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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Sep 09. 2019

영화인을 꿈꾸는 당신에게

안 읽으면 후회할지 모르는 어느 낙오자의 tmi  

영화인. 나는 영화인이 되겠다.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는 멋진 영화인이 되겠다.

그런 꿈을 꾸었던 때가 있다.


감히 허황된 꿈이 아니라 말하고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멋진 꿈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저 더 이상 나의 꿈이 아니라는 것뿐. 한국을 빛내는 영화인이 되고프던 한 청년이 어쩌다 영화업계라면 치를 떨게 되었는지, 아주 뻔하고 흔한 그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 그 어떤 대단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극적인 일은 없었다. 그러니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자극적이고 발칙한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여기서 뒤로 가기를 누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이렇게까지 미리 예고하더라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당신을 위해 준비한 한 문장 미리보기는 이렇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인이 되고 싶던 한 청년이 자그마한 영화사에 취업을 성공했고, 1년 후 현실을 깨닫고 나가떨어졌다. 그게 전부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한국 영화산업의 적나라한 민낯에 대한 대담한 고발이라기보다는, 그저 꿈을 이루지 못한 나약한 어느 청년의 하소연에 한참 가깝다. 서론은 이만하면 된 것 같다.




스물넷, 스물다섯- 갓 졸업한 나는 그 정도의 나이였다. 영화산업에 몸을 담고 싶다는 꿈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날 때부터 글이 좋고 영상이 좋고, 막상 대학에 들어와 보니 전공은 싫고. 그래서 피난처처럼 가지게 된 막연한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졸업하기 전까지 웬만한 영화제에서 자원봉사와 스태프를 전전했고 이미 나도 영화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는 자부심에 취해있었다. 레드카펫 위의 반짝이는 연예인들, 세상의 이목을 끄는 감독들과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함께 일하고 그들을 위해 실질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실제로 그들은 나의 존재조차 몰랐을 테고(혹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테고), 아주 운이 좋으면 한두 번쯤 꾸벅 인사를 할 수 있는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를 내가 이끌고 있다-!! 그런 자부심에 한껏 취해있으면서도 문득문득 찜찜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저 언니는 4개 국어를 하는데 왜 돈은 나랑 비슷하게 받지?'라거나 '정규직이 아닌 대다수 스태프들은 이 영화제에서 저 영화제로 옮겨 가며 평생 철새처럼 일하는 건가?' 하는, 결코 뚜렷한 답을 얻을 수 없지만 어렴풋이 이미 답을 알 것 같은 그런 질문들 말이다. 그것이 작은 불씨처럼 자리 잡은 첫 번째 의구심의 시작이었다.


정말로 작은 불씨였다. 야근 후 언니들과 편의점 앞에서 캔맥주를 나눠 마시던 낭만과, 이 마이크를 제때 배달하지 않으면 축제가 망할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곳곳을 내달리던 열정. 내가 무언가를 정말로 만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그 뿌듯함만으로 충분히 잊힐 수 있는 그런 작은 불씨 말이다. 그래서 많은 영화제를 겪어 본 뒤에도 본격적으로 영화사에서 일하고 싶었고 규모와 조건을 따지지 않고 어디든 지원했다. 그렇게 참으로 애틋한, 나의 첫 회사를 만나게 되었다. 자그마한 수입사였고 내가 하는 일은 수입부터 마케팅, 각종 심부름까지 다양했다. 작은 회사의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은 작품 검토였다. 아직 감독, 배우도 정해지지 않은 갓 나온 따끈따끈한 영어 시나리오를 내가 먼저 읽어보고, 심지어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하고 설레는 일인지. 반대로 가장 싫었던 일은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껍데기를 씌워 판매대에 내놓는 것이었다. 감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조금이라도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과 카피를 내세웠다. 사람들은 속아서 포장을 뜯었고 포털에는 '이거 이런 영화 아닌데 마케팅 미쳤음?', '원제 이건데 왜 한글 제목은 이따위임?' 하는 악플들이 달렸다. 사실 악플도 아닌 것이 모두 맞는 말이다. 나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기여는 하지 못할 망정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막내는 아무런, 정말 아무런 힘이 없다. 회사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돈을 버는 곳이며 영화사는 그저, 영화를 파는 회사일뿐이다. 그걸 그때 깨달았다.


