽에서는 열심히 동물들을 버리고, 어느 한쪽에서는 열심히 그들을 거둔다. 참 이상한 세상이다. 인간만큼 악하고도 선한 동물이 있을까. 인간이 있는 한 버려지는 동물들은 계속 생겨나겠지만 결국은 선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구원받는 동물들이 더 많을 것이라 기도처럼 막연히 믿어 본다. 

앉아 있으면 펄쩍 무릎으로 뛰어 올라 오는 뭉땡이
배 위에 올라와 꾹꾹이를 하는 사랑둥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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