주요 영화제들이 열릴 때면 몇 개월 전부터 덩달아 바빠졌다. 보통 큰 영화제의 뒤편에서는 필름 마켓이 함께 열리는데, 우리 회사 역시 마켓에 참여해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제작사들의 부스를 순례해야 됐기 때문이다. 프랑스 칸, 독일 베를린, 미국 산타 모니카- 덕분에 세상 멋진 곳들은 다 다녀온 기분이었다. 출장 가기 한 두 달 전부터 준비를 하고 다녀와서도 한 달 내내 정리를 해야 됐기 때문에 사실 일 년 내내 여유로울 틈도 없었지만 친구들에게 "다음 달엔 또 베를린 가잖아- 휴, 좋기는 무슨. 힘들어 죽겠다니까? 읽을 대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라고 투정 부리는 내 모습이 싫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 대사에 거짓은 없었다. 아무리 좋은 곳을 간다 한들 상사를 모시고 가는 해외 출장은 '일'에 불과했고 시나리오는 무섭게 쌓여 출퇴근 지하철에서도,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멋진 커리어우먼, 진정한 영화인이 된 것 같은 내 모습이 제법 기특했다. 너무 바쁘다고 불평하면서도 밤새 시나리오를 놓지 못하는 이 상황은 또 제법 멋져서, '배 부른 소리 하지 마, 취업할 때 잊었어? 네가 얼마나 간절히 그리던 모습이야? 너 지금 진짜 영화인 같다고!' 스스로를 다그친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그런 껍데기에 불과한 허영심과 욕망이 나를 그나마 그곳에서 1년이나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박봉은 예상한 것이었다. 최저 이상을 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하달까. 하지만 우연히 복합기 위에 놓여 있던 월급명세서에 찍힌 실장님의 월급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나는 쌩신입이니까 그렇다 치는데, 경력도 많고 능력도 좋은 우리 실장님 월급이 저 정도라고...? 이 회사에서 10년간 내가 죽어라 일해봤자 주어지는 보상이 저거라고..? 심지어 우리 회사는 비슷한 규모의 회사 중 그나마 양심이 있는 편에 속했다. 영화계가 열정 페이로 돌아간다는 것은 익히 유명하지만,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하자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과 '일한 만큼의 적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 사이에 꼭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불씨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는지, 서서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고 각종 정보를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어느 회사든 딱히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조금 더 좋은 회사, 나쁜 회사는 존재했지만 기본적으로 영화사에서는 일한 만큼 돌려받는 것이 힘들었다. 물론 대기업은 연봉 앞자리가 달라지겠지만, 다른 계열사에 비해 훨씬 낮은 액수이고 업무량은 살인적으로 많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 업계에 오는 이들의 스펙이 결코 낮은 것도 아니었다. 영화제에서 만난 이들을 비롯해 해외 유명 대학에서 석사, 박사를 마치고 온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기본적으로 2-3개 국어를 구사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 되는 열정 페이를 인내했고 모든 부가 극소수의 연예인과 유명인들에게만 쏠리는 영화업계의 기형적인 구조를 감수했다.


사무직 영화인들도 그렇지만 발로 뛰어다니는 현장 스태프들의 현실은 더 잔혹했다. 풀타임 알바를 뛰는 것보다도 못한 돈을 받으며 주말도 없이 7일 내내, 밤낮으로 일했다. 영화가 대박이 나도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나도 저 영화 같이 만들었다? 연예인 누구는 어떻더라 감독은 어떻더라-' 술자리 안주 거리밖에 될 수 없는 부질없는 자부심, 한 번 듣고 잊힐 가십거리뿐이다. 영화 평이 아무리 좋다 한들 관련된 것은 눈에 담기도 싫어하고 함께한 감독, 배우들에 대해서는 치를 떠는 이들을 여럿 보았다. 영화 쪽에서 일한다고 하면 연예인 많이 봐서 좋겠어요,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지만 어떤 종류든 그들과 직접적으로 함께 일을 한 이들은 90%의 확률로 그 연예인을 싫어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영화계의 환상과 현실의 간극은 생각보다 많이 넓었다. 나는 그 간극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영화계에서 유명한 말 중 하나는 "영화는 금수저들이 취미로 하는 것이다"인데, 이것만큼 이쪽 업계를 잘 설명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금전적으로 아쉬울 것이 없고, 영화를 너무나 사랑한다면 영화를 평생 업으로 삼는 것만큼 낭만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애매하게 충족된다면 결코 오래 버틸 수는 없으리라 감히 예측해 본다. 뛰어들고 나서야 생각해 보니 나는 흙수저에 가까웠고, 영화에 대단히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열망하던 것은 영화 그 자체가 아닌 아주 감상적이고, 허무맹랑한 실체 없는 허울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서 느껴지는 여운과 감동, 하지만 불과 몇 시간- 길어야 며칠 만에 현실에 묻혀 희미해져 버리는 얕은 감성 말이다. 1년은 스스로를 재평가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애초에 영화인이 될 만큼의 열정도, 깊은 애정도 없는 사람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을 물어본다면 퇴사를 결심한 그 순간을 이야기할 것이다. 어영부영 더 늦어지기 전에 내 결정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주저 없이 방향을 튼 것 말이다. 물론 무서웠고 막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 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1년 후 나는 딱 두 배의 월급을, 그러니까 실장님보다 더 높은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영화를 취미로 둘 정도로만 적당히 사랑하는 사람인데, 영화사에서 일할 당시에는 취미와 일이 분간이 되지 않아 더 이상 영화를 보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한동안 나는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검토하게 되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일을 하며 즐거웠던 순간도 많았다.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그랬다. 하도 읽다 보니 좋은 시나리오는 첫 장부터 느낌이 왔다. 머릿속에 영상보다도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고, 길을 걸으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만나게 된 것이 소름 끼칠 만큼 영광스러운 그런 작품이 있다. 그런 시나리오를 만날 때 느끼는 행복에 버금가는 슬픔은 이 좋은 작품을 우리 회사가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내 취향이 대표의 취향과 같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그런 작품일수록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매번 백 여개의 미팅을 잡느라 혼이 나갔던 해외 출장에서도 행복한 순간은 분명 있었다. 그 유명한 노래 속의 호텔 캘리포니아에서였던가, 맨발로 밤바다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던 순간, 터질 것 같은 심장과 그네가 삐걱이던 소리, 찬 밤바람과 머리 위 반짝이는 놀이기구의 불빛들, 다음 날 일어난 침대 위에서 느껴지던 모래들과 축축한 이불, 깨질 듯한 두통까지-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 영화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첫 회사인 만큼 부족한 점도 많았고 배운 것들도 많았다. 그곳에서 스파르타로 배운 덕에 두고두고 사회생활하며 많이 써먹었다. 그래서 그 업계에서 벗어난 것은 나에게 더없이 잘된 일이라 생각하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깊이 감사한다. 다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긴 글을 써 내려간 이유는, 혹 영화인으로 첫 발을 내딛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인터넷, 티비가 아닌 주변에서 영화인을 찾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처럼 관련 전공자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순히 영화에 대한 환상만 가지고 허무맹랑한 꿈을 꾸었고, 직접 부딪혀 보고 나서야 나의 길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얻은 것도 많지만 사실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비루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그때 "영화는 부잣집 애들이 취미로 하는 거야!"라는 말을 해주었더라면 나는 좀 더 현실적인 선택지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영화 업계가 열정 페이로도 너무나 잘 돌아가는 이유는, 나처럼 이 곳의 허상에 불나방처럼 빠져 모여드는 청년들이 엄청나게, 정말 말도 안 되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월급으로는 못 해 먹겠어요! 내가 오늘 때려치우고 나가도 나보다 더 똑똑하고, 좋은 스펙의 구직자들이 줄줄이 줄을 서 있다.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그렇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 뭔가 그렇게 '있어' 보인다. 실상 들어가서 접하는 일들은 영화 그 자체와 큰 관련이 없을 확률이 아주 높은데도 말이다. 영화를 정말 깊이 있게, 심도 있게 사랑한다면 차라리 창작을 해라. 그 일은 고되고 박봉이어도 보람이라도, 명예라도 있을 것이다. 실력이 있고 운이 따른다면 대박 날 수 있는 확률이라도 있다. 그저 영화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사무직은, 정말 취미로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절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당신이 내가 아끼는 사람일수록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영화는 취미일 때가 가장 아름답더라. 결론도 이만하면 된 것 같다. 어차피 내 말 안 들을 거,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